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눈물을 참다

7. 야근을 하던 화요일, 전남편의 전화를 받다

by 조니워커


회사에서 직급이 높아질수록 맡은 일의 양과 책임이 늘어나는 시기였다. 작은 회사를 다니다 보니, 팀원이 적어서 혼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야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날도 늘 시켜먹는 샐러드 도시락집에서 배달시켜 저녁을 먹은 뒤 팀원 한 명과 함께 야근 중이었다. 사무실은 조용했고, 팀원과는 아무도 없으니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그의 이름이 떠있었다.


쿵.


잔잔하던 마음이 쿵 쿵 소리를 내며 빨라짐을 느꼈다.


조용히 폰을 들고 비어있는 회의실로 걸어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자기야, 나야.”


여전히 나를 자기라고 부르는 그의 다정한 목소리. 우리가 헤어진 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당신은 참 여전히 당신이구나 싶었다. 이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면 누가 우리를 이혼한 부부라고 생각할까.


“응.”


“퇴근했어요?”


“아니, 오늘은 야근 중이었어요.”


“아.. 지금 회사구나. 요즘도 일이 많아요?”


“응, 그렇지 뭐. 당신은요?”


“나도 매일 똑같지. 그래도 재택근무하니까, 집에서 일하고 있어요.”


“다행이네.. 저녁은 먹었어요?”


“응, 그냥.. 적당히 있는 걸로 먹었어..”


아마 잘 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같이 살 때도 내가 없는 날은 늘 라면이나 빵 한 조각 구워 먹는 식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던 사람이었다.


“전화한 건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마저 줘야 하는 돈 있잖아. 그거 언제 줄지 미리 말해줘야 자기도 계획 세우기 좋을 것 같아서.”


남은 위자료를 6월 중순까지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늦게 줘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사실 난 그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더 줄 생각이었다. 그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요즘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며 뉴스에 계속 나오는 중이었다. 나에게 줄 돈을 그의 스톡옵션을 행사해서 주게 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요즘 주가 추이대로면 나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응, 나는 급하게 쓸 돈은 없으니까 당신 편할 때 보내줘도 돼요. 기간이 더 필요하면 말해줘요.”


“아니야.. 이미 늦게 주는 건데 그럴 수는 없지.”


잠시 침묵이 흐르다 그가 조심히 입을 떼며 요즘 안부와 근황을 얘기한다.


“당신은 코로나 아직 안 걸렸어요? 난 얼마 전에 걸렸어. 덕분에 집에 계속 있었네.”


“아, 그래요? 많이 아팠어요?”


“응 조금.. 열도 나고 기침도 나고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내가 없을 때 아팠었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아팠다. 원래 기흉을 앓았던 적이 있어서 기침을 하면 많이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다행이네..”


“.. 아, 그리고 지난달에는 내가 계속 미뤘던 안식휴가 있잖아. 그걸 썼어요.”


그의 회사는 일정 기간 근속하면 1개월의 안식휴가를 주는 곳인데, 그는 무려 2개의 안식휴가를 못 쓴 채 가지고만 있었다. 회사가 너무 바빠서 1개월이나 휴가를 쓸 틈이 없었는데, 나와 함께 살 때도 그렇게 일만 해서 어떡하냐 제발 좀 쉬어라 해도 책임감 때문에 안식휴가를 쓰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래요? 잘했네. 어디 좀 다녀오지 그랬어요.”


“아이들도 있고, 멀리 가긴 힘드니까 그냥 부모님이랑 동생네 부부랑 같이 강원도 2박으로 여행 다녀왔었어.”


“아.. 기왕 한 달이나 쉬는데 멀리 여행 좀 다녀오지.. 그럴 때는 나한테 연락해서 고양이들 맡겨도 돼요. 당신한테 무슨 일 생겨서 아이들 돌보기 어려우면 나한테 말하라고 했잖아요.”


“응, 그건 아는데.. 어차피 당신도 없이 나 혼자 어디 여행 다니지 않잖아요. 다음에.. 다음에 그런 일 생기면 연락할게.”


이런저런 근황 얘기를 몇 개 말하다, 그가 이어서 말한다.


”.. 그리고 난 지금도 일주일에 3번은 당신이 꿈에 나와. “


쿵.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뭔가 말이 목구멍에서 걸린 기분이었고, 괜히 눈물이 고였지만 꾹 참았다.


왜 이 사람은 이렇게 계속 한 결 같을까. 난 당신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다른 사랑을 찾아보려고 돌싱 카페도 가입해봤었다고, 외롭지만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분명 그는 이 미련을 더더욱 끊어내지 못할 거다. 그런 사람이니까.


“요즘도.. 꿈 자주 꾸나 보네요? 깊게 못 자죠?”


“늘 그렇지. 당신이 있을 때보다 더 깊게 못 자는 것 같긴 해.”


“…”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더 이상 뭘 해줄 수도 잔소리처럼 조언을 해줄 수도 없다. 이제 우리는 부부가 아니니까.

무려 6개월 전에 끝난 인연이고..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에게 이 인연을 더 이어가는 건 안된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한 이혼이었으니까.


더 이상 내가 아무 말하지 않자 그가 말했다.


“자기 이제 일 해야 되는데, 내가 너무 오래 통화했네. 미안해요.”


“아니에요. 괜찮아.”


“그럼 일 얼른 하고 퇴근하고.. 내가 다음에 또 연락할게.”


“응.. 당신도 푹 쉬고요.”


“응.. 그럴게..”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가 조금 잠겨간다는 게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하며 먼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통화를 마친 후, 참지 못하고 눈물이 흘렀다.

왠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복받쳐 올랐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이제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잘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는 그가 안타까웠고, 여전히 나에게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가 안쓰러웠고, 그런 그를 지금도 미련하게 동정하며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우리의 지난 7년이 겨우 6개월 만에 사라지긴 힘든 거였구나, 내가 아무리 바쁜 일상을 살아도 그 없는 삶에 익숙해져 있어도, 이렇게 겨우 10분 남짓의 짧은 통화만으로도 우리가 함께 한 그때가 다시 떠오르는구나 싶었다.


5월의 어느 화요일 밤, 텅 빈 사무실에서 그의 전화를 받고 나는 또 흔들려 버렸다.


얼른 눈물을 훔치고 화장실에 가서 코를 풀었다. 그에게 아마 다시 연락이 오는 건 마지막 입금이 끝난 이후일 거다. 그때까지 내 마음이 더 잔잔해지면 좋겠다. 좀 더 마음이 단단해지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통화가 지금까지의 우리처럼 나쁘지 않은 모습으로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야근할 때 자주 시켜먹는 샐러드 도시락. 그와 달리 나는 세 끼 모두 잘 챙겨먹으며 살고 있다. 힘들어도 밥은 늘 맛있더라.


*총 30화로 계획 중입니다. (1부 15화, 2부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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