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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Feb 10. 2018

EP22. 볼리비아를 여행한다는 것

바다 없는 나라의 해군

WRITTEN BY 지랄방구


페루 쿠스코에 와 있다. 잉카제국의 모습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마추픽추와 레인보우산으로 유명한 비니쿤카를 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 남미답지않게(?) 거리가 깨끗하고, 곳곳에 맛있는 것이 넘쳐나고-심지어 싸고!-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을 가지고 있는 쿠스코에 대해 나는 신나게 떠들고 싶었지만 그 전에 볼리비아에 대해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쿠스코 사진 업데이트를 미루고 미뤄왔다.

볼리비아 가즈아~~~~~

WIKIPIDIA 어깨 넘어로 본 볼리비아의 역사는 '패배'와 '실패'의 역사였다. 남미의 역사라는 것 자체가 스페인, 포르투갈의 식민지 역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볼리비아, 콜롬비아 등등의 나라는 스페인의 식민통치 이후에 비로소 근대국가 대열에 합류한 나라들이다. 그 중 페루와 볼리비아는 원래 잉카제국시절 하나였는데 내부적인 세력다툼으로 대 스페인 독립투쟁을 겪으면서 '고지대 페루'라고 불렸던 볼리비아가 따로 독립을 하게되었다. 19세기초 시몬 볼리바르라는 장군의 이름을 따서 '볼리비아'라는 나라가 1825년 공화국으로 정식으로 성립하였다.

시몬 볼리바르_출처 나무위키

볼리비아는 굉장히 다양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브라질, 페루,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의 필연은 그 나라들과의 잦은 분쟁이다. 아래의 그림과 같이 20세기 초반의 볼리비아는 작게나마 태평양을 끼고 있었고, 북과 남으로는 지금보다 넓었다. 그러나 1867년, 1903년 브라질과의 국경시비, 1938년 파라과이와의 차코전쟁으로 남북의 국토를 잃더니 급기야 1904년 칠레와의 태평양전쟁으로 볼리비아는 '바다없는 나라'가 되었다. 스페인의 식민통치로 '패자'인 채 시작된 남미들간의 전쟁에서 '패자중의 패자'가 된 나라 볼리비아. 가뜩이나 늦어버린 근대화라는 경주에서 가장 늦게 출발한 이 나라에는 계속해서 꼬리표처럼 들러붙는 수식어가 있었다. '남미 최빈국'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볼리비아의 국토상실_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는 볼리비아하면 우유니만을 떠올린다. 아니 사실 우유니가 어느 나라에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거나 헷갈리곤 한다. 남미 여행의 꽃이라 불리고, 엄청난 반사율로 사진을 찍으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곳. 수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이자 밤이면 별이 폭격하듯 쏟아지는 우유니를 품고 있지만 볼리비아의 실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개인적으로 어떤 잣대를 들어 여행지가 잘 살거나 못 사는 것을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볼리비아에 와서 경험한 몇 가지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이 나라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일단 버스. 인터넷으로 버스를 예약할 수 없다. 버스터미널에 가면 다양한 버스 회사들이 있는데 모든 예약과정은 수기로 작성한다. 수크레에서 라파즈로 이동하던 날 우리가 예약했던 버스 좌석에 더블부킹이 되어 있어 난감했던 경험. 사실 그보다 더 난감했던건 12시간이 넘게 이동하는 2층버스 안에 있던 화장실에 물이 내려가지 않았던 일. 볼일을 보려면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변기를 직접응시하지 않은 채 비틀비틀 서서 쏴를 감행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나 가능하던 일을 21세기에 겪는다.

남반구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라파즈 국회의사당의 시계.

또한 어떤 이가 남미 3대 위험도시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그리고 볼리비아의 라파즈로 꼽을 정도로 치안을 확신할 수 없는 곳이 볼리비아다. 우리도 수크레 호스텔에서 점심을 먹고 방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숙소 사장님이 혹시 리셉션에 있던 노트북 못 봤냐고 물어본 일이 있었다. 불과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대 낮에 호스텔에 도둑이 들어와 노트북만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던 것이다. 리셉션과 가장 가까운 방을 쓰던 우리는 의심받을까봐 두렵기도 했고 대 낮에 도둑들이 버젓이 활동하는걸 보고 이 나라를 만만히 볼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라파즈에서 도둑이나 소매치기 당한 한국인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케이블카를 타고 라파즈에서 가장 높은 곳 '엘 알토'에 오르면 걸어서 다시 시내로 내려갈 수 없다. 중간중간 있는 판자촌이 위험하기 때문에. 우유니의 아름다움에 가려진 볼리비아의 치안과 도시환경. 그러나 어찌 이 나라만을 탓할 수 있을까? 언제나 그렇듯 19-20세기 제국주의의 광풍은 21세기인 지금까지 그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티티카카의 저녁.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속 바다로 갈꺼라고.

"두번째 책을 묶으면서 소설 쓰는 일이 볼리비아 해군과 같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내륙 국가인 볼리비아에는 묘하게도 해군이 있다. 패전 후 영토를 뺏기고 남미 최빈국으로 전락한 볼리비아는 자신들의 지도에서 바다가 사라진 이후에도 해군을 해체하지 않았다. 오늘날 볼리비아 해군은 해발 삼천팔백십 미터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배를 탄다. 2년 전 내가 티티카카에 갔을 때 바다 없는 해군들은 하얀 제복을 입고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었다."  -김성중 소설집 [국경시장] 서문에서-


바다가 없는 나라 볼리비아에는 아직 해군이 있다. 나는 처음 이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들었을 때 우스갯 소리라고 생각했다. 김치없는 김치찌개일까? 조세호 없는 조세호집에서 놀기 같은 걸까? 그러나 이내 나의 비열한 냉소를 철회하게 됐다. 내가 뭘 안다고, 아니 그 역사를 알게된 내가 어찌 비아냥 거릴 수만 있는걸까. 언젠가는 회복할 바다를 꿈꾸며 오늘도 구슬땀 흘리는 볼리비아 해군들 앞에서 무엇이 그리 껄껄댈 일인가. 작년에 아이슬란드를 여행했을 때 만난 미국에서 한인 여행사 하시는 사장님은 우리한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가 수십년째 여행사 사장을 하면서 알게된게 하나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나라에 여행가면 꼭 이 나라 사람들은 뭐 해 먹고 사냐고 물어본단 말야. 웃겨 남의 나라 사람들 뭐해 먹고 사는지가 뭐 그리 궁금한지..."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전후에 가난을 극복한 대단한 나라.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 어마어마한 뒤쳐짐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볼리비아와 같은 나라를 응원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부터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유니를 여행할 모든 이들에게 볼리비아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배우고 접근하길, 위대한 우유니 만큼이나 환하게 빛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얼굴에서 작은 위로를 얻어가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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