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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Dec 12. 2023

이직의 갈림길, 1년 후

갈까 말까 할 때는 가고. 할까 말까 할 때는 한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고. 할까 말까 할 때는 한다.' 


내 개똥철학 중 하나다. 이 개똥철학은 꽤나 유용하다. 두 가지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경우는 일상에서 흔히 발생하곤 하니까. 


'결혼식을 갈까, 말까?' 

'출산선물을 보낼까, 말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까, 말까?' 


...... 매일이 저 이분법적인 고민에 의해 설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단 'Do와 'Go'라는 방향성으로 간편하게 복잡한 인생 편하게 살려 노력한다. 


이런 명쾌한 판단기준이 모처럼 흔들린 때가 있었다. 바로 작년 12월 이즈음이었지.


나는 이전 직장에 2014년 입사해 꼬박 8년을 재직했다. 햇수로는 9년이니, 10년을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장기근속을 하며 다닌 회사는 홍보대행사였다. 아는 사람은 아는 규모와 업력이 있는 회사였고, 조직 문화도 나쁘지 않았다. 어느 조직이 그렇지 않겠냐만은, 사람이 자산인 회사인 만큼 조직 구성원들의 의사를 나름 합리적으로 수렴해 나가는 곳이었다. 


9년 간 회사를 다니며 이직을 고민한 적은 없었다. 입버릇처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러 이리 다니냐', '내가 올해는 이직을 해야지' 했지만, 이력서를 쓴다거나 서치펌과 교류를 한다던가 하는 식의 움직임은 없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나를 믿어주는 상사와 팀원들이 있었고 내 몫을 잘 해내고 있다는 무언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작년 11월, 폭풍 같은 이직의 소용돌이가 불어닥쳤다. 협업하는 고객사는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모른 채 니즈를 충족시키기를 바랐고, 부족한 동료의 역량은 밑 빠진 독 같아서 끊임없는 신규 고객사 세일즈를 이어나가야 했다. 그런 생활을 어언 1년 정도 해나가던 11월. 어느덧 잠자는 시간조차 원망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이직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꽤나 많은 고민을 했다. 새로운 이직의 길을 가는 게 맞을까. 여기서 쌓아온 것들이 아깝지는 않은가. 갈까 말까 할 때는 가고야 마는 나이건만, 지난 9년의 회사생활이 주는 안도감은 꽤나 큰 유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선택했다. 남아 있을 때 가게 될 길은 비포장도로지만 너무나 익숙해 네비가 필요 없었다. 


아직도 삶을 운전하는 게 서툰 나는 그 길이 끌린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만날 내가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기에, 새로운 이직의 길을 택했다. 평평한 대로(大路)지만, 끊임없이 네비를 보며 길을 헤매어야 하는 길. 나는 결국 새로 눈에 들어온 그 길을 선택했다. 결국 갈까 말까 할 때, 또다시 가기로 한 셈이다. 


생각보다 이직은 어렵지 않았다. 한 직장에 근 9년을 다녔다는 것도, 10년의 연차도 이직 시장에서는 흥미를 끌기 괜찮은 모양새였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직 vs 재직의 갈림길 중, 이직을 택했다. 9년 만의 이직은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이 많았다. 


이직이란 것이 그러하다마는 처우가 나아지니, 우선은 만족스러웠다. 어떻게 새벽까지 일을 했지 하며 지난날을 놀라워하는 간사한 마음에 스스로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한 업계를 깊숙이 알아가는 데서 오는 성장감과 학습을 장려하는 회사의 문화가 10년 차의 나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와닿았다. 


그렇게 어느덧 1년이다. 새로운 길을 선택한 지 1년의 시간 동안 나를 움직인 건 원망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다. 나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고, 오늘도  '갈 까 말까 할 때는 간다'는 내 삶의 방향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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