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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띠프렌 Jul 26. 2021

선생님

행운

       





♡ 콩닥콩닥     




 초등학교 입학식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학식이 내일입니다. 엄마는 동그란 털 방울이 달린 빨강 털코트 오른쪽 가슴에 하얀 거즈를 반으로 접어 옷핀으로 고정합니다.

    

“ 윤경아, 선생님 말씀하실 때 한눈팔지 말고. 똑바로 잘할 수 있지? ”  

   

“ 아라쏘. 나 잘할 수 있어-어! ”     


왕 방울만 한 눈을 반짝거리며 빤히 쳐다보는 윤경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 그래, 엄마는 걱정 안 해. 엄마가 일주일만 학교 앞까지 데려다 줄 거야. 그다음부턴 혼자 갈 수 있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윤경의 표정이 다부집니다.                



드디어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긴장했는지 예정보다 일찍 일어난 윤경은 세수부터 말끔히 하고 머리빗을 엄마에게 가져다주고는 그  자리에 핑~돌아앉습니다.     


“ 벌써? 아직 멀었는데? 엄마, 오빠 도시락 싸주고 해 줄게. 조금만 기다려.”     

“ 싫어 싫어. 나 먼저 머리 묶어줘. ”     

“ 윤경아, 오늘부터 학교 가는데 아기처럼 떼쓸 거야? 흠~ 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네~에? ”     

“ 아냐, 아냐. 그러지 마. 아라 써요-오. 기다릴게요. ”   

       






그랬다. 윤경에게 선생님은 절대복종. 경의(敬意)의 대상이다.

엄마 손 잡고 입학식에 가던 날. 한 겨울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차가운 겨울바람에 운동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 어머님들은 뒤로 물러나 주세요. 삐-익 –삑 ”

주임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아이들은 이리저리 움직였다.

    

“ 앞으로-오 나란히. ”     

아이들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고 두 줄로 세워 각반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는 두 명씩 앉을 수 있게 직사각형 나무책상과 걸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책상 밑에는 책과 공책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옆에는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거는 못이 박혀 있다.


윤경은 양 갈래로 딴 머리를 작은 손으로 쓱 만져 양 어깨에 가지런히 놓고 엄마가 옷핀으로 고정한 하얀 가제 손수건도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조금 큰 의자를 책상 앞으로 끌어당겨 엉덩이를 의자 뒤에 바짝 붙이고 팔을 허리 뒤로 올려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은 초록 칠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미지의 선생님을 기다렸다. 옆에 앉은 찔찔 남자 친구는 의자를 들썩거리며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옆 친구가 신경 쓰이는지 윤경은 새초롬해서 미간을 찌푸렸다.


 


드르륵.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첫눈에 난~ 알았죠~오오♪

     

아이보리 투피스 정장을 입은 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윤경은 선생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강렬한 눈빛 때문일까. 선생님은 자박자박 윤경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수그리고 이름을 부르셨다.     


 윤 경. 이름처럼 똘똘하게 생겼네. 오늘부터 일주일간 반장이에요. 알았죠? ”     


' 반장?'

윤경은 그게 뭔지는 몰라도 오매불망 기다리던 선생님이 자기 앞에 있는 게 좋아서 입꼬리가 자꾸만 씰룩거렸다.



                                                


까마득히 먼 옛날. 콩닥콩닥 첫 설렘.

윤경은 첫 담임선생님의 실루엣과 말투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선생님의 추억

    

마른 몸매에 하얀 피부. 반 곱슬머리에 날카로운 눈매의 김 선생님은 음악을 담당하셨는데 교내 합창부를 신설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셨다. 어린 윤경의 재능을 알아보고 남다른 열정으로 TBC ‘누가 누가 잘하나 ’ 연말 결선까지 진출하게 했다.          


선생님이  백지장처럼 하얗고 뼈가 보이는 긴 손가락으로 오르간을 치면 반 아이들 모두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손가락 움직임에 눈이 휘둥그레지곤 했다. 선생님은 말씀하실 때 느릿느릿 한데 합창시간에 음정이 틀리면 날카롭게 지적해서 모두를 긴장하게 만드셨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선생님은 윤경을 교무실로 부르셨다.     

 

“ 윤경아, 이 노래 한번 해봐 ‘ 갈매기 ’ ”     

“ 여기.... 서요? ”     

“ 그럼, 텔레비전에 나가려면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거 많이 해 봐야 해. ”     


선생님은 실제 무대에 서는 것처럼 아이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연습을 꾸준히 시켰다. 학년이 바뀌고 열정 가득한 예술가 선생님은 이듬해 다른 곳으로 전근 가셨다. 김 선생님은 어린 시절 음악적 재능을 키우고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게 했다. 선생님이 바라는 대로 진로 선택을 하진 않았어도 윤경에게는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신 키다리 선생님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 스쳐 지나는 많은 인연 가운데 보배로운 스승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Steve Barakatt -Tendres souvenirs

https://www.youtube.com/embed/Yxpu6_La9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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