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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Nov 17. 2019

모두가 퇴사하지 못해 안달인 요즘, 출근을 기대합니다.

치부책과 업무 일지 그 중간 어디쯤, 나의 커리어 중간정산

#퇴사그램' '#퇴사가답' '#퇴사답례품'


보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해시태그들. 실제로 이 해시태그들은 많게는 20만 개에서 적게는 1,000개 이상의 포스트가 올라온 키워드다. 그렇다. 바야흐로 퇴사 천국 출근지옥의 시대다.



우리는 왜 퇴사하고 싶을까? 어르신들의 말처럼 배부르고 등따수어서 부리는 어리광 같은 걸까. 그렇게 치부하기에 너무 많은 우리가 퇴근이 아닌 퇴사하는 삶에 열광하고 있다.


솔직해지자면 나도 그렇다. 종종걸음으로 뛸까 말까 고민하며 지각과의 사투로 시작하는 아침. 컴퓨터 앞에 앉아 김밥을 우물거리며 식사와 일의 중간에서 허우적거리는 점심. 야근이냐 칼퇴냐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저녁.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들은 나를 한낯 시간 속의 죄수로 만드는데 최적화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출근을 고대한다. 다음날 결제해야 하는 카드대금 때문도 다시 들어가기 어려운 직장이라 그만두기 아까운 마음 때문도 아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꿈 꿔왔던 순간이 현실화되던 성취의 순간을 기억해서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좇고 한 번뿐인 인생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겠다는 이들이 넘쳐나는 요즘, 내 이런 고리짝 기억은 촌스럽기 그지없다. 인정한다. 난 꼰대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촌스러운 옛날 직장인이다.




#치부책과 업무 일지 그 중간 어디쯤, 나의 커리어 중간정산


이 글은 다시 나아가기 위한 나의 과거 정산서이기도 하다. 묻어두었던 업무를 복기하고 숨겨두었던 관계 속 감정을 홀로 풀어보고자 한다.


회사를 다니며 힘에 부치는 날이면 짧은 일지를 쓰곤 했다. 동기가 없는 경력직이라 누구 하나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없었기에 워드 문서는 내 울분의 분출구였다. 하얀 문서에서 깜빡거리는 커서는 꼭 '그렇게 힘들었구나' 하며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욕심을 부리자면 나처럼 하루는 분노하고 또 하루는 우울하고 또 하루는 외로운 직장인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어정쩡한 처지의 대리, 과장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직장은 성취의 기쁨과 영광의 순간을 선사하지만 녹녹지 않은 '업(業)'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렇다 말해주지 않았기에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계속 헤매어 왔고, 나도 그렇다 하는 이들이 없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는 것 같아 우울했다.


나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7년의 시간 후 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손가락 까딱 하게 만들까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헤드라인을 어떻게 뽑아야 기자가 이 보도자료 메일을 열어볼까?'

'배너 카피에 이 신조어를 넣으면 우리 타깃이 클릭할까?'

'인스타 포스트에 이 해시태그를 넣으면 신규 유입이 생길까?'


이런 식의 고민이 내 업무 일상이다. 하찮다면 하찮고 의미 있다면 의미 있는 이런 고민은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내가 생각했던 PR은 이런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을까?'


일이 힘에 부치고 사람들에 치일 때마다 이 질문은 나를 괴롭혔다. 퇴사냐 다른 업계로 전향이냐 아니면 이직이냐, 이 세 가지가 내게 주어진 객관식 보기의 전부인 것 같아 풀 죽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운이 좋게도 좋은 사수와 팀원들 덕분에 '돈 줘도 아깝지 않은 프로'가 되겠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일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해야 하는 거라고 직설적으로 현실을 꼬집어주는 상사, 디테일이 일의 시작과 끝이라고 외치던 선배.


난 이들 덕분에 지금 시대에는 역행하는 '성장'을 삶의 방향으로 세웠다. 촌스럽다면 촌스럽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방향이니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다만, 나 또한 그런 선배이자 동료가 되고 싶다. 나조차도 아직은 7년 차의 갈길이 먼 애송이 과장 나부랭이다. 그렇기에 나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위로하고 공감하고 피식 웃을 기회를 준다면 먼 길을 함께 갈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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