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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l 07. 2024

우리는 항상 실패하지만, 그러나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실패는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아 반짝인다.


얼마 전에 연재하는 글에 이런 문장을 썼었다.


“조금 빛바래면 뭐 어때. 결국 전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고마워. 늦게 도착해서 오히려 반가운 말도 있다는 걸 덕분에 알았네.”


그리고 조금 늦은 만남이었기에 다행히도 더 깊이, 길게 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인연이 꼭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더랬다. 재미있는 건 김초엽 작가의 다른 책들은 전부 읽었는데, 우습게도 이 책만은 읽지 못한 상태로 그대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http://aladin.kr/p/fL4x3


오지 않은 미래와 가상의 세계 속에서 이토록 현재적 이슈로 읽는 사람을 오래도록 붙들 수 있는 이야기를 써낸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  뇌과학자들이 늘 이야기하듯 사람의 뇌도, 신경학적 모델도, 사고의 프로토타입은 정말이지 변한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앞으로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다. 인간이란 어째서 이렇게 답답할 정도로 한결같은지, 항상 비슷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고통받는 일을 계속하는지. 결국 답이 없는 문제라는 의미도 되고, 인간 개체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답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인간이란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 존재일까.  누군가는 제 앞에 보장되어 있는 행복을 취하는 반면 또 누군가는 기어코 가시밭길에 다름없을 타인의 고통을 나눠지는 길을 선택하고야 말 텐데, 그들의 차이는 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내가 가진 상식적 범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자에게 내재한 아름다움을 마침내 이해하고 감동하게 되는 일은 가능한 것일까.


존재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어떤 마음들은, 정말로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이 설령 종을 초월하다 못해  계界를 초월한 존재들 being조차 이미 알고 있는, 인간만이 알고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감정들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었다면?


이미 떠나고 없는 사람에게, 이제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노라는 진심은 도대체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선배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제 생각은 이래요.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 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사진도 굳이 인화해서 직접 걸어두고, 휴대폰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와도 누군가는 아직 폴라로이드를 찾아요(...)" -205쪽
만약 그때 엄마가 선택해야 했던 장소가 집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어떻게든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면. 표지 안쪽, 아니면 페이지의 가장 뒤쪽 작은 글씨, 그도 아니면 파일의 만든 사람 서명으로만 남는 작은 존재감으로라도.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남길 수 있었다면. 그러면 그녀는 그 깊은 바닥에서 다시 걸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를 규정할 장소와 이름이 집이라는 울타리 밖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녀를 붙잡아줄 단 하나의 끈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264쪽


작가가 끈질기게 붙잡고 매달린 질문과 답을 얻기 위해 헤매었을 상념의 세계들은 누군가가 맞닥뜨린 현실이 되고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가 되어 이야기 속에 던져진다. 그 안에서 저마다의 개연성을 끌어안은 인물들이 치열하게 살아내는 순간순간들이 온몸으로 내게 부딪혀 왔다가 부서져 스며드는 찰나의 감각들이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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