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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Mar 08. 2022

김부장에게서 친숙한 K가족 냄새를 맡았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리뷰

작년 여름 지인의 서재에서 책 제목을 보고는 물었다. 저 책은 대체 무슨 내용이냐고. 그러자 지인이 남긴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딱 우리 아버님들 이야기지 뭐


그래서 딱히 찾아보지 않다가 후루룩 읽을 책을 찾다가 집어 든 책. 결과적으로는 지인의 말이 맞았다.



김부장은 대기업 임원을 꿈꾸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온 사람'이다. 위 정의와 같이 김부장은 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규정하고 비교 범주 내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종류인 셈이다. 누구나 다 어느 정도는 그렇지 않냐고 자문하다가도 삶의 중심에 내가 없는 삶의 태도는 피하고 싶다고 자답한다.


필자는 대기업을 다니지 않기에 책에 등장하는 위계질서나 사내 정치등의 묘사가 와닿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몰입감 있게 완독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더 묘하게 다가왔다. 공감하지만 공감되지 않고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전개.


어디서 무슨 냄새 안 나요?
주말 드라마 냄새요.


원래부터 드라마 마니아고 안 보는 드라마도 마지막 편은 웬만하면 챙겨보는 나로서는 KBS 가족드라마는 주말을 마무리하는 루틴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주말 드라마를 멀리 하게 된 이유는 숭고한 K가족의 돌림노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모든 문제를 숭고한 가족의 힘으로 K 히어로물 같다고나 할까. 


김부장의 이야기는 김부장이라는 존재가 만들어진 원인 그리고 실패를 극복하고 살아내는 해결점 모두를 가족에게서 찾는다. 형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았던 동생 그리고 어디 가서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지위를 지켜낸  고군분투. 그 모든 것이 결국 가족에서의 결핍 또는 역할을 해내기 위함이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아니라 생각한다. '같은 상황이어도 다른 선택을 한 사람도 많기 때문에 그건 아니다.'라는 냉정한 말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되는대로 열심히 산 결과' 쯤이라 정의 내리고자 한다.


'되는대로' '열심히'. 너무 다른 두 어감의 단어로 규정된 삶은 어떤 걸까


목적을 묻지 않는 삶



따지고 보면 우리는 되는대로 열심히 살기 쉽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느껴지는 우월감 또는 결핍에 반응하는 일상. 사회가 제공하는 자극에 충실하게 반응하며 달려가는 삶. 심지어 그 과정은 안정감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 류의 사람이 많으니까.


김부장은 묻지 않았다. 자신의 노력이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김부장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김부장은 보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김부장은 깨달으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 멈춰 있다는 걸.


그렇게 하루를 쳇바퀴 돌며 앞만 보며 살아간 끝에, 좁아진 길에 길들여진 사고는 자신과 다른 이를 옭아매는 갈고리가 됐다.


내가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진 대목은 김부장의 가족이다.


쇼핑몰을 한다는 아들

부동산을 한다는 아내

카센터에 나오라는 형


지난 시간 끊임없이 김부장의 편협한 사고에 상처받았음에도 갈고리의 힘 아귀가 약해졌을 때 깨부수기는커녕 되려 품어주는 이들. 이들은 정녕 천사인 건가, 가장은 가장이라는 고정관념의 피해자인 건가. 


참 알다가도 모르겠고 알고 싶다가도 모르고 싶은 가족의 생리.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가슴이 무거웠다.



언제나 그렇듯 두려워졌고
이내 반성했다.


35의 나, 20년 뒤 김부장과 다를 수 있을까. 이 책을 보고 부동산 공부를 해야겠다던가, 경제 공부를 해야겠다던가 하는 식의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저 내가 멋대로 그린 그림 안에 나와 가족을 홀로 가두는 건 아닐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가 생각한 20년 뒤는 있나? 그 20년 후 모습은 나 그리고 내게 소중한 사람이 모두 원하는 그림인가. 어느 하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렇게 흘러간다면 대가 없는 가족의 온정에 기대 K드라마를 찍게 되는 말에 다다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건 관성의 영역이라 힘이 들지 않지만 그 하루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뜯어보는 건 귀찮기도 두렵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낸 하루를 접어놓을 시간에 김부장을 덮고 버킷리스트 파일을 열었다. 이 리스트들은 내가 정말 원하는 건지 원해야 하는 건지를 되물으며 다시금 빠진 혼란에서 안도했다. 이 혼란으로 김부장의 끝모습과는 한 걸음 멀어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위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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