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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 Sep 13. 2023

걷는 도시, 행복 도시(Happy City)!

스마트시티가 걷는 도시를 돕는 방법

1991년 오클라호마시티는 수천 개의 일자리를 가져오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유지관리기지 유치경쟁에서 인디애나폴리스에 패했다. 유나이티드 항공사만을 위한 특별 금융혜택과 대규모 시설투자 등을 내세우며 유치경쟁에 승리를 확신했던 오클라호마시티 행정부는 충격에 빠졌다. 유나이티드는 회사의 결정이 보조금 패키지와 관련이 없으며, 직원들이 오클라호마시티와 같은 황량한 곳에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거절이유를 밝혔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2019년 120조원을 투자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드는 SK하이닉스를 유치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간 경쟁이 치열했지만, 최종 선택지는 경기도 용인이었다. 이유는 인력수급의 용이성과 삶의 질을 높이는 정주여건이었다. 도시의 고민이 깊어진다.


삶의 질이 높이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 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도시계획전문가 찰스 몽고메리(Charles Montgomery)는 그의 저서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에서 공공보건, 심리학, 행동경제, 신경과학, 사회학, 건축학 등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설계한 ‘Happy City(행복 도시)’를 제시한다. 그는 행복 도시를 ‘모든 사람이 친구, 가족, 낯선 사람과 인생에 의미가 있는 유대를 맺고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 도시’라고 말하고, ‘걷기 좋은 도시’를 행복 도시의 가장 필수 요소로 규정하였다. ‘행복 도시’는 스마트시티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찰스 몽고메리,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2017)


스마트시티는 단순히 도시 기능을 전산화하거나 최첨단 기술을 실험하는 경연장이 아니라, 도시의 존재 이유와 시민 삶의 양식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발전해 왔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도시는 자기 수준에 맞는 저마다의 스마트시티를 ‘선택’한다. 선택의 기준은 도시가 채택하는 통치(거버넌스) 양식과, 혁신경제 수준에서 결정된다. 어떤 스마트시티이냐와는 상관없이 스마트시티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도시가 지향하는 바를 구현하는 수단이다.


걷기 좋은 행복도시를 위해 도시디자이너는 다음의 몇 가지를 도시 설계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우선, 도로와 사람이 커뮤니케이션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높은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뉴욕의 거리는 삭막하게 보이지만 사람들이 걷는 동안 매1분마다 새로운 스트리트를 만나면서 경험의 밀도를 높여준다. 비결은 블록 크기에 있다. 뉴욕시에 한 블록의 크기는 대략 가로 길이 250미터에 세로 길이 70미터 정도다. 서울 강남구 한 블록의 길이가 600미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수 있다.

뉴욕시와 강남구의 거리 랜드스케이프

사람의 이동이 빈번한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더 재미있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역에서 400m(걸어서 5분) 안쪽을 균일하게 역세권으로 본다. 하지만 실제 활기가 넘치는 구역은 100m 공간안쪽이다 (Todor Stojanovski. 2019). 사람들은 시야에 사람들이 보이는 공간으로만 움직이며 유기적으로 뭉친다. 유기적인 군집을 만드는 세밀한 장치들, 가령 놀이시설, 탁구대를 설치하기만 해도 거리 활기가 달라진다.

텅빈 거리에 탁구대 하나만으로 사람을 운집하게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거리의 건물배치와 보행자의 상호작용을 설계한다. 사람들은 상호작용하는 요소가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내려간다. 인간은 숲처럼 복잡한 환경을 적응하면서 진화하였다. 시각적인 정보가 부족하면 우리 뇌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사람은 풍경이 단조로운 큰 거리를 지나갈 때 스트레스와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진다. 캐나다에 있는 <해피 시티 연구소>는 시애틀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자원봉사자가 지도를 들고 활기찬 공간과 빈 벽만 있는 공간에서 길 잃은 연기를 하도록 하고, 낯선 사람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를 관찰하였다. 실험결과 활기찬 도로에 있는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게 7배 더 많이 핸드폰으로 길안내를 도와주었으며 4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동행해 주었다. 상호작용 공간의 활력도는 다른 사람에 관대함에 영향을 미친다.


복잡한 풍경과 단조로운 풍경이 주는 관대함의 차이


인간은 건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체감한다. 도로와 건물이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우면 지나가는 사람은 전혀 교류를 느끼지 못하거나 프라이버스의 위협을 느낀다. 건물과 사람의 거리가 3~4.5미터, 4층 높이까지가 상호 교감하는 이상적인 사회적 거리로 본다.

