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5일 화요일
일 년 미리 쓰는 미래 일력
2022년 1월 25일 화요일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빠는 원양어선을 타는 선원이었다.
1~2년에 한 번 집에 오던 아빠를 매일 기다렸다.
내 기억 속에 아빠는 비린내 나는 바퀴 달린 큰 가방과 함께 서 있는 더벅머리 아저씨다.
내가 좀 더 컸을 때는 국내선을 타셨고, 지금은 퇴직하셨다.
아주 오랫동안 뱃사람으로 사셨던 아빠가 퇴직하시고 집에 계시니 한동안은 식구들도 아빠도 서로 어색했다.
그림 그린다고 직장 그만두고 고향집에 내려와 있던 내가 아빠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거실에 같이 앉아 있을 땐 그 어색함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때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아빠에게 선원 시절 가봤던 항구 중에서 가장 멋진 곳이 어디였는지 물었다.
순간 아빠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눈이 초롱하게 빛났다.
아빠는 세계의 아름다운 미항에 대해 이야기해주면서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이탈리아와 스페인 이야기를 막 쏟아냈다. 그래도 아빠가 제일 좋았던 곳은 샌프란시스코라고 했다. 건물도 신식에 크고 항도 잘 되어 있었다고. 최고로 멋있었다고 했다.
70-80년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는 아빠에게 미래도시 같이 보였을 것 것이다.
유물이 가득한 유럽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있는 폴리네시아의 섬보다, 크고 세련된 건물과 잘 정비된 도시, 길고 멋진 다리, 다양한 인종의 많은 사람들, 상점과 볼거리가 가득한 샌프란시스코가 훨씬 더 감탄할 만했을 것이다.
거친 바다에 살다 잠깐 들른 그곳이 얼마나 좋았을까. 그곳 얘기를 하는 아빠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말씀을 마친 뒤, 거실 소파에 굽은 허리를 하고 앉은 아빠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였다.
떠나고 싶어 하는 눈빛.
지금이라도 당장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바퀴 달린 큰 가방을 열 것 같았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떠나고 싶다. 해외로 떠나고 싶다는 게 아니다.
내가 탐험하던 때로 떠나고 싶다.
처음 상경했을 때,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그림을 시작하던 때, 삼각김밥 먹고 홍대 작업실 근처를 산책하던 때, 반지하 작업실 반지하 자취방을 오가며 그림에 빠져있었을 때,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내일 밥벌이가 무서웠지만 탐험이 그토록 좋았다.
떠나고 싶다. 탐험하지 못하는 나로부터.
큰 바퀴 달린 가방에 장비 챙겨 뒤도 안 돌아보고 상경하고 싶다.
뭐라도 잡아 올릴 것처럼 기대를 가득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