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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나 Nov 11. 2021

테크노 전사가 처방한 감정조절약

테크노 뮤지션 - I Hate Models



I Hate Models



그는 전사다.

이 한 줄을 읽고 위 사진을 본다면 냅다 내 뒤통수를 갈기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야리야리한 몸을 한 청년에게 전사라니? 제정신이야?”


그럼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그  반응에 더 어처구니 없다는 말투로 한 마디 더 붙이겠다.


“그의 손에 들린 저 서슬 퍼런 검이 보이질 않는다는 거예요? 진짜요?”


그의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여기까지의 문장이 죄다 헛소리로 들릴 거다. 나도 안다.

저 유약한 프랑스 청년에게 김치냉장고용 김치통 하나 맡기기도 불안해 보인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감히 단언컨대 저이의 음악을 세 곡만 들으면 우리는 제각각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최강의 무기”를 손에 든 거대한 청년과 조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로 내 눈에 보이는 검은 그의 키를 훌쩍 넘는 크기에 서슬 퍼런 기운을 맹렬히 내뿜고 있다.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기운은 저음 비트에 맞춰 촉수처럼 움직이며 듣는 이의 잡념을 난도질한다. 처음에는 강압적이며 무례하게 들리는 음색(난도질)에 휘청거릴 수도 있다. 이렇게 훅훅 치고 들어오면 어쩌자는 거야. 하지만 이내 푸른 기운의 난도질에 잠잠해지는 잡념과 함께 평안이 영역을 늘려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잔잔한 음악만이 마음의 평화를 준다는 건 착각이다. 그 어떤 부드러움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성난 감정의 파도가 몰아칠 때가 있다. 이때 필요한 건 차분하고 느릿한 멜로디가 아니다. 감정의 파도가 나의 일면을 때릴 수 없도록 그 힘을 분산시키는 무엇이다. 파도를 힘으로 눌러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억누름은 더한 반발을 가져올 뿐이다. 파도의 기세가 힘을 쓸 수 없도록 다각도에서 섬세하지만 치밀하고 또 끈질긴 손길이 필요하다. 그의 멜로디는 이런 손길처럼 작용한다. 그렇게 격한 감정은 강하면서도 차분하고 또 세세한 비트와 선율에 설득당하며 서서히 평화로 향한다.


격한 감정이 평화로 그 성질을 바꿨음에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화의 감정을 다스렸을 때 더욱 그렇다. I Hate Models의 도움으로 잔잔한 감정 상태를 되찾았다 해도 이성의 일 부분은 분노의 대상을 쉽게 놓지 못한다. (화라는 감정이 이래서 무섭다)  화를 유발한 대상(혹은 상황)이 아직 눈앞에 존재할 때는 더욱 그렇다.  “아! 후련하다”라고 미련 없이 한 마디를 던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렇다고 내가 화를 내기엔 감정적 신체적 소모가 너무 크다. 이럴 때  I Hate Models의 작품은 또 한 번 활약한다. 그의 강렬한 비트는 잠잠해진 감정의 파도 깊은 한 구석에서 스멀거리는 “화”를 흡수한다. 그리고는 무게감 있는 검푸른 비트와 멜로디에  촘촘히 엮어 나의 “분노”가 날뛸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맹렬한 뒤틀림, 꿈틀거림과 함께 그렇게 나의 “분노”는 하나 둘 증발한다.  


때로는 안정제로, 때로는 감정의 대변인으로 분해 쌓아두면 독이 되어버리는 어두운 감정을 처리해 주는  I Hate Models의 작품들.

혹 그를 직접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두 손 꼭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자기 비난과 비하의 농도가 한없이 옅어져 그나마 이만큼의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사실이다. 앞서 말한 “화”와 “분노”는 내가 나에게 느끼는 것들이었다.

쉴 새 없이 태동하고 태어나는 어두운 감정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던 때가 있었다.

내가 나를 향해 쏘는 무자비한 감정과 말의 화살들.

고맙게도  I Hate Models를 필두로 하는 몇몇 테크노 디제이들 덕분에 이만큼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시작으로 나를 구해준,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테크노 뮤지션 몇몇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혹여 여기에서 소개하는 음악들이 내가 느낀 작은 “위로”의 형태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한없이 기쁠 것 같다.





대문 사진 : Isabella Mende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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