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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아 로 Apr 19. 2021

일 년 미리 쓰는 미래 일력 -독립출판을 한다는 것.

2022년 2월 10일 목요일

구름섬이라는 설국열차


일 년 미리 쓰는 미래 일력

2022년 2월 10일 목요일


설국열차의 이야기 속에서 설국열차를 만든 윌포드는 처음 설국열차를 만들 때 자기가 만든 그 열차 안에 모든 것을 구현하고 싶어 했다. 나는 설국열차라는 이야기나 영화보다 윌포드의 그 생각에 살짝 마음이 끌렸다.

모두들 무시하고 비난한 설국열차가 마지막 인류를 구원한 위대한 발명품이 된다는 이야기는 허황되기만 하고 나에게 어떤 울림도 주지 않는다. 내가 집중한 곳은 자신이 꿈꿔 온 하나의 잘 갖춰진 세상을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다. 물론 그런 예로서 설국열차는 좀 과하긴 하다. 그래도 아주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예를 들면 초밥집, 수족관까지) 구현하려 하는 그 마음은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 레고 블록으로 집이나 우주선을 만들어 본 적이 있거나, 스케치북에 미끄럼틀이 있는 집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그 마음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실제로 그림책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기도 하고, 내가 사는 마을 아이들이 끄적여서 만든 그림책부터 세계 곳곳의 아름다운 그림책까지 모두 모아 그림책이 가득한 공간을 꾸며 놓고 책을 파는 것과 상관없이 매일 좋아하는 그림책과 그림을 보며 사는 것을 인생의 꿈으로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림책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래서 그림책의 이야기가 처음 탄생하는 순간부터 그림책이 만들어져 유통되고 독자에게 가서 울림을 줄 때까지 전체를 내가 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0여 년 전,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어바웃북스 전시를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실제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혼자 실제본해서 책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고 그걸 내가 보고 살 수 있었다. 세상에 한 두권 밖에 없는 책들이었다. 나는 그때 그 출판물들이 너무 좋아서 뒤에 잡아 놓은 약속시간을 잊고 거기 있는 거의 모든 독립출판물들을 다 보았다. 이야기가 길어 다 읽지 못하는 책도 다 훑어보긴 했다.


나도 그 이후로 독립출판물을 줄 곳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집에서 인쇄해 실제본해서 예술시장과 프리마켓에서 선보이고 팔았다. 어바웃북스와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그리고 아트 북페어에도 가지고 나가서 소개했다. 당연히 부족함이 많았다. 그래도 꾸준히 해오고 있고 느리지만 성장해가고 있다. 가장 최근에 만든 책은 인쇄소에서 제본하여 전국의 동네서점에 유통하고 있다.


실제본한 드로잉 다이어리와 처음 만든 실제본한 [구름섬] 책


처음 인쇄소에 맡겨 제본한 [구름섬]초판



[나비], [상상고양이프리퀄] 초판



구름섬 그릴 때 / 집에서 인쇄 색감 확인


예술시장에서 책 선보이던 모습/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서 만난 독자분 후기




그림책으로 독립출판을 한다는 것은,

이야기를 떠올리고 창작해서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외에,

그림을 스캔하고 보정하고 글 자리를 보면서 전체 레이아웃과 판형을 잡고 인디자인으로 편집하고 그림의 색감과 해상도를 확인하며 인쇄를 테스트하고 제본을 맡기고,

책이 잘 나올지 심장이 쫄깃해지는 것을 경험한 뒤 책의 모습을 보고 아쉬움보다 성취감과 만족도가 높으면,

완성된 책의 isbn 신청하고, 한편으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전국의 동네책방에 홍보메일을 보내고, 책방의 허락이 떨어지면 책의 모서리  하나도 구김 없이 독자에게 전해지도록 상하지 않게  포장해서 유통하는  까지를 이른다.


물론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져 나오고, 수정하다 지치고,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물에서 어설프고 아쉬운 부분도 발견된다. 특히 편집 프로그램을  다루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고 내가 가진 자본이 적다는 것에 좌절한다.


하지만 내가 내 속도대로 나만의 흐름대로 창작한다는 것과,

나의 노동력이 만들어낸 산물이 어떤 창작물의 부속품이 되지 않고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된다는 것은,

오로지 창작하는 것으로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기쁨을 준다. 나의 능력이 만든 창작물이 결코 나를 소외시키지 않게 된다.

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내 손과 생각이 안 닿은 곳이 없다. 그것은 내가 만든 하나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 기쁨이 정말 크다. 성취감도 크다.

이것이 설국열차를 만든 윌포드에게 공감 가는 부분이다


물론 그에 따른 책임도 크고, 책이 외면받았을 때 좌절도 크다. 혼자 모든 것을 다 하기 때문에 완벽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게 작가인 나의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한 창작품임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이건 변명^^))



책이 유통되어 홍보된 모습


그래서 매일 엎드려 고민하고, 졸고, 울고 조금씩 기뻐한다.

느리게 한 권씩 만들어 내는 중이다.

잘하고 싶다.

그 생각이 많이 든다. 창작욕이 솟구치고 내가 한 일에 애정이 간다.



그림책으로 독립출판을 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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