이상적인 사회적 교감을 만드는 건물과 사람의 거리와 높이

세 번째로 걷는 도시를 위한 다양한 유인 장치를 설계한다. 골목 특성을 드러내는 전통적인 디자인 요소, 작은 이벤트, 팝업 매장, 불규칙한 배치의 벤치 등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우연성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단위당 점포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점포의 출입문 개수도 이벤트의 밀도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이벤트 밀도가 높아지면 보행자에게 권력이 이양된다. 보행자의 선택권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한편 로컬크리에이터는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도시자산이다. 로컬크리에이터는 지역의 자연환경, 문화적 자산을 소재로 창의성과 혁신을 통해 사업적 가치를 창출한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며 골목으로 사람들을 불러오는 중요한 매개자이다.

차량의 속도를 시속 20km 이하로 운영하는 보행자우선도로나 보행자전용도로는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은다. ‘차 없는 거리’는 골목 상인들과 끈질긴 대화가 필요하다. 상인들 입장에서 보면 차 없는 거리보다 공용주차장을 늘려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다. 자동차 없는 거리를 홍보하고 사람을 몰리게 하면서 차가 없어도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성공경험을 상인들이 체감해야 한다. 작은 시작으로 출발하여 여러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검증하며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패율을 줄이는 방법이다.

걷기 좋은 도시의 장치들 (전통적인 디자인, 작은 이벤트, 팝업, 불규칙한 벤치)

마지막으로 도시디자이너는 걷기 좋은 도시를 지원하는 스마트시티 기술을 설계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걷기 좋은 도시에서 스마트시티 기술은 배경으로 숨어서 작동한다.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지점과 스마트시티 기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빠른 교통수단이 행복지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혼잡한 교통으로 스트레스를 가져올 수 있다.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행위가 행복을 만든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어디로, 얼마나 갈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걷기 좋은 도시에서 스마트시티 기술은 빠른 교통수단보다 퍼스널 모빌리티 등 다양한 교통수단에 접근을 쉽게 하고 교통수단 이용금액 결제를 하나의 카드로 통합처리하는 모빌리티 서비스(MaaS)를 제공하는 등 걷는 행위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집중한다.

사람들의 만남을 촉진하는데도 스마트시티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위성지도를 기반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어디에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지를 알려주고, 나의 현재위치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벤트와 로컬 크리에이터에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스마트 센서를 통해 도시정보망을 구축하여 인구의 유동량과 교통 흐름을 분석하고, 다양한 도시 문제를 스마트하게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거리 전역에 설치된 스마트가로등과 폐쇄회로(CC)TV는 경찰이나 119센터와 연동하여 사람들이 안전하게 거리를 걷도록 지원할 수 있다.

위치기반 축제와 이벤트 알람 제공

지금까지 정책은 사람중심의 스마트시티 구현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개발중심 어바니즘을 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보여왔다. 근본적으로 아파트 중심의 단절된 문화와 경쟁적 환경을 추구하면서 공동체와 사람중심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지역사회의 문제와 도시의 쇠퇴를 깊이 연구한 미국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이상적인 도시는 걸어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도시의 당면한 모든 문제가 기술에 의해 해결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있음으로써 해결된다는 굳건한 그녀의 믿음 때문이다. 우리를 더 풍요롭고 더 똑똑하며, 더 자연친화적이며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도시를 위해 사람이 만나고 모일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스마트시티 기술은 도시에 사람을 모으고 커뮤니티를 구축하는데 가장 우선적인 목표를 두고 봉사해야 한다. <完>


■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전술

걷기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한 조건들

▸[질문] 자동차 없는 거리를 만들 때 소상공인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나 사례는 없는가.

- 캐나다에서 몬트리올은 비즈니스가 활성화되지 않는 여름에는 거리를 폐쇄한다. 상인들에게 자동차 없는 거리를 홍보하고 사람을 몰리게 하면서 차가 없어도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중요한 원칙은 시작을 작게 하면서 경험을 늘려가면서 성공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없는 거리가 실제 매출을 증가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러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테스팅하면서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패율을 줄인다.


