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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Jan 17. 2022

서영동 이야기, 뜨끔하고 따끔했다.

불편한 우리 이야기

서영동 이야기, 책 제목부터 편하지 않았다. 대충 부동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짐작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서영동 이야기는 서영동 아파트에 사는 다양한 군상들을 통해 우리 시대 30대를 조명하고 있다. 주거 형태가 상대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하는 일로 또는 했던 일로 그 사람의 존엄을 가늠하는 시대. 나 역시 그 시대에 역행하지 않았기에 흡입력 있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쉽사리 넘기기 어려웠다.


그중 가장 몰입되었던 이는 노블엔에 살던 유정. 집 근처 다른 아파트에서 경비일을 시작하게 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보며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 불편할 건 없지만 불편한 마음. 머리로는 떳떳하지만 용기가 필요한 상황들.


 나의 아버지는 당구장을 운영하신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직격탄을 맞은 업종 중 하나지만, 작년 말 새로운 영업장을 인수하실 만큼 수완이 남다른 사장님이다. 30년 넘게 몸담았던 인쇄소를 정리하고 규모를 키워 새롭게 인수한 당구장은 공교롭게도 내 회사 근처다. 회사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인 옆 옆 건물. 서영동에 사는 유정보다도 더 가까운 거리에서 일하는 아빠를 보고 있는 셈이다.


엎어지면 코 닿는 게 실감 나는 거리지만, 오픈한 지 5개월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당구장을 간 건 열 손가락을 꼽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믿었다. 그냥 나도 아버지도 바쁘니까 그런 거려니 했다.


하지만, 서영동 유정을 보고 깨달았다. 불편해서라고. 원래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았던 상황들에 아버지가 들어가 있는 순간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중국음식을 시켜먹고 그릇을 정리하지 않고 가는 이들, 흡연실 문을 반쯤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는 이라던가. 그들의 행동들이 스스럼없을 수 있는 이유는 호의가 권리가 되고 그 권리는 당구장 시설이 감당할 필요 없는 노동력과 자본이 들어가는 것의 종류였다.


그들에게 내가 질타를 가할 권리는 없다. 나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호의를 당연스러운 권리로 누리고 있을 수 있으니까. 일주일의 한 번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으며 쓰레기 정리를 도와주시는 경비원들을 보며 한 번도 그게 그들의 업무 외 노동일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문득 정이현 작가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라는 책이 생각났다. 신체적 위력이 아닌 무관심, 기만, 오만으로 다른 이들에게 력으로 횡행되는 요즘. 전세인지 자가인지, 영유인지 일유인지 등 인지하게 쉽게 구분하고 의미를 못 박아놓는 서영동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 그리고 숨 쉬는 현재의 미니어처다. 그래서 100페이지 분량의 책임에도 불구, 등장인물의 마음 한 줄 한 줄을 붙잡고 놓아주기 쉽지 않았나 보다.


이 책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유정 그리고 유정 아빠의 마음까지 모두 속시원히 이야기해준다. 그 사이다 같은 묘사가 결국 우리 마음속 불편한 곳을 긁어내는데, 아프면서 기분 좋은 쾌감을 선사한다. 건드리면 안 되는 여드름을 톡 터트리고는 이윽고 속 시원한 낌이다.


오늘도 서영동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조금 덜 상냥하지만 조금은 더 서로를 위한 예민러가 되기를 바라며 조남주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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