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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Mar 31. 2018

EP24. 여행 후 우리의 첫번째 목표

굶어죽지 않는 것

WRITTEN BY 지랄방구


온전히 우리 여행 기준으로 내린 엉터리 통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를 배출하는 나라는 독일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정확한 설문조사를 통한 spss 통계분석 같은 그런 성실한 작업 아니고 그냥 단순히 이 여행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만난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이란 말이다. 호스텔에서 저녁을 짓다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 박물관 티켓을 사려고 선 긴 줄에서, 지겹고도 지겨운 장시간 버스 바로 옆자리에 탄 사람들에게, "Where are you from?" 하고 중1 영어를 던졌을 때 가장 많이 돌아온 대답. 1위가 Germany 2위가 Denmark 3위가 Netherland 나 France 쯤 됐나? 역시나 만날 때마나 카운트 해 놓은건 아니라서 정확한 통계가 아님을 다시한번 밝힙니다. 그러나 독일 사람이 가장 많았다는건 단언할 수 있다. 쫌 의외였던건 생각보다 United States가 많지 않았다는 점. 이 현상에 대한 나와 아내의 믿을만한 분석은 아마 그들은 돈이 열라 많아서 우리가 다니는 8인, 12인 도미토리보다는 주로 힐튼, 메리어트, 포시즌 이런데에 다 몰려 있는거 아닐까? 하고 괜한 부러움+자격지심을 부려보았다. 또 하나 재밌는건 어쩌다 만나는 미국사람들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USA에서 왔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죄다 "나는 네바다에서 왔어, 필라델피아에서 왔어, 보우스턴에서 왔어" 이런다. 어쩔. 니네 동네 이름을 말하면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어야 되는거냐? 나는 마들로 551에서 왔다. a.k.a. 창4동!!!. 부러움+자격지심2 발동.

먹을꺼 빼 다 괜찮았던 독일. 근데 먹을꺼를 어떻게 빼요.

아마 이 글은 주제에 상관없이 독일뽕 가득한 찬양기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갈라파고스에서 다이빙 하러 가는 보트에서 만난 18세 독일 소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와 서툰 영어로 몇마디를 주고 받았었다. 뮌헨근처에서 왔고, 지금은 에콰도르 키토에서 저소득층을 위해 집짓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1주일 정도 휴가를 얻어 갈라파고스를 혼자 여행 중이었다. 그녀는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년에 대학교를 가려고 준비중이라고 했다. 과는 물론이거니와 아직 어떤 대학교 갈지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륙을 건넜다. 독일은 한번 수능을 보면 그 점수가 평생 간다고 한다. 그래서 수능이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여행을 가거나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바로 상급학교나 사회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란다. 내가 갈라파고스 그녀와의 구체적인 대화가 다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유난히 그녀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남미에서 이와 같은 케이스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아타카마로 10시간이 넘는 버스에 또 다른 독일 소녀가 있었다. 그녀도 같은 케이스. 남미를, 10대가, 그것도 여자 혼자. 독일애들은 다들 이같이 독립적이고, 모험적이며, 진취적인가? 혹시 그 친구들이 그냥 특별한 독일인이었던 건 아니였을까? 아마 독일인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 나의 잘못된 선입견일 수도 있겠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찬양글은 고작 20여일 독일을 여행하고, 고작 10여명 여행중에 만나, 각각 20여분 대화하고 내린 결론이니까.