▸[질문] 한국의 경우 이미 도시화 개발 함께 개발중심의 건물과 도로가 설계되었다. 전통적 특성을 살리면서 새로운 디자인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 한국 사회는 밀집도를 높이고 규모를 키워야 하는 입장이다. 전통적인 디자인 요소와 관행들, 시각적 복잡성을 제공하는 방식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외부인이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전통적인 요소를 밝히는 것이다. 행복을 위한 도시 디자인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단순하게 보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는가이다. 30M안에서 방향성을 느끼고, 상호교감하는 시각적 복잡성을 가져오는 방식을 고민하라. 작은 범위에서 먼저 디자인하며 접근하라.


▸[질문] 동남아 도시의  고층건물이나 한국의 아파트 처럼, 인간중심의 도시와 밀집도가 실제 높아졌지만 인간 중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밀집도와 인간중심성이 같이 가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길항하는 것이 아닌가. 

- 아파트는 복잡성이 있는 것같지만 외로움도 증가시킨다(Lonely and crowded at the same time). 한편으로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사람들에게 치인다고 느낀다. 공용 공간을 이용하여 자전거 바람넣는 기구를 설치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일만한 이유를 만들어 준다(Happy homes A toolkit for building을 활용해 보라) 

“사람중심의 도시 건설이라는 말을 하면서, 여전히 개발중심의 urbanism을 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아파트의 단절된 문화와 경쟁적 환경을 추구하며,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약하다. 당연히 사람중심 도시를 건설은 형용모순이 발생한다. 여전히 자기 집값이 높아지기만을 원하는 사람들과, 심활성화를 위해 주차장부터 요구하는 상인연합회 사람들의 틈새에서 스마트시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도시전략 디자이너가 이러한 길항하는 요구들 사이에서 걸어가야 한다. 


■ 참고

알랭드보통,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여섯가지 요인(What makes a city attractive?),가디언, 2017.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여섯 가지 기본 사항이 있다. 첫째는 질서(order)다. 하지만 과도한 규칙성은 영혼을 파괴하고, 거칠 수 있기에 보다 조직화된 복잡성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파리나 뉴욕처럼 혼돈과 지루함의 중간에 있는 도시를 좋아한다. 두 번째는 눈에 보이는 활력 있는 삶(visible life)이다. 거리는 사람과 활동으로 가득 차야 한다. 세 번째 원칙은 도시가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컴팩트하게 만드는 것이다. 네번째는 '방향성과 신비로움'입니다. 작은 거리와 큰 거리의 균형을 통해 길을 잃거나 길을 잃지 않는 경험(You've Lost Me)을 제공한다.  다섯 번째 원칙인 규모(scale)이다. 높은 스카이라인보다 베를린이나 암스테르담처럼 5층정도의 중간 높이의 밀도를 만든다. 여섯 번째 열쇠는 '지역화를 만드는 것(make it local)'이다.  그 도시만이 가진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수용하고 동일성을 피해야 한다. 


▸Todor Stojanovski,  Urban design and public transportation – public spaces, visual proximity and Transit-Oriented Development, 2019.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공간을 중심으로 개발하라(Pay attention to what people can see and cultivate vibrancy) 트랜짓역에서 400m (걸어서 5분). 여기가 활기가 넘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관찰해본 결과 원으로 활성화된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스팟지점에 덩어리로 뭉쳐 있다. 실제 100m공간 안에 유기적으로 뭉쳐져 있다. 즉 사람의 시야에 보이는 공간으로 사람들이 움직여 간다. 


찰스 몽고메리,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Happy City), 미디어윌, 2017.

찰스 몽고메리는 도시의 사는 사람이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탐욕과 판단착오 때문에 스스로 주인임을 거부하고 있는 현대 도시민의 삶 속에서 행복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찰한다. 도시와 인간, 인간에 대한 관계, 인간이 꿈꾸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심리학적, 사회학적, 인문학적 근거를 통해 설명하며 세계 곳곳의 행복한 도시의 사례를 들어 진정한 행복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쉽게도 한국어판은 절판되었다. 몽고메리가 2021년 불룸버그 시티랩과 인터뷰한 자료는 <행복한 도시>에 대한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더 행복한 도시를 설계하는 방법', 2021) 


▸Happy Cities, Happy Homes Interactive Toolkit

캐나다에 본사를 두고 있는 <Hapy Cities>연구그룹은 도시내 다양한 구성물과 인간의 원할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돕니다. 다양한 툴킷들과 디자인 철학 등의 풍부한 정보를 홈페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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