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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나 Oct 23. 2021

유품을 정리할 수 없는 이유

언제가 되면 정리할 수 있게 될까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세 명의 가족을 떠나보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빠.

30년은 넘게 다 같이 함께 살아온 곳인 만큼 세 분이 남긴 것들은 집안 곳곳에 가득하다. 가장 먼저 작별을 고한 외할머니가 떠나신지도 6년 정도 됐는데도 할머니의 손때 묻은 물건이 여기저기 있는 걸 보면 이런 일에 참 소질 없는 사람들이 우리가 아닐까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방이다. 가구 위치는 좀 바뀌었지만 벽에 걸린 사진은 두 분이 살아 계셨을 때 걸어놓은 그대로다. 서랍 속의 물건도 70% 정도는 그대로다. 유품을 정리하기는커녕 어떤 것들은 위치조차도 옮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빠가 작업하셨던 컴퓨터 책상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아빠 손글씨 메모가 모니터 한쪽 끝에 붙어 있고 컴퓨터 본체 위에는 작업을 위해 정리해 두신 명함이 그대로다. 별채에 있는 아빠의 작업실 책상은 박물관 전시물처럼 생전의 사용감을 유지 중이다. 들어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방치라 표현해도 무방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니 먼지도 그득할 것이다.


돌아가신 두 분의 사진이 걸려있는 방에서, 몇 가지 물건은 생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용하신 그대로인 공간에서 태연히 두 분의 부재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 가족을 방문한 지인 한 분은 고인의 물건이 일상의 공간에 있는 게 그리 긍정적이진 않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다며 당장 처분이 힘들다면 최소한 생활공간 내에 있는 유품만은 정리하길 권했다. 걱정과 염려를 한껏 품고 있는 말과 문장에서 진한 마음이 전달됐다. 그분 또한 비슷한 시기에 가족을 보냈기 때문에 자신이 경험했던 굴곡의 시간을 떠올리며 몸소 체득한 방법을 전달하려 노력했다.


나 또한 그분이 지적한 비슷한 부분에서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그분의 충고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했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다르다고 했던가. 무엇 하나 틀린 게 없는 말들인데 그걸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주저하는 중이다. 나를 포함한 남은 가족들의 일상 회복을 위해서는 꼭 해야 하는 유품 정리가 일종의 배반 행위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 가신 분들의 소지품을 정리하는 게 최선일까.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닌 사물일 뿐인데 저것들을 치운다고 해서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짙은 회색빛의 감정이 사라질까. 유품 정리라는 행위가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는 할까? 때로는 행동이 생각을 낳는다고는 하는데 그와 비슷한 결과로 연결되지 않으면 어쩌지? 혹 기대하는 효과가 아닌 상징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이라면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어쩌면 별 것 아닌 저 사물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기둥일 수도 있지 않나?


훌훌 떨쳐도 될법한 생각의 파편을 껴안고 떠난 이들의 움직임이 그려지는 공간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답답하고 미련해 보일 것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아직은 그분들(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아빠)의 흔적을 놓고 싶지 않다. 우리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그분들의 존재가 거대했던 만큼 관련된 모든 요소를 완벽히 제거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견디고 극복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말을 방패 삼아 아직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세 분의 손때 묻은 거울, 효자손, 이불, 책, 만년필로 생활 속의 자잘한 필요를 충당하며 살고 싶다. 그러니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7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 아빠가 돌아가신 지 226일이 흘렀지만 연속한 이별이 선사한 여파는 아직 가시지 않았기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건강한 이별을 준비하려 한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최선인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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