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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Jan 14. 2018

EP20. 겸사겸사

남미여행 중간정리

WRITTEN BY 지랄방구


너무 오랫동안 브런치를 방치해버린건 아닌가. 핑계를 대자면 그사이 나는 손일기를 많이 썼다. 브런치는 뭔가 '작'을 해야할 것 같아 일기같은 변변치 않은것을 쓰면 안될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작'은 뭐 그리 안변변치않은가 싶어 그냥 뭐라도 남기기로 했다. 맞다 결정적으로 브런치에 손이 가지 않은건 노트북 충전선이 고장 났기 때문이다. 남미 넘어오기 직전 모로코에서부터 상태가 메롱하더니 브라질에서 약간 회생한 노트북 충전선이 운명한 것을 아르헨티나에서 확실히 알게 됐다. 아마 가장 큰 원인은 유럽과 남미 사이의 전압차가 있었는데 변압하는 도중에 플러그가 버텨주지 못한 탓이 아닐까 그렇게 믿고 있다. 노트북의 가장 큰 기능은 사진과 영상 백업 그리고 예능 영화감상인데 일단 급한대로 백업은 구글 포토로, 영화,예능은 테블릿으로 해결중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바로 충전선을 다시 살 수도 있었는데 물가가 비싼것 같아 칠레 가서 사려고 미뤄뒀다가 푸에르토 몬트에서는 도무지 충전선을 찾지 못하고 푸콘까지 왔다. 내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뭔가를 사는 행위다. 됐고. 산티아고 가면 충전선부터 사야지.

무천도사와 길 그 사이 어디쯤

암튼 핑계는 집어치우고 겸사겸사 남미여행의 중간점검차 쓰는 브런치라고 이해해보자. 사람들이 남미 찬양을 예수님 찬양보다 더 하는 이유를 좀 알게된 한달이었다. 남미를 한마디로 '다양성 천국' 이라고 할까. 거대한 이과수 워터폴, 펭귄과 바다코끼리가 사는 발데스 분지, 엘칼라파테 모레노 빙하, 엘찰텐의 피츠로이 봉우리 그리고 칠레의 아직도 끓고 있는 화산과 호수들. 남미여행은 우리가 지구과학과 세계지리시간에 배웠던 다양한 자연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가능하면 만져보고 체험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특별히 어제 우린 푸콘의 비야리카 화산 트레킹을 다녀왔는데 불과 3년전까지 폭발했던 활화산이었다. 다섯시간동안 4.3킬로의 설산코스를 지그재그 올라가른 경험. 중간중간 아래를 내려보면 끝없이 펼쳐진 눈밭이 깎아지른 경사로 어질어질하다. 가끔씩 위에서 굴러떨어지는 화산바위는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버티칼 리미트에서나 본 장면들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지다니. 그리고 끓고 있는 용암 위에서 혹여나 떨어질까 고개만 빼쭉 내미고 마그마를 구경. 하고 싶었으나 가스가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남미는 '사람들이 여행하는 이유는 결국 뭔가를 체험하기 위해서'라는 아주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명제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이과수 폭포에서 영화 '미션'의 넬라판타지아를 따라부르고, '반지의 제왕' 촬영지 피츠로이산을 트레킹 하며 "간달프가 큰길로 다니지 말라고 경고했어!" 하고 까불어 본다.

간달프가 큰 길로 가지 말랬어!

이 장대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만큼이나 남미는 우리에게 여러 사건으로 기억되는 중이다. 인스타를 통해 몇번은 분노의 피딩을 올렸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버스터미널 농락 사건'. 처음으로 홀로 여행 나온 영국인 홀리를 눈물짖게한 '공항 수화물 500달러 도난 사건', 내 피같은 마늘 4쪽을 귀신같이 찾아낸 '아르헨-칠레 국경 검사대 개와 인간의 한판승부' 그리고 어제 일어난 '푸콘 호스텔 16인실 도난 사건' 까지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남미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친절했고 잘해줬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우릴 실망시킨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호스텔에서 만나는 여행자들과 여행얘기를 나누다가 무의식적으로 이런 질문을 많이 던졌던거 같다. "거기 위험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전혀" 혹은 "너만 조심한다면" 하고 대답하는데 아마 그들이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하고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면 모든 기억은 아름답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어제 보조가방을 통체로 도난 당한 한국인 여자분께 "이런 얘기가 위로가 안되겠지만..."으로 시작하여 우리가 날린 돈 얘기를 해 주었다. 가끔 호스텔에서 만나는 한국인들과는 '돈 날린 이야기' 만큼 재미있는 주제가 없다. 그러나 돈 날렸던 그 날의 분노, 그 날의 억울함을 다시 생각하면 지금도 저 깊은 곳에서 뜨끈뜨끈한 것이 쑥쑥 올라온다. 우린 이제 고작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를 여행했을뿐인데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볼리비아, 콜롬비아, 멕시코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그 나라들이 무시무시한건 비단 사건들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 나라의 자연들도 어마어마하겠지. 아 기대되는 우유니여, 산 안드레스여, 멕시코시티여...우린 엑소도 BTS도 아니지만 한국사람들한테 조금만 더 친절해주길...

셋 중에 누가 제일 못생겼나

그저께 파티에서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 기억난다. 호주 여행자한테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 : "남미에서 동양인들이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된대. 동양인들은 다 중국인이라고 착각하고 중국인은 돈이 많다는 선입견이 있다나봐. 억울해 우린 가난한 한국인인데..."


호주인 : ㅋㅋㅋ 그럼 티셔츠에다 크게 아임 프롬 싸우스코리아라고 써. 아 스페인어로...ㅋㅋㅋ


아 그러고보니 중국인이 젤 불쌍하네...


암튼 남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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