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9일 수요일
일 년 미리 쓰는 미래 일력
2022년 1월 19일 수요일
1990년대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타는 선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는데 고래가 그물에 걸렸을 때의 모습이다.
고래는 멸종위기 동물이라 보호해야 하는데 고래가 그물에 걸리면 그 큰 몸집이 그물을 빠져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그물을 뜯어 주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그 끝도 없이 넓은 태평양 바다에 수경 하나만 쓰고 뛰어드는 사람이 있다.
햇또라고 부르던데 그 사람은 깊이도 알 수 없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막 뛰어내려 자기보다 몇 십배나 더 큰 고래를 앞에 두고 그물을 찢어 주며 고래를 위해 길을 만들어준다.
한 시간 넘게 사투를 벌이고 다시 배로 유유히 올라온다.
올라왔을 때 그는 그냥 배 나온 아저씨 모습이다.
그 배 나온 아저씨가 다시 바다로 들어가면 바다도 텃밭같이, 고래도 고양이같이 대하는 사람이 된다.
그 장면만을 떠올리면 자꾸만 내가 사는 세상이 좁게만 느껴진다.
유치한 그림책 속의 한 장면 같다.
내 앞에 작은 케이크와 커피가, 마치 분유를 타 놓은 젖병같이 보인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그림책을 만든다고.
바다도 텃밭같이, 고래도 고양이같이 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그런 이야기를 책에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야 비로소
배 나온 나도 배 나온 작가가 되는 것이다.
고래 같은 이야기를 고양이처럼 살살 다루는 진짜 작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