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돌싱 커밍아웃을 왜 내가 고민하나
법적인 이혼은 사실 몇 개월 전에 이미 한 상태였다. 가족과 가장 친한 친구 1명을 제외하곤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일이라 말하지 않았었는데, 회사의 친한 동료들한테는 말해야겠다 싶었다.
평소 워낙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고 남편 이야기도 자주 했었기에, 다들 나에게 스스럼없이 남편에 대한 질문이나 사소한 이야기를 자주 건네는 편이다. 그런데 이혼 후에는 더 이상 그 질문들에 대답해줄 수가 없어서 어물쩡 거짓말하며 넘어갔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영 낯설었다.
원래 거짓말을 싫어한다.
그와 헤어진 이유도 정직하지 않은 모습을 내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엄격한 편은 아니지만, 나 자신과 내 배우자에게는 기준이 엄격하다. (사실 그 외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든 내가 알 바가 아니고, 내 기준에서 이해 못 하는 행동을 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성격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반복해서 거짓말을 하는 상황을 그냥 두는 게 맞는 걸까.
아니, 이건 나 답지 않은 모습이다.
그렇다고 전사 공지사항으로
“저 이혼했으니까 앞으로 남편 얘기는 묻지 않기로 해요. (찡긋)“
하며 전체 메일을 보낼 수는 없으니까, 일단 사적인 일을 자주 공유하는 가까운 동료들에게만 오픈했다.
다들 예상대로 너무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부부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차장님네 부부처럼 살 수 있다면 저도 결혼하고 싶어요. 너무 이상적이에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었다.
실제 내가 꿈꾸던 삶의 목표 중 하나였다. 30년, 40년 후에도 손 꼭 잡고 다니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타의 모범이 되는 부부로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와 나라면 그런 부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지만..
역시 인생은 늘 계획대로 이루어지진 않는 법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나니, 회사 생활이 훨씬 편해졌다. 오히려 말해줘서 고맙다고, 더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회사에 이혼 사실을 알리는 문제로 고민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회사에 약점을 먼저 오픈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충고하기도 했었다.
그때 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었다. 이혼이 약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놀라웠고, 회사 동료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 회사가 4번째 회사인데, 그전에 다닌 모든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10년 이상 친구로 지내며 좋은 인연을 이어가는 분들이 많다. 이번 회사에서도 말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모두 나를 아껴주는 좋은 사람들임을 알고 있다.
이혼 후 남편은 이제 곁에 없지만, 그래도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는 여전히 많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인생을 막 살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자, 가까운 사람들은 솔직한 고백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제 그 외의 사람들이 문제다.
날 이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내가 기혼자인 줄 안다. 그들과 우연히 대화 중에 남편이나 자취 얘기가 나왔을 때 “저도 혼자 살아요.”라고 말했더니, 그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느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표정과 숨길 수 없는 당혹감. 참 사람들 표정은 솔직하다. 그런데 내가 더 부연설명을 안 하니, 더 묻지도 못하고 눈동자만 굴릴 뿐 순간 정적이 흐른다.
“어라? 결혼하지 않으셨었어요?”
라고 솔직하게 물어보면, 나 역시
“네, 그런데 몇 개월 전에 이혼했어요.(씨익)”
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겠지만, 묻지도 않은 말을 내가 나서서 말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뭐라 말하기 힘들었다.
이혼 후 알게 된 사람들에게 하는 자기소개도 약간 애매하다.
물론 초면에 “안녕하세요. 조니워커입니다. 기혼이었는데 지금은 미혼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할 일은 없겠지만, 자연스럽게 대화 중에 결혼 여부를 알 수 있는 주제가 나오기도 하니까.
그럴 때 나는 미혼인 척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 현재는 배우자가 없는 미혼 상태인 건 맞는데, 이게 ‘척’이 되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설문조사에도, 회원가입할 때도 ‘기혼’과 ‘미혼’.
선택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한자로 기혼은 ‘이미 기’ 자를 쓰니, 한 번 결혼한 경험이 있는 나는 기혼자라고 부르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국어사전에 반대말로 미혼의 정의를 ‘아직 결혼하지 않음’이라고 정의했으니, 그렇게 해석하면 난 기혼인 게 더더욱 맞다.
그럼 누군가 나에게 “결혼하셨어요?”라고 물어보면 “네,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배우자는 없어요. 이혼했거든요.”라고 말하는 게 정답이긴 할 텐데, 이건 솔직한 걸까, TMI일까.
이성 만남이 목적인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사이라면 처음부터 돌싱임을 밝히는 게 당연히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의 자리에서 누군가가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먼저 말하는 건 의미 없는 TMI라는 생각도 든다. 정보 교류와 스터디 목적의 모임에서 “안녕하세요. 돌싱입니다.”라고 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쯤 되니, ‘아 어쩌란 말인가.’하는 답답한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이걸 왜 고민하고 있나 싶다가도, 이혼 후 정말 자주 겪게 되는 상황들이라 고민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이혼 중일 때도, 지금도.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그냥 나 답게, 나 자신으로 잘 살고 있는데.
왜 이런 분류와 호칭을 내가 먼저 신경 써야 하는지 조금 우스워졌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스스로를 소개하고 싶은 대로 소개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말해도 기만이라면, 적어도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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