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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Aug 07. 2022

승진을 했는데 한숨이 났다.

부장이 되기 싫은 이유 3가지

3월의 어느 금요일 아침 10시, 이태원의 한 카페였다.


미디어 행사 팔럽을 위해 행사장으로 직출 후, 대기 중인 시간. 얼마 남지 않은 행사 시간까지 다른 고객사 업무를 처리하려고 불꽃 타이핑을 하던 중, 카톡 PC가 쉴 새 없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80프로의 확률로 문제가 발생한 것. 작업 중이던 문서를 내려놓고 카카오톡을 켰다.


'르넷, 축하해요!'

'대단하네요, 3개월 만에 또...!'


이런 식의 메시지들이 각기 다른 채팅창에 1이 없어지지 않은 채 올라오는 형국이었다. 찰나의 순간 불안감에 절로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며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2022년 정기 인사발령'
... ... ...
르넷, 00 본부 부장에 명함


베이글을 우적우적 씹던 입술 사이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내가 느낀 첫 감정은 안타깝게도 기쁨보다는 일종의 분노였다. 내가 느낌 감정은 딱 한 줄 정도였기 때문이다.


나를 얼마나 더 부려먹으려고?


지난 1월 팀장 발령을 받았다. 사실 팀장 발령은 내게 큰 부담을 주지 않았다. 이미 팀 내에서 연차가 가장 높아 프로젝트를 끌어가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식 팀장이 되고 본래 나의 플러스알파 역량 정도였던 프로젝트 매니징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Role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시간이 너무 없다는 거다.


어느 아티클에선가 '시간이 없는 PM은 무능한 PM'이라는 이야기를 았는데, 얄짤없이 나다. 단기 프로젝트 포함 11개의 프로젝트를 핸들링하다 보니 이건 뭐 일과시간은 회의하다 끝나는 식이다.


외근 후 자리로 복귀라도 할라치면 걸어가는 순간부터 나를 기다린 팀원들이 둥지에서 어미새를 반기는 아기새처럼 목을 쭉 뺀다. 그렇게 엉덩이가 의자에 닿자마자 컨펌 또는 디렉션이 필요한 팀원들이 순차적으로 의을 묻는 식이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런데, 나보고 부장도 하라고?

 

한숨이 났다. 나는 아니 이 팀은 괜찮을까?



#부장이 하기 싫은 이유 1. 관리

흔히들 인력관리, 리소스 관리라고 한다. 대행사를 비롯 모든 조직에서 실체를 규정하기 어렵지만 끝도 없이 노력하는 업무. 인. . 관. 리


관리가 싫다. 사회생활이 결국 관리로 귀결되는 것이 직장사 순리라만은 보통 고충을 처리하거나, 해결되기 어려운 회사와 개인의 문제를 협의하거나 하는 따위의 것이 달갑지 않다.


특히, 어떤 리소스를 어떤 프로젝트에 투입할지 뺄지를 결정하는 것이 너무 불편하다. 팀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역량 그리고 경험에 기반해 투입하는 데, 이러한 의사결정이 팀원의 커리어 니즈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일부를 희생시키고 싶지도 않은 욕심 사이에 마음을 쓰는 과정이 불편하다.


#부장이 하기 싫은 이유 2. 불균형

직급이 올라갈수록 힘이 드는 건 일을 분배하고 시켜야 한다는 거다. 중간관리자라면 공감하겠지만 그건 직접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일을 구조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관리자가 관리만 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런 조직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관리자도 일정 부분 실무 인볼브가 된다. 저임금과 개선되지 않는 업무 환경으로 인한 고질적 실무인력 충원의 난도 있겠다만, 업의 특성상 실무와 거리두기가 어려운 이유도 있겠다.


즉, 동일한 업무시간 내에 관리와 실무를 같이 해내야 한다는 구조 없는 구조. 그리고 붕괴되는 개인의 삶의 불균형과 정리되기 어려운 업무분장. 일련의 혼란들을 겪을 당위를 찾기 어렵다.


#부장이 하기 싫은 이유 3. 두려움

무엇보다 '부장'이라는 직급에 선입견이 있었다. 이유를 1도 설명할 수 없지만 부정적인 어감이 느껴진달까.  


팀원들의 역량에 얹혀 가는 무능한 존재이거나, 스스로 잘난 맛에 취해 팀원들을 부속품 취급하는 존재. 내가 겪은 부장들은 RFP도 보지 않고 세일즈 미팅에 참석하거나 혹은 팀원들의 역량에 항상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었기 때문인 듯싶다.


매 순간순간 두렵지 않을까? 무능과 오만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더 가까운가 두려움에 떨 뿐인 시간이 시작됐다는 사실에 한숨이 난다.


이직을 앞둔 후배가 말했다. 내가 제일 걱정이라고. 나를 위해서 꼭 자신과 같은 직급이 뽑혔으면 좋겠다고. 걱정해주는 후배가 고마우면서도 지금 내 현실이 여실히 느껴졌다. 팀원들의 연민을 받는 지금의 내가 부장이 돼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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