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집에 울려퍼진 웃음소리가 깨닫게 해준 것

4. 예능과 SNS와 회사의 공통점

by 조니워커


그와의 짧은 통화 이후, 내 삶은 놀라울 만큼 단조로웠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도, 사람들과 있을 때도, 수시로 마음속에 혼란과 우울이 찾아오는 시기였다.



팀의 특성상, 매 년 연말은 야근이 반복되는데 이 시기에도 역시나 주 3일 이상 야근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일어나면 씻고 출근하고, 정신없이 회사 생활하다가 문득 그가 생각나면 다시금 지난 기억이 떠올라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한 기분이었다. 고양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며 사진첩에 한가득 있는 아이들 사진을 보고 또 보며 그리워하는 시간도 많았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며 다시 현실에 집중하고, 일만 하다 늦은 저녁 또는 밤에 집에 돌아오면 TV를 켤 틈도 없이 바로 씻고 눕는 매일의 반복이었다.


너무 이렇게 일만 하고 기계처럼 사는 나 자신이 안타깝고 애처로운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집 근처를 산책하고 산에 오르기도 했다. 단골 카페를 만들어볼까 싶어 카페 탐방을 나섰다.


이사 전 몇 번 동네를 산책했었지만, 이사 후에 더 구석구석 다녀보니 생각보다 더 더 낙후된 동네이긴 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네가 많았고, 곳곳에 공사장과 함바집, 길에서 담배 피우는 공사 인부들이 많은 조금 무서운 동네라는 느낌도 들었다.

전에 살던 동네와 비교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괜스레 내 삶의 질이 떨어진 것 같아서 슬퍼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아냐, 내 집을 가진 30대 싱글 여자가 흔치 않잖아! 나중에 더 좋은 동네로 가면 되지!’라고 괜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안 좋은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했다.



혼자 산 이후 부모님께 전화가 자주 온다.

엄마는 원래 일주일에 한 번은 통화했었는데, 이상한 건 아빠였다. 아니,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겠지. 이혼한 막내딸이 혼자 살기 시작했으니 걱정되는 건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빠는 1년에 한두 번 통화할까 말까 한 분이라 나로서는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술에 취해 전화를 많이 하셨다. 그럴 때면 나도 제대로 통화하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고, 술 취한 아빠를 좋아하지 않기도 해서 살갑게 통화하기가 어렵다.

일부러라도 더 효도해야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마음처럼 말이 나오지 않을 때는 너무 죄송한 마음이 함께 찾아온다.



평소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만 비공개 계정으로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마저도 좋아하는 고양이 강아지 사진 계정이나 웹툰 계정을 팔로우해서 틈틈이 보려고 만들어놓은 용도다.


혼자 산 이후에는 침대에 누워도 내 옆에 다가오는 고양이들이 더 이상 없어서,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인스타그램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그러다 알고리즘이 이끌었는지 놀라운 토요일 영상을 우연히 봤다. 그와 함께 살 때 저녁을 먹으며 늘 시청했던, 가장 좋아하는 예능 중 하나다.

김동현 선수의 재밌는 영상 하이라이트였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조용하던 집 안에 내 웃음소리가 퍼지자 문득 떠올랐다.

내가 오늘 처음 웃었다는 걸.


이혼 전에는 늘 웃을 일이 많이 있었다. 내 곁엔 그가 있었고 고양이들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다.


이번 주말 내가 어떤 일을 했나 돌이켜 보니, 웃음이 나올 일을 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미세먼지가 최악이었고, 하필이면 예능 프로그램조차 보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놀라운 토요일이든 무한도전 레전드 편이든 일부러라도 챙겨 봐야겠다고 다짐해봤다.

행복해지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법이니까.

나를 우울의 바다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으니까.



아이러니 하지만 그 시기의 나에겐 회사가 힘이 되고 있었다. 바쁜 시간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막아주고, 내 속사정을 모르는 회사 동료들은 늘 즐겁게 나를 대해줬다. 나 역시 이런 내 상황을 전혀 티 내지 않고 밝게, 늘 똑같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일을 멈추면 안 되나 보다.


하지만 회사에서라고 늘 마음이 편할 수 없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혼 전에는 알 수 없던 또 다른 문제가 나를 고민에 빠트렸다.


예능을 잘 안 보는데 놀라운토요일은 꾸준히 보고 있다. 나의 최애캐는 넉살이었고, 그는 붐을 좋아했었다. (출처:tvN,채널S)


*총 30화로 계획 중입니다. (1부 15화, 2부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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