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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May 20. 2021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빠를 보낸 지 두 달, 그리움과 공존하는 일상에 대하여


아빠 사랑하면, 아빠가 가더라도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마. 우리 딸은 잘 살 거야.


아빠를 하늘로 보낸   달이 다되. 마지막 즈음 아빠가 나에게 남긴 말처럼 아빠에 대한 생각은 슬쩍 밀어내고, 너무 슬퍼하지 않으면서  지내고 있다. 친구, 연인, , 아이에 밀려 아빠는 뒷전이었던  습관이 되어, 아빠 생각을 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 쉬워서 슬프다.

 

돌아보면 아빠와 보낸 시간은 인생에서 그리 길지도 않을뿐더러, 유난스럽게 기억할만한 추억도 많지가 않았다.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 아빠와 엄마는 작은 가게를 차렸다.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휴일도 없이 여는 가게였다.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외식을 할 수도 가족 여행을 갈 수도 없었다. 어쩌다 동네 갈빗집에 가더라도 아빠가 먼저 먹고 뛰어가 엄마와 교대해 주는 식이었다. 어린이날이나 입학식이나, 인생의 순간마다 엄마가 있거나 아빠가 있었지만, 엄마 아빠 두 분 모두의 얼굴을 보는 일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아빠를 떠나보낸 지금 엄마가 홀로 서울에 계시는데도 그게 낯설지가 않다. 아빠는 저 멀리 고향의 작고 오래된 가게에 앉아 손님들을 맞고 있을 것만 같다.

 

가게 문을 닫고 가족 모두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은 내 평생소원 중 하나였다. 조르고 졸라, 가게 문을 겨우 닫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당일치기에다 고향 바로 옆 도시로 떠나는 소박한 여행이었다. 여행의 끝에 가족사진을 하나 남겼다. 성격이 급해 빨리 끝내고 집으로 가자는 아빠를 어르고 달래 겨우 얻어낸 사진이었다. 사진을 찍은 후로 형제 중 누군가는 결혼을 했고, 누군가는 아기를 낳았다. 가족이 많이 늘었고, 조만간 새로운 사진을 찍어두고 싶었다. 아빠가 아프기 전엔 가게 문을 닫기가 어려워 사진을 찍지 못했고, 아빠가 아프고 난 후로는 조금 더 나아지면 찍자고 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그때 찍은 사진이 아빠와 함께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이 됐다. 아빠의 영정에 올라간 그 사진을 보며 그때라도 찍어두길 잘했다고, 슬픈 안도를 했다. 찍기 싫다고 짜증을 내던 아빠도 사진에서만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무정한 말은 진리다. 일상은 힘이 세고, 울음을 그치고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가끔은 아빠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덮는다. 지나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에서, 스마트폰이 얄궂게 띄워주는 아빠 사진에서, 무심코 집어 든 라면 봉지에서, 아빠는 떠오르고 마음을 휘젓는다. 보고 싶은데 보고 싶다고 말할 대상이 사라진 공백이 이렇게 쓸쓸한 일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얼마 전 참석한 친구의 결혼식에서도 곤혹을 치렀다. 신부가 신부 아버지와 입장하던 순간, 아빠와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던 장면이 기억에서 불쑥 떠올랐다. 때에 맞지 않은 울음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스스로 당황했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때 맞잡고 있던 손을 더 소중히 여길걸. 아빠를 좀 더 오래 지켜볼걸. 돌아가는 길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전하지 못한 말이 가 닿을 곳을 잃어 목이 따가웠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할머니가 담담히 써 내려간 시에서도 아빠를 읽는다. 극 중 할머니는 딸을 먼저 보냈다. 소중한 이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볼 법한 소망. 영화를 보다 나도 같은 소망이 있음을 깨닫고 오래 울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말을 뱉지 못하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던 거구나. 그렇게 그리움을 딛고 살아지는 거구나. 오늘도 해결할 수 없는 그리움을 안고,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아빠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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