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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Apr 13. 2018

EP25. 밥 잘해주는 예쁜 엄마

젠장 콩 심은데서 콩 나버렸어요!

공지+덧) 아내의 이전 글 '66사이즈인 나, 레깅스가 잘 어울리는 외국여자' 의 조회수가 무려 45만이 넘었습니다. 이 정도면 조엔 롤링 킹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급인듯. 부러워서 너무너무 배가 아파 잠이 안 옵니다. 하여 아내와 상의 끝에 앞으로 쓰는 글에는 인스타 아이디도 함께 남기기로 하였습니다. (상관관계 무엇?) 암튼 더 많은 사진과 글은 저희 부부 인스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지랄방구 인스타 : www.instagram.com/@changyeonlim

*집순이 인스타 : www.instagram.com/@k.mang


WRITTEN BY 지랄방구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과달라하라가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누구나 엄마 생각은 뜬금 없이 찾아오는 것 같다. 여행 떠난지 2주만에 얼른 돌아오라고 카톡 보내던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내가 먼저 연락하기 전엔 거의 카톡하는 법이 없다. 카톡하는법을 모르시는건지. 생각해보면 내가 창동에 살 때도 엄만 통 먼저 연락 않다가 가끔 퇴근 후 집에 걸어가다 문득 생각나 내가 먼저 전화하면 왜 이제서 전화하냐고 혼을 내셨다. 그런 엄마가 왜 대체 멕시코 과달라하라 가는 길에 생각이 나냐는 겁니까. 아마 또 전화하면 혼을 내시겠지. 확실히 엄마는 츤데레다. 아니 세상 모든 부모는 츤츤이 기본 슬롯이지.


도시 이름에 A가 다섯개나 들어가는 과달라하라. 입모양 안바꾸고 발음이 가능하다.


'저지름 DNA'가 존재한다면 내 경우에는 아마 Y보단 X염색체에 묻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인생의 고비고비 마다 당신 특유의 저지름 스킬로 삶의 역경을 돌파했고 몇개의 명언을 남겼다. 내 인생에 울엄마 명언을 3개만 꼽으라면 아래와 같다.


1.(반찬이 싱거우면) 싱거워야 건강에 좋지. (반찬이 짜면) 짜야 반찬이지.

2. 과일은 무조건 비싼거 사먹어야 된다.

3. 니 아빠가 내 말만 들었어도 벌써 32평으로 이사갔다.


3번은 "은행돈이 내 돈이다"라는 네번째 명언과도 연결된다. 엄마는 의외로 삶의 여러 순간순간에서 '일단저지르기' 기술로 위기 상황을 돌파하며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연년생 형제를 남부럽게 키워냈다. 그런 엄마가 아들들 대학 다 보내고 새롭게 저지르기 시작한 분야가 '여행'이었다. 엄마는 JTBC보다 훨씬 전부터 '뭉쳐야 뜬다'는 절대 진리를 터득하고 계셨다. 엄마가 속한 '여행계'는 일반적인 계들의 정기예금 방식과는 살짝 달랐다. 일종의 단기 대출방식. 일단 계원들이 모여 패키지 여행상품을 6개월 할부로 긁는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 성실히 갚아가고 카드 영수증 싸인이 마를 때쯤 뭔가에 홀린듯 아줌마들은 다른 여행지를 알아본다. 그렇게 다녀온 중국이 내가 아는 것만 다섯번 이상, 베트남,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를 훑더니 작년에는 동유럽 5개국을, 올해는 기어코 스페인을 찍었다. 사실 엄마가 어디어디 갔는지 난 정확히 모른다. 엄마의 여행이 늘수록 냉동실에 곰국팩도 늘었고 아버지의 타박도 늘었지만 엄마는 "내가 이 나이에 아들 다 키우고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뭐혀 나 여행 간다고 당신이 돈을 보태줬어 내가 밥을 안해놓고 나가 블라블라 블라블라...." 엄마의 전투력은 매일매일 리즈경신이다. 그런 당신의 아들이 세계여행을 떠났소. 젠장 콩심은데 콩이 나버렸어요!


그러나 따꼬는 콩 빼는게 맛있다! Me gusto taco taco!!


우리 엄마 특기가 또 하나 있다. '내 친구 근황 전하기'. 보통 고1 때 친구들 얼굴 다는 기억 안나지 않나? 친한 애들 몇명 빼고는 걔가 누구였더라 하는 애들의 소식을 나는 아직도 엄마한테 듣는다. 엄마는 아직도 고1 때 내 친구들 엄마들이랑 한 3개월에 한번? 정도 모임을 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모임에 다녀와서 꼭 하시는 말씀. "얘 아인이 알지? 아인이는 어디 5급공무원이 됐다더라 그리고 걔 해인이는 뭐라더라 어디 외국계 회사를 다닌다던데..." 엄마가 말하는 그 애들이랑 학교 다닐 때 한 두마디 해봤나. 당췌 모르겠는 애들 사이에 이제 엄마들끼리만 친하다. 엄마! 이번에 모임 가시거든 당신의 자랑스런 아들은 미쳐가지고 삼십넘어 세계일주 떠났다고 자랑하세요! 팥심은데 팥 났다고!


내가 좋아하는 엄마 사진이 하나 있다. 어느날 집에 와보니 엄마가 소파에서 뭘 띵까띵까 하고 있었다. 엄마의 품속에 작은 우크렐레. 교회에서 다른 집사님 하는게 재밌어 보였다고 앞으로 꾸준히 배우겠다고 설거지에 부르튼 손가락으로 꽁냥꽁냥 하시는 그 모습이 귀여워 몰래 찍어놓은 사진을 나는 야근에 지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몇번 본적이 있다. 엄마의 우크렐레는 한 2주 정도 있다가 모습을 감췄다. 뭐하나 진득하게 못하는 유전자도 X에서 온게 분명하다. 엄마는 내가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말씀드린 날 아버지와 함께 깊게 한숨쉬며 어떻게든 막아보시려고 긴 설득을 이어 가시다가도 '어휴 그냥 한 1년 유학 간다고 생각해요 여보' 하고 은근히 내 편을 들어주셨다. 그날 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엄마가 형네 집에 찾아가 우셨다는 말을 나는 나중에 형수님께 전해 들었다.

엄마! 나 여기서 엄청 잘지내! 머리도 밀고!!

글쓰기의 주제에서 엄마는 언제나 치트키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웬만하면 못쓰기 힘들고 행여나 못쓰더라도 그리 부끄럽지 않다. 내가 울엄마 얘기 쓰겠다는데 누가 뭐래. 버스에서 갑자기 휘갈겨 써내려간 글이었지만 글을 쓰며 '엄마는 나한테 어떤 존재였을까'를 생각하다가 나는 아주 간단한 정의를 내렸다.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엄마는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는 왜 갑자기 과달라하라 가는 버스에서 생각 나가지고. 가끔 엄마가 보고싶다. 근데 엄마 또 카드 긁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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