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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Oct 25. 2023

갑자기 연락해도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12.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6월 말. 친척 결혼식 때문에 일산에 갈 일이 생겼다. 평소 가던 동네가 아닌데 멀리 가게 되어서 기왕 나온 김에 이 동네에서 뭐 할 게 없나 생각하던 차에 K가 생각났다.


“K님, 지난번에 말했던 그 Bar 오늘 가볼까요?”


지난번 망원동에서 술을 마실 때 K가 일본 위스키에 대해 말했었다. 히비키라는 일본 위스키가 자기 취향에 딱 맞는데, 요즘 일본 술이 구하기 어려워져서 술집에서도 잘 못 봤다고 하며, 합정동에 딱 한 군데 여러 병 구비해 둔 곳이 있으니 다음에 시간 될 때 같이 가서 마셔보자고 했었다. 일산에서 돌아오는 방향에 합정동이 있으니, 딱 이동 동선이 맞을 것 같았다.


“앗, 저 오늘 저녁에 약속 있는데.”


“그래요? 아쉽네요. 오늘 그쪽 가는 길에 가볼까 했는데.”


이렇게 술 벙개는 무산되는가 싶어서 안 되면 별 수 없지 하려던 참에, K가 바로 톡을 보내왔다.


“어라? J님 언제 오는데요?”


“저는 결혼식이 1시라서, 끝나고 합정동 가면 3시 반에서 4시 정도일 것 같은데요?”


“그럼 그쯤 만날까요? 전 저녁 약속이라 그전에 시간 돼요.”


예상치 못한 낮술 제안이었다. 낮술이라, 내가 진정한 술꾼으로 거듭나려면 거쳐야 할 과정 아니겠는가. 오히려 좋은 제안이다 싶어서 그러자고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합정역으로 이동하는데 한 낮 기온이 33도라는 날씨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K는 햇볕에 오래 나와있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런 날씨에 밖에 나와도 되나 싶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합정역 8번 출구 방면에서 K를 만났는데, 역시나 평소처럼 깔끔한 옷차림이었다. 주말에도 편하게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는 성격은 아닌가 보다 싶었다. 하긴, 결혼식을 다녀온 내 옷차림을 생각하면 K가 이렇게 입고 나와줘서 다행이긴 했다.


“덥죠? 얼른 이동할까요?”


“아, 그런데 그 Bar가 아직 문을 안 열어서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서 좀 쉬다가 갈까요?”


생각해 보니 4시도 안 됐는데 문을 안 열었겠구나 싶어서 그러자고 했다. 역 근처 예쁜 카페에 들어갔는데, 수입 병맥주를 함께 파는 곳이었다. K는 병맥주, 난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나눠 먹을 케이크도 하나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더위를 식혔다.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떤 뒤 위스키 Bar로 장소를 옮겨서 마시고 싶던 히비키를 주문했다. 부드럽고 향긋했지만 큰 특징은 없는 느낌이라 나는 썩 취향은 아니라고 느꼈다. 다른 위스키까지 한 잔씩 더 주문했는데, 그 와중에 K와 계속 대화를 나눈 건 아니었다. 그런데 둘 사이에 정적이 흘러도 딱히 불편하거나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조용히 매장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위스키를 홀짝이는 순간이 꽤 편안하다는 걸 느꼈다. 이런 침묵이 편안한 관계는 그동안 몇 년 이상 관계를 쌓아온 친구들에게서만 느꼈던 기분인데, K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낄 줄은 몰랐다.

K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늘 그렇듯 자신의 느긋한 페이스대로 음악을 들으며 위스키잔을 굴리며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한결같은 모습에 나 또한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이제 약속 장소 가셔야죠?”


“네, 슬슬 가야겠네요. 집에서 심심할 뻔했는데 고마워요.”


“저야말로 고맙죠! 다음에 봐요.”


가볍게 인사한 뒤 전철역으로 들어서며 문득 깨달았다. 지난번 남대문 벙개날 느꼈던 묘한 알 수 없는 기분의 정체를.

내게 새로운 인간관계 하나가 추가된 거다. 지나는 길에 갑자기 연락해서 만날 수 있는 새 친구가 생겼다. 그것도 남자 사람 친구가.  


몇 개월 전 새로운 모임에 나가기로 결심했을 때, 내 목표는 하나였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오래도록 이어질 인생의 친구이길 빌었었다.


아직 K가 그런 친구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30대 후반에도 이런 친구가 생길 수 있구나 싶어서 신기하고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이 우연한 인연이 고마웠다. 내 삶에 새 챕터가 시작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편안한 친구로 정리될 것 같던 K와의 관계가 달라진 건, 7월의 제주에서부터였다.


바나나푸딩이 맛있었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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