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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아 로 Oct 29. 2020

부치지 못한 태교 편지 18

기억이 줄어가는 시간

2015년 7월부터


2020년 10월 지금 보니 코복이 유산 후에 내가 그렸던 그림들에는 날짜가 적힌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을 언제 그렸는지, 또 언제부터 이 그림들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코복이가 생기기 전의 기억은 오히려 생생한데

코복이와 관련된 기억은 희미합니다.

억지로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 어떻게 유산의 고통과 임신에 대한 두려움, 불안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3번 달아서 읽은 것입니다.

그 책이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지금 내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유산의 불안이 닥쳐오면 그 책의 책 등을 보았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시 임신했을 때는 그 책을 펼쳐서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 책 등에 쓰인 제목을 보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남편과의 다툼이 잦았다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난 시기라 결혼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어 우리 사이에 다툼이 필요한 문제들이 거의 없을 시기였는데 별 것 아닌 일에도 서로 예민해져서 자주 다퉜습니다.

남편이 많이 참아주었지만 다툼은 결국 일어나야 하는 것인 양 터져버렸습니다.

많이 다투고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둘 다 울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화풀이를 하고 싶거나.

실제로 화 낼 대상은 서로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어찌 되었든 기억이 줄어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시 처음 한 이야기로 돌아가 유산의 고통과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충분히 겪어내야만 지나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겪는 동안에는 매 순간을 치열하게 견뎌내느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을 빠짐없이 다 겪어내고 보니, 그것들은 상실에 대한 고통이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이었습니다.

책의 위로와 남편과의 다툼은 순간을 견디기 위한 수면제보다 더 귀한 약이었습니다.



유산의 고통은 임신하면 사라진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유산의 고통은 고통대로 다 겪어내야 무뎌집니다.

새로운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한 불안도 다 견뎌내야 받아들여집니다.


새 생명이 나에게 다시 온다고 해서 떠나간 생명의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는 아무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해요. 그리고 흔적도 남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받아들일 수 있는 크기가 되는 정도입니다. 원치 않는 유산을 한 누구도 그 상처가 사라지길 바라지 않을 겁니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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