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줄어가는 시간
2015년 7월부터
2020년 10월 지금 보니 코복이 유산 후에 내가 그렸던 그림들에는 날짜가 적힌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을 언제 그렸는지, 또 언제부터 이 그림들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코복이가 생기기 전의 기억은 오히려 생생한데
코복이와 관련된 기억은 희미합니다.
억지로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 어떻게 유산의 고통과 임신에 대한 두려움, 불안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3번 달아서 읽은 것입니다.
그 책이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지금 내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유산의 불안이 닥쳐오면 그 책의 책 등을 보았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시 임신했을 때는 그 책을 펼쳐서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 책 등에 쓰인 제목을 보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남편과의 다툼이 잦았다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난 시기라 결혼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어 우리 사이에 다툼이 필요한 문제들이 거의 없을 시기였는데 별 것 아닌 일에도 서로 예민해져서 자주 다퉜습니다.
남편이 많이 참아주었지만 다툼은 결국 일어나야 하는 것인 양 터져버렸습니다.
많이 다투고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둘 다 울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화풀이를 하고 싶거나.
실제로 화 낼 대상은 서로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어찌 되었든 기억이 줄어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시 처음 한 이야기로 돌아가 유산의 고통과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충분히 겪어내야만 지나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겪는 동안에는 매 순간을 치열하게 견뎌내느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을 빠짐없이 다 겪어내고 보니, 그것들은 상실에 대한 고통이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이었습니다.
책의 위로와 남편과의 다툼은 순간을 견디기 위한 수면제보다 더 귀한 약이었습니다.
유산의 고통은 임신하면 사라진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유산의 고통은 고통대로 다 겪어내야 무뎌집니다.
새로운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한 불안도 다 견뎌내야 받아들여집니다.
새 생명이 나에게 다시 온다고 해서 떠나간 생명의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는 아무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해요. 그리고 흔적도 남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받아들일 수 있는 크기가 되는 정도입니다. 원치 않는 유산을 한 누구도 그 상처가 사라지길 바라지 않을 겁니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