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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Dec 21. 2017

EP19. 다 사람 사는 데

다 사람 사는 덴데 그렇게까지 하겠어?

WRITTEN BY 지랄방구


여행 얘기가 다 사람 얘기다. 최소한 나한테 있어서는. '다 사람 사는 덴데 그렇게까지 하겠어?' 라는 말을 아내는 싫어했고-정확히는 반신반의 했다- 나는 그 말을 의지하고 대서양을 건넜다. 그리고 이 남미 사람에게 대단히 실망하고 있다. 17만원짜리 버스표를 날린 상황. 우린 버스회사 직원이 말한 플랫폼에서 성실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무지 버스가 안와서 버스회사 사무실에 가보니 버스가 이미 떠났더랜다. 막 영어로 따지니 갑자기 직원이 영어를 못하는 척을 한다. 아무리 복기하고 복기해봐도 우리 잘못은 없는데 언어소통이 잘 안되는 상황과 구체적인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우린 '날린 것 같아...' 하며 다음 도시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잘 안되는 와이파이에 겨우겨우 보낸 항의 메일에 버스회사는 나의 이야기보다 자사 직원의 답변만 신뢰하며 You lost your tickets. 라는 의미없는 답변만을 보낸다. 그에 나는 '너희는 어떻게 너희 회사 직원 말만 듣는거냐. 너희 회사에 굉장히 실망했고 이 모든 일을 tripadvisor에 남길 것이다!' 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람사는 이 아르헨티나에서.

다 (소고기)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어쩔수 없이 10시간 뒤에 떠나는 버스티켓을 다시 샀다. 아내는 좀 격하게 표현하여 라틴아메리카를 저주하며 이 대륙을 떠나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호주에 가면 평생을 애정한 백쑤 언니가 있고(실제로 백수가 아니라 애칭임) 방콕에 가면 싼값에 맛난거 먹고 다이빙 실컷하고 3보1맛사지 받을 수 있는데 대체 이렇게 불친절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 나라에 머물 이유가 무어냐고 투덜투덜 하며 10시간을 보내다가 우리는 안드레아라는 남자를 만났다. 우리는 그에게 크게 두 번 큰 도움을 받았는데 하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 복잡한 터미널에서 영어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 없어 짐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뛸때 안드레아가 영어로(그의 영어도 fluent하지는 않았지만) 너희 어디가냐며, 나도 거기 가니까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던게 하나고. 두번째는 밤 11시에 탄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새벽 여섯시쯤 사람들이 많이 내릴길래 뒷좌석 할머니한테 내가 '바이아블랑카?' 하며 손가락으로 밑을 가리켰는데 할머니가 si (네) 해서 허겁지겁 내리려고 하는데 안드레아가 날 보더니 '너희 바이아블랑카 간다며 여기 아니야 더 가야해' 하며 잡은거다. 알고보니 2시간은 더 가야했던 곳. 대체 이 나라사람들은 왜 그러는건가. 할머니라서 영어를 못하는건 알겠는데 이방인에게 건내는 정보에 불확실성으로 차고 넘친다. 어제 버스표를 날리고 오늘 이상한데서 내렸다면 난 진짜 이 나라에 대해 증오심 밖에 안 남았을 것 같다. 우리에게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은 버스회사 직원 그리고 잘못된 정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버린 할머니 모두 아르헨티노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안드레아도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그러고 보니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푸에르토 마드린도 제니아라는 아르헨티나 사람이 카우치서핑 해 주었기에 여러가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가게 된 것이다. 그녀는 우리가 버스표를 날려서 그날 가지 못하게 된 것과 그 사건 때문에 하루 이틀 더 신세를 져도 되냐는 우리의 물음에 흔쾌히 노프라블럼 해 주었다. 안드레아도 버스회사 직원도 할머니도 제니아도 다 이 나라 사람이다. 결국 이 사단의 결론은 '이 세상에 너무도 다양한 사람이 살아간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그 상황들을 직면했던 내게는 너무나 생생한 교훈들이다. 다 사람사는 곳인데 라는 말. 누가뭐랍디까 중요한건 어떤 사람들이 살고있냐는 거겠지요. 천사도 내 이웃 강도도 내 이웃. 여행 얘기는 다 사람 얘기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바이아블랑카 버스 10시간. 바이아블랑카에서 버스 대기 12시간. 바이아블랑카에서 푸에르토 마드린 버스 1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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