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 이우일
NBA 농구팀의 연고지로만 알고 있던 포틀랜드, (포틀랜드 블레이저스)
갑자기 여기저기서 포틀랜드란 단어가 들려왔다. 매거진 B나 여타 잡지에서 도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취급하며 사람들은 힙한 도시 줄 세우기를 시도하는데, 포틀랜드는 힙함의 상위권에 위치한 도시가 분명해 보였다.
도날드 닭의 이우일이 쓴 퐅랜은 바로 지금 사람들이 포틀랜드를 소비하는 방식(힙한 가게, 나이키, 킨포크 등 있어 보이는 브랜드의 본산지)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2년 정도 포틀랜드에서 살면서 느낀 것들, 했던 것들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포틀랜드를 찬미하지 않는다. 생활인의 시선 절반, 또 여행자의 시선 절반이 오묘하게 합쳐져 포틀랜드와 포틀랜드에서의 자신을 더듬어간다. (하긴 여행자가 아니라면, 어떤 도시 이름을 제목으로 삼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오랫동안 살고 있는 곳인데 도시 하나만 떡하니 제목으로 넣고 글을 쓴다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글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페이퍼를 자주 읽었다. 재수 때까지 간간이 읽었다. 선현경의 가족 관찰기란 만화를 기억한다. 이우일, 선현경, 은서, 이렇게 세 가족이 재미있게 사는 모습, 퐅랜을 읽으며 그때 그 가족이 생각났다. 거의 20년 가까이 지난 시차, 서울이 아닌 포틀랜드란 공간, 화자 또한 선현경이 아닌 이우일, 그러나 그 시차보다 공통점을 찾고 싶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엄마, 아빠가 아닌 뭔가 재밌는 걸 도모했던 그들, 가끔은 폭발하는 이우일 씨, 뭔가를 모으던 이우일 씨의 모습은 퐅랜에서도 나온다. 어쩌면 난 포틀랜드에 대한 호기심보다 이우일이란 작가에 대한 팬심 때문에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처음 포틀랜드에 와서 우산을 쓰지 않는 포틀랜드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가졌던 이우일 씨, 결국 우산을 던져버렸다. 어떤 변화의 시작인가. 어설픈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게 중요한 요지다. 몇 년 살러 왔는데 고작 일주일 정도 머무는 사람처럼 보이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테니.
그러나 결국 외부인의 시선으로 퐅랜을 관찰한다. 어쩔 수 없이 한국과 포틀랜드를 비교한다. 어떤 기준점이 있다는 것, 바로 그게 한국. 또는 서울이라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처음 일본에 갔을 때 내가 아는 서울과 다른 거리 풍경과 분위기를 보고 너무 놀랐다. 내가 살았던 서울이 내가 생각하는 가능성의 처음이자 끝이었는데 그 경계 밖도 가능하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경계 밖을 설명할 때 경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일본 여행에 대해 물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엄청 깨끗하더라고. 서울보다...'
퐅랜 또한 한국에서의 생활을 빗대 포틀랜드를 설명하곤 한다. 포틀랜드와 서울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만약 사막에 간다면, 아니 우주에 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요새 집 근처 하천을 뛰는데 월래밋 강변에 대한 글을 읽으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마리화나를 피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낯선 강변길을 달리는 건 현재의 러닝과 다를 거란 환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건 정말이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뭔가 쓸모없는 것을 모으는 걸 좋아하는 이우일 씨는 포틀랜드에선 더욱 손쉽게 카세트테이프를 모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CDP를 사기 전까지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었다. 당시 핸드폰 쓰는 사람도 있고, 주변 친구들은 휴대용 소니 CDP로 음악을 듣는데 나만 뭔가 뒤떨어진 것 같았고 언젠가 나이가 들면 CD를 수백 장 사서 들어야지, 마음먹었는데 정작 CD를 그렇게 산 적 없고 애플뮤직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다만 테이프에 대해 그리움 이상의 애틋한 감정이 든다. 그때는 테이프로 참 꼭꼭 씹어서 음악을 들었는데 지금은 10초쯤 듣고 넘긴다. 예전에 CD나 테이프로 들었던 밴드가 아니라면 더더욱.
완독 후 글을 적기 위해 앞에서부터 넘기는데 책에 대해 뭔가를 쓰는 게 쉽지 않았다. 낯설지만 익숙한 일기처럼 느껴졌다. 책방에 가서 좋아하는 작가에게 사인을 받은 이야기, 포틀랜드에서 서울을 잠시 들른 후 포틀랜드에 돌아왔을 때 느낀 평온한 기분, 썰매장에서의 에피소드 등. 정말 재미있게 읽었지만 크게 새로운 무언가가 있지 않았다.
어쩌면 이걸 노린 걸까. 우리가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디에 살아도 본질적인 것은 바뀌지 않는다. 결국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 읽고 걷고 하는 게 기본적인 너를 이루는 모든 것이다.라는 이야기?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페이퍼 가족 관찰기의 연장선에서 그들의 생활기를 재미있게 읽은 게 큰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