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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미나인 Dec 18. 2021

도돌이표와 나선형

예민함에 대하여

 

 지금 제가 가는 길은 도돌이표일까요. 아니면 어쩌면 다행히도 3보 전진과 2보 후퇴를 반복하는 중인 걸까요. 분명 최악은 면했는데 왜 저는 자꾸 숨이 가빠오는 걸까요. 천장을 보고 울 때 눈물이 귓바퀴를 적시는 느낌을 너무 잘 기억하죠. 그저 잠에서 깼을 뿐인데 숨 쉬기가 불편해서 한 동안 아무것도 못하는 느낌을 너무 잘 알죠. 가슴 속이 무엇에 막힌 것처럼 묵직한 느낌을 동반한 채 모든 일상을 여미어나가는 그 감각은 이제 저를 떠나갔는데도 왜 여전히 롤러코스터를 타듯 행복과 불행의 격차를 크게 느껴야만 하는 걸까요. 저는 모든 것을 너무 늦게 배우는 것만 같아요. 이미 많은 힘을 살아남는 데 써왔는데 이제 그만 노력하면 안될까요. 저한테는 그것이 나름의 생존방식이었는데 몸은 정직하게도 아무것도 일궈놓지 못한 습관을 보여주고 제가 중얼거리는 혼잣말들은 정직하게도 텅 빈 내면을 드러내고 마네요.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진실인 걸요.


 날카롭게 벼려지고 싶어요. 나약한 의지를 바로 세워 명료하게 날을 세우며 살고 싶어요. 환경을 바꾸고 싶어요. 너무 그러고 싶었어요. 정말 간절히 바라고 바랐어요. 나약한 의지 뒤에 숨겨져 있는 예리한 의식이 글을 쓸 때만 등장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제가 발현될 수 있는 최고치로 살고 싶었어요. 저라는 씨앗을 다시 되돌아보고 싶고 그 가치를 다시 책정하고 싶었어요. 사실은 예민함으로 잃었던 그 모든 것들을 되돌이키고 싶었어요.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았던 저의 예민함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고 증명해얄 것만 같았어요. 무기력함을 수정펜으로 찍찍 긋고 싶었어요. 억만금을 주더라도 바뀌고 싶었어요. 오직 제 선택으로 살아낼 수 있는 근력을 키우고 싶었어요. 마음의 근육이 없어서 정신을 기대고 살았거든요. 하지만 제 씨앗을 돌아보니 사실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랬어요. 변화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자극이에요. 무엇보다 간절했던 것은 제 변화였어요. 제발 긍정적 자극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극적으로 아름다웠고 제발 긍정적 변화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은 제 원형이 불러일으킨 생각일까요. 아니면 이곳 저곳에서 설핏 지나간 단어들을 불러들여 짜깁는 중인 걸까요. 저도 저를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스스로 만들어낸 툴(tool)은 없네요. 저는 툴에 집착하는 걸까요. 정말로 원형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맞는 거겠죠. 저를 해석하는 방식은 너무 다양하고 모든 것이 들어맞으나 그 전부가 열쇠가 되진 못하네요. 저는 심지어 거울 속에 드러난 흠 하나에도 그 날 하루가 쉽사리 사라져 버려요. 이렇게 나약해 빠져서 어떻게 할까요. 아무것도 저를 자극하지 않아도 나약한 정신이 습관적으로 항상 익숙한 그 길로 접어들어 버려요. 안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억만금을 줘도 아깝지 않을 텐데. 이 지난한 여정을 누가 조금이라도 공감해준다면 고마울 텐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머릿 속 난 물길을 딴 곳으로 트는 거라는 걸. 누군가 제가 저에 대해 갖고 있는 죄책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이번만큼은 쉽사리 해결책을 입 밖에 꺼내고 싶지 않아요. 저를 위로하고 싶지도 않고 저를 사랑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적어도 도돌이표는 아니라고 일러주는 걸로 끝내야 겠어요. 제가 갖고 있는 그 모든 습관들을 좋은 습관들로 다 덮어버리고 싶어요. 저를 뒤집어 엎고 싶어요. 솔직히 저를 싹 지워버리고 싶어요. 그래서 그랬어요. 그림처럼 글처럼 무슨 작업물처럼 저도 그렇게 쉽게 뒤집혀지길 바랐고 준비물이 필요했어요. 저는 여러 번 모든 결론을 다 부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에 익숙했고 모든 것은 완성도에 대한 욕심과 더불어 예민함에서 비롯됐어요. 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느꼈고 긍정적 자극을 돈을 써서라도 구입해야 했어요. 지금도 그것이 구입할 수 있는 거라면 남은 평생 모을 수 있는 돈을 거의 다 지불해도 아깝지 않아요. 하지만 머릿 속 물꼬는 인내심 있게 조금씩 완벽하지 않더라도 실천하는 걸로 틀 수 있는 거더라고요. 그 외에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이걸 인정하는 것이 못내 달갑지 않지만요. 그동안 벼락치기로만 살아왔는데 그 벌을 이렇게 받고 있어요. 저도 날카롭게 벼려진 채로 살고 싶었는데 너무 쉽게 기진맥진했고 이런 저를 어떻게 다루는 건지 배울 길이 없었어요. 누군가 제 얘길 듣고 있나요. 정말 그것이면 충분하거든요. 온기가 사라진 눈물이 낯선 차가움으로 귓바퀴를 적실 때 그제야 막혔던 숨을 급히 들이쉴 수 있었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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