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이태리 여행 에세이
4화 - 버로우 마켓에서 맥주 마시기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향하기 위해 이 층 버스에 올랐다.
이층 버스 맨 앞좌석에 앉으면 운전사보다 앞쪽에 위치한 듯 느껴져 정거장에 있는 사람들을 버스가 빵빵 치는 것처럼 보았는데 나는 유치하게도 그 점이 항상 너무 재미있어 가까운 거리를 가는 경우에도 매번 버스 이층으로 뛰어올라가 맨 앞자리에 앉곤 했다.
세인트폴 근처에 다다르자 역시 교통체증이 대단했다.
회색빛의 건물들 사이로 빨간 이 층 버스가 줄 서 있고 저 멀리 하얀 성당이 어렴풋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주저 없이 내려서 걷는 방법을 선택하고 신랑의 손을 잡아끌었다.
대성당 앞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으로 가득했는데 이럴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전 세계사람들이 찾아오는 랜드마크를 가지고 있다는 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물론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말이다.
세인트폴 대성당에 들어가 초를 켜고 잠시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결혼을 하면서 얼마 전까지는 가족의 범주에 들어있지 않던 새로운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 기도할 때마다 떠오른다는 건 뭔가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앞에서 언급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마켓에 한두 군데라도 들러보고 싶었고 마침 근처에 있는 버로우 마켓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밀레니엄 브릿지로 향했다.
버로우 마켓은 유명 쉐프들이 식재료를 구입하려고 들르는 시장인데 각종 신선한 과일, 치즈, 빵 , 각종 소시지나 고기류가 유명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구경하고 싶은 게 한가득이었다.
세인트폴에서 밀레니엄 브릿지로 향하는 인파는 꽤 많았지만.. 걸어서 밀레니엄 브릿지에서 버로우 마켓까지 가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니었는지 우리 둘 뿐이었다.
버로우 마켓에 갈 계획이 있다면 런던 브릿지로 가는 버스를 타는 편을 추천한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이어지지 않는 길을 헤매며 걸은 후에야 버로우 마켓에 도착했다. 버로우 마켓을 향하는 길 중간중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 매력적인 펍이나 레스토랑이 가득했기 때문에 헤매는 동안 내내 그저 기분이 좋았지만, 막상 버로우 마켓에 도착하자 마켓이 다 끝나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아쉬워하며 요깃거리를 찾아 빠르게 움직이다가 마켓 외곽 길에서 길게 늘어서 잔 맥주를 마시고 있는 무리를 만났다. 펍이 좁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펍에서 산 잔 맥주를 길에서 자유롭게 마시고 있었다.
우리도 펍 안으로 들어가 큰소리로 맥주를 주문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맥주를 한잔씩 주문했다.
펍안에서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합석해서 인사하고는 각자 또는 각자의 친구들과 맥주를 즐겼다.
펍 밖으로 나와 버거를 사려고 사우스워크 대성당 쪽으로 나왔는데.. 나름 분위기 있는 먹자골목 같은 느낌의 수제 버거집이 가득했다. 테라스라고 표현해야 하는 걸까.. 말 그대로 골목길에 테이블과 의자가 펼쳐져있고 버거를 주문하는 사람들과 주문한 버를 먹으며 대화를 하는 사람들로 골목이 가득 차 있었다. 난 단연컨데 이골목에서 먹은 수제버거가 영국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맛이었다. 어느 집이라고 추천할 필요도 없이 모든 음식점들이 신선한 야채와 바로바로 구워주는 소시지가 잘 어우러져 있는 훌륭한 햄버거였다. 물론 오랫동안 허기에 시달려서 더 맛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햄버거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맥주잔을 들고 골목길 가운데서 선 우리는, 유럽에 왔다는 게 새삼 다시 실감 났다.
한잔씩 더 맥주를 마시고는 타워브리지에서 야경을 보기로 하고 타워브리지 쪽으로 향했다.
타워브리지까지 가는 길은 10년 전과는 꽤 달라진 모습이었다. 간결하고 멋스러운 빌딩들이 즐비했다.
건물 사이를 걷다가 강 쪽으로 나왔다. 강에 반짝반짝 비치는 햇살을 보자니 다시 한번 마음이 행복했다.
템즈강을 따라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한 손에 맥주잔이나 와인잔을 들고 음악을 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십 년 전 런던에 왔을 때 친구들과 숙소에서 맥주 한잔씩 하고 한밤중에 야경을 보자며 삼각대를 메고 잠옷바람으로 타워브리지로 향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괜히 웃음이 났다.
타워브리지로 향하는 템즈강변에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거리공연과 거리공연을 자유롭게 즐기는 가족들, 건강을 위해 조깅하는 젊은 사람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들, 데이트하는 연인들, 헌팅하는 더 어린 남녀들을 차례로 지났갔다. 어디를 가도 다 똑같은 사람 사는 모습인데 왜 유럽인들은 더 자유롭게 보이는지 모르겠다는 유치한 부러움이 한번 더 느껴졌다.
6 월치 고는 바람이 차가웠지만 자유롭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