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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의남자 Oct 13. 2020

쉽지 않아요

맺고 끊음에 대해서

난 서른둘이에요. 나이 가요. 이렇게 나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아 거 뭘 얼마나 먹었다고~ 그래요.

오늘은  나이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아무튼,


해가 갈수록 새로운 사람을 알 기회보다 내 주변에 사람들을 잃을 일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땐 반안에 있는 40명이 다 친구였는데 졸업하고 나니 몇 명 안 남은 것 같네요. 그래서 더 소중한 친구들이에요. 그중에서도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삼총사예요. 남자애들이 다들 그렇듯 뭉쳐 다니면 든든하고 무서운 것 하나도 없고 술 먹으면 울고불고하면서 우리가 제일 잘 나간다고 까불면서 놀고 그랬네요. 세명이라 힘도  매력도 세배예요 그리고 트러블도 세배가 됩니다. 세배로 싸워요. 그래도 그냥저냥 함께 갑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는 먹고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아져서 전처럼 배번을 다 함께 할 수 없어요. 약속 같은 것도 필요 없이 아무 때나 부르면 모여 놀던 자리가 이제는 달력에 동그랗게 빨간 표시를 해야 만날 수 있는 행사가 되었어요. 셋이 다 모이지 못하면 둘이 만나요. 둘이어도 괜찮아요 충분히 재미있어요 충분히 든든하고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가다 갑자기 자리에 없는 한 명의 이야기를 하게 돼요.......

_

친구 사이에도 묘한 긴장감이 오가는 거 같아요. 자존심 싸움도 하는 것 같고요. 서운함이 쌓여도 싸우고 나면 다시 잘 풀고 화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깊은 곳에 무슨 결석처럼 남아있는걸 그전엔 몰랐던 거 같아요.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솔직 했지만 매 순간을 진솔하진 못했었던 거예요.


결국 다들 조금씩 지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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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주변에 나에게 반드시 득으로만 남아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달아요. 사실 꼭 득이 돼야 할 필요는 없지만 선을 넘고 해가 된다면 우리는 점차 혹은 급박하게 거리를 두게 됩니다. 그걸 요즘은 손절이라고 말해요. 손절을 하거나 당하는 데에는 때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손절도 유행인가 봅니다

인생의 주체는 바로 나이며 나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 또한 나이며 나의 행복감을 훼손하는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조금의 손해를 보더라도 더 이상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고 단절 함으로써 더 큰 손해를 방지해야 하는 주체는 나예요. 배타적인 자세는 적절하다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손절이라는 말이 쉽나 봐요.


우리는 셋이서 하나인 채로 인생의 절반 정도를 보냈는데 지금 보니 오래되고 기름칠이 안된 나사처럼 삐걱대기 시작하네요. 하나에서 다시 셋이 되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최초에 우리는 각각 하나씩이었으니 받아들여야 하겠죠. 더는 나를 깎아낼 수 없을 거 같아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주변에선 너무나 쉽게 빠른 손절이 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난 그냥 관계를 쉬어 가고 싶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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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얻는 일보다 잃는 일이 더 많네요. 그릇의 크기는 타고난 것인지 얻어갈수록 빼야 하는 것들도 생기나 봅니다. 너무 아쉬운 일입니다.


나를 해롭게 하는 것들로부터 과감한 단절을 통한 해방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며 나를 채워준 것들을 잊을 수는 없어요. 소중한 단어를 생각하다 친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으니 해가 지면 손 흔들어주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서로의 내일을 기다리던 그때처럼, 조금만 떨어져서 이야기합시다 너무 멀리 떨어져서 안 들리는 때가 생기면 전화도 하고 그러면서, 그러다 다시 술 한잔이 하고 싶어 지면 빨간 매직으로 달력에 동그랗게 그려놓고 오늘은 잠을 푹 잡시다.


그렇게 영영 안 볼 사이를 하지 말고 잠시 기다려 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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