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 지는거래
WRITTEN BY 지랄방구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좀 더 글을 잘 써보려고 지우고 지우다가 한 줄도 못 썼습니다. 페루 여행기는 포기할까 하다가 일기에 휘갈겨 쓴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이번에는 일기 글을 그대로 브런치에 옮겨 보았습니다. 역시 일기란 가장 진솔하지만 말도 안되는 문법이 많은 법. 뭐 다른 글은 안 그렇겠냐만요.
180309, D+276, Guayaquil Juan Valdez Cafe
페루 좋았잖아. 좋았으면서 왜 글을 못쓰는가. 쿠스코 도착하자마 광장에 마음을 뺏겼고, 성스러운 계곡 투어에서 잉카문명의 위대함에 무릎친 일. 쓰잘데기 없는 농담하면서 우리만의 트레킹을 즐겼던 마추픽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마추픽추는 버스로 가보길 권한다. 기차는 편리하지만 비싸고, 버스는 싸지만 죽음의 위협을 느낀다. 돈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페루 or 잉카 트레일을 타고 마추픽추로 향할 때 우리는 죽음의 S자 도로를 수십번 돌고 돌아 히드로 일렉티카라는 곳에 도착. 또 그 때부터 3시간을 걷고 걸어 아구아스 깔리엔테스 마을에 입성했다. 굽이치는 도로에 가드레일은 없고 산 허리에 걸린 구름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기 그지 없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전방 5m도 안보이는 안개가 되어 우릴 위협한다. 이러다 죽는게 아닐까 싶어 바라본 옆자리 아내는 아니다 다를까 세상 모르고 잔다.
올드보이였나. 명대사가 있었지. "인간은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 지는거래" 한참을 공포에 떨며 손을 움켜쥐다가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저 아저씨가 아직 무사고니까 오늘까지 살아 운전하고 계신거겠지". 마추픽추는 그 자체로도 훌륭했지만 오고가는 길이 우리에겐 특별했다. 걸어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가는 길은 기차길을 계속 걸어야 하는데 저 멀리 들려오는 기차 경적소리, 카페에서 키우는 닭과 오리, 굽이치며 흐르는 계곡물의 경쾌함. 정말 돈 주고는 못 살것들. 아니 '돈 주면' 못 살 것들. 그런 말랑말랑한게 아직 세상에 있구나 싶었다. 나중에 나스카에서 만난 호스텔 스탭 오빠는 쿠스코에서 걸어서 마추픽추에 갔다더라. 유럽 놈들. 징하다 징해.
페루는 진정 신기한 것들 천지다. 나스카 라인은 또 어떠한가. 누가 왜 그렸는지도 모를 지상의 거대화(畵). 바이킹도 못 타는 아내는 경비행기의 미쓱거림을 참고 그 위대한 걸작을 보기 위해 용기를 냈다. 안 그런척 했지만 매쓱거리긴 나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 작은 비행기가 탈탈거리며 하늘을 나는 것도 신기한데 땅에 그려진 그림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경탄하는 시간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정교함. 거미나 새 그림을 보면 한 눈에 봐도 좌우대칭이 완벽하게 맞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자로 대고 그린 것 같아서 너무 신기한 것이다. 모르지 실제로 대형 자를 대고 그린 것일지도? 마추픽추도, 나스카라인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이기 황홀한 것. 스페인이 금,은 다 훔쳐가도 이건 몰랐지? 흥칫뿡이다.
우리의 페루 여행은 쿠스코-나스카-와카치나-리마-와라즈-트루히요까지 생각보다 길었다. 단일국가로 치면 우리 여행 중 이집트 다음으로 길었고, 이집트는 다합에서 한 달 살기를 했으니 순수(?) 여행으로는 가장 길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페루에 대해 잘 몰랐어서 이렇게 길게 있을지 몰랐다. 아마 이제 여행 후반기에 다다라 쉬엄쉬엄 가다보니 이렇게 길어진 거겠지. 실제로 어딜 투어하기보다 쉰 기간이 더 많았다. 쉬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아카데미 후보작도 챙겨보고 그랬지. 덕분에 뒤에 일정이 조금 똥줄탄다. 돈이 부족한건 아닌데 예상보다 기간을 넘길까봐. 아직 여행의 고단함보다는 욕심이 앞선다. 정신 못차린거지. 아버지는 아직도 언제 오냐신다. "날씨 따뜻해지면요"라는 내 대답에 "이제 따뜻해졌으니 돌아오라"는 아부지. 추위도 많이 타시면서...때 되면 갑니다.
내용이 빈약하여 페루 여행 사진으로 떼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