쟤야 쟤! 18세 독일 소녀. 우리 배멀비해서 죽을꺼 같았는데 책읽던 무서운 애

선입견 가득한 우리는 독일을 실질적인 세계 최고 선진국으로 규정지었다.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이제 곧 간다- 세계 최강 미국은 웬지 대낮부터 약에 쩔은 젊은이들이 보도블럭에 앉아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중얼거리거나, 파바박 팡팡 터지는 이벤트 폭죽소리에도 혹여나 총소리가 아닐까 화들짝 놀라 식은땀 흘리며 뒤돌아봐야 하는 그런 나라라는 선입견이 있다. 반면 독일에 대한 얇디 얇은 우리의 사랑은 훨씬 실제적이다. 위에 두 소녀 말고도 불가리아 호스텔에서 만났던 독일 청년은 밥짓는 내내 30분이 넘도록 한반도 정세에 대해 나와 토론했다. 그의 언변은 단순히 국제뉴스를 통해 알게된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의견 정도가 아니었다. 그에 더해 독일이 어떻게 통일에 성공하게 되었는지, 통일 이후에 독일사회에 어떤 문제들이 있었고 지금은 독일이 유럽에서 다른 유럽국가들과 어떻게 공존하고 난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오피니언을 내놓았다. 안타까운 것은 언제나 나의 영어실력. 조금만 더 능숙하게 영어를 알아들었다면... sould have studied english more hard... 맞나?


사실 정말 쓰고 싶었던 말은 '슈퍼 울트라 하이퍼 매직 독일 찬양' 같은게 아니었다. 그들의 시스템, 마인드, 타인에 대한 자세 등 모든 것이 부러우면서 아무래도 나는 한국을 되돌아보게 된다. 독일 소녀가 18세에 다른 나라의 도움을 주려고 떠난 그 여행을 나는 삼십이 넘어 4년동안 돈을 모으고 그 모여진 돈을 쓰면, 이 직장을 때려치면 혹여나 굶어죽지 않을까 1년을 넘게 고민하며 미친 결단을 했다. 무엇보다 부모님이라는 산을 넘기 위해 1시간을 넘게 부모님 앞에서 미래도 없고, 철도없는 자식 취급을 받으며 화를내고 눈물까지 글썽이는 부모를 등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저 30년을 넘게 살았던 아시아 동쪽 끝의 작은 세계에서 살짝 벗어나 1년 간의 휴식, 방랑을 하는게 죽을 죄 혹은 인생포기처럼 보여야 했던 날들. 그것은 그냥 독일과 한국의 문화 차이였을까. 경제력의 차이였을까. 최근에 보다가 집어던진 조선일보 사설에서 지금 세대를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노력없이 부모 등골이나 빼먹으면서 징징대고 돈도 없다면서 연휴만 되면 공항을 북적이는 노답 세대. 우리는 언제쯤 세계여행을 권장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해결방식을 기대하는 사회를 만들게 될까. 어쩌면 독일과 한국의 문화, 경제력 차이보다 단순히 조선일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닐까.

슈퍼울트라하이퍼매직 갈라파고스

어떤 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쉽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데에 그 나라 경제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우리가 만난 세계여행자들 상위권에 늘 유럽국가들이 있지만 300여일이 다돼가는 이 여행에서 동남아시아 세계여행자를 한 번도 못 본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내가 세계여행을 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스타에만 봐도 생각보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세계일주를 하고 있고, 실제로도 심심치 않게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난다. 세계여행자 배출 수가 그 나라 경제력을 반증하는 시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계일주를 하면 책 내고 많이 팔리는게 당연했지만 이제는 출판사에서 웬만한 컨셉 아니고서야 세계일주 책을 출판하지 않을 정도로 세계여행자 공급과잉의 시대가 왔다. 이제 다음 단계는 '여행의 유익'에 대한 기성 세대의 선입견을 깨는 일이 남은게 아닐까. 세계여행을 해도 굶어 죽지 않으며 이것은 돈지랄도, 허세도, 게으름도 아님을 삶으로 증명하는 것. 이전 세대는 산업화라는 시대정신 속에 맡은 역할을 다 하셨고 그 안에는 명도 암도 있었다. 그들의 위대한 업적 뒤에 적폐와 미세먼지가 가득 쌓였다. 부디 우 여행이 이전 세대가 이룩한 것들의 암을 지우는 역할이길 빈다. 다른 세계로 나가 새로운 해결 방식, 전 세계의 많은 실패와 성공을 공부하는 일. 그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다음 세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생을 급하지 않게 살고, 알바를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여행을 하는게 일상적인 그런 삶을 살고, 우리는 그 어떤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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