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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아 로 Oct 20. 2020

부치지 못한 태교 편지 6

2015. 6. 12. -불확실한 태명

2015. 6. 12일

-불확실한 태명

어제 너의 아빠가 나에게 너의 태명을 처음으로 말했어. “우리 코돌이로 할까?”하고.
코돌이.

그 아이는 이미 존재하는 아이야. 태국여행에서 사 온 코끼리 인형이지.

내가 지어줬어. 코돌이.


태국의 나라야 매장에서 나는 손수건을 사고 싶었어.

나의 쇼핑에 조금 지친 형규는 나에게 그게 꼭 필요하냐고 물었지.

나는, 어린이집 교사 시절 아주 귀여운 여자아이가 가지고 다니던 나라야 손수건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아이가 생기면 나도 꼭 나라야 손수건을 어린이집에 들려 보낼 것이라고 말했어.

형규가 ‘누구 애?’ 하고 물었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우리 애’라고 말했지.

“우리 아기” 그때 네 아빠 형규의 얼굴을 보았다면 넌 너의 아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야.

네가 내 뱃속에 있을 수 있는 건 그때 네 아빠의 표정 덕분이야. 이건 정말 과장이 아니야.

사실 지금은 그게 어떤 표정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지만 그 순간엔 ‘내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20살 형규의 얼굴’이 이거였구나 하고 생각했거든.

그 후 나의 나라야 매장 쇼핑 분위기는 한순간 밝아졌고, 내가 무엇을 사든 형규는 다 호응해 주었지.

그 결과 우린 계획하지 않았던 많은 물건을 샀어.

그중 하나가 바로 코돌이야. 코끼리 인형.

인형 따위에 돈을 소비하는 것을 딱 싫어하는 형규가 먼저 사자고 했지. ‘우리 아기’를 위해.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는데 인형은 면으로 만들어졌고 예뻤거든.

코돌이를 사면서 우리의 2세 계획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지.
 


그래서 네 아빠는 티브이 옆에 있는 코돌이를 보면서 우리 아가 태명을 코돌이를 하자고 했어.

근데 내가 싫다고 했어.

난 너의 태명에 꼭 ‘복福’ 자를 넣고 싶었거든.

네가 복이 가득한 아이로 태어나길 바라니까.

그리고 내 주변에 복자가 들어간 태명을 가진 아이들이 다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행복하게 자라는 것도 봤고.
그러고 나서 혼자 너의 태명을 무엇으로 할지 계속 생각했어.

코돌이와 복을 합쳐서 코복이로 할까? 아니면 복코? 크크크


장난스럽게 가 아니라 귀하게 지어줄게.
네가 내 뱃속에 있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증명이 되었을 때 말이야.

지금은 혹여나 다 지어둔 태명이 무색해지는 월경 날이 와버려서 그때 마음이 많이 아플까 봐 좀 미룰래.

잘 크고 있지?

언제 널 확신할 수 있을까?

언제 널 확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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