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냄비 안에 있다. 가스불을 켠다. 어떻게 될까? 냄비 뚜껑이 열리도록 펄쩍펄쩍 뛰거나 나오기 위해 필살의 노력을 할 것 같다.
하지만, 개구리는 냄비 안이 따뜻해진다고 생각한다. 이상하다? 하고 여길 뿐 냄비바닥에 찰싹 붙어서 익어가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어리석지 않은가. 뜨거운 열기가 몸에 직접 가해지는데, 외부 환경이 그렇게 바뀔 일이 없다며 안일하게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죽음이라고 믿었건만,
그 이상한 개구리가 바로 나였더라.
세 달간 퇴사자 총 5명, 충원 0명.
때는 가을. 밀려드는 짬 천국에 팀원들이 고통받던 나날이었다. 어찌어찌 갖게 된 저녁 식사 겸 회식 자리에서 팀원들의 원성이 터져 나왔다.
'인력 충원은 왜 안 되는 건지'
'인력 충원이 안되는데 왜 세일즈를 하는 건지'
'이 사태는 언제까지 지속되는 건지'
상냥한 불만에서 시작한 아우성들이 불안 섞인 두려움으로 뻗어나갈 즈음, 팀원 한 명이 넌지시 나를 걱정해 주었다. 요 며칠 새벽에 메일을 보내놓은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나름대로의 고달픔을 오픈 가능한 수준으로 공유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 고달픔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동한 걸까. 마음속에 있는 말을 쏟아내던 중, 결정적 한 마디를 뱉어버렸다.
"잠이좀 줄었으면 좋겠어요.. 일은 이만큼쌓여있는데, 자꾸 잠이 쏟아져서 걱정이에요"
그때 까지는 몰랐다. 그저 그런 푸념의 한 문장일 줄 알았는데, 이 푸념에 대한 후배의 한 마디가 나를 깨워줄 줄은.
부장님, 보통 일을 줄이고 싶어 해요. 잠이 아니라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한 당혹스러움과 함께 통쾌함이 밀려왔다. 맞는 말이다. '잠'은 인간의 수면욕구 아닌가. 난 그런 잠을 줄이면서까지 이 일이 하고 싶은 건가.
얼마 남지 않은 소고기를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8년간 달려온 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자문자답이 오갔다.
이건 지속가능한 성장인가.
1초도 되지 않아 자답했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회사차원에서 통제할 수 없는 인력손실과 충원 그리고 개인차원에서 감내해야 하는 기본욕구와의 싸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기본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니는 게 회사 아니던가. 그래, 이건 잘못됐다.
8년을 어떻게 다니셨어요?
자문자답을 이어가던 중, 팀 막내가 단골질문이자 신선한 질문을 던졌다. 나도 AE였을 때 7년 차 차장이 경이로우면서도 도대체 어떤 동력으로 한 회사에서 그렇게 오래 다니는지 궁금했으니까.
평소 같았으면 단골답변을 AI처럼 했을 거다.
'프로젝트가 많아서 시간이 빨리 갔다'
'눈떠보니 5년 차 일거다.'그날은 왜인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서 걸려 나오지 않는달까. 후배의 질문에 스스로 질문이 던져졌기 때문이다.
왜 8년을 다녔지?
회사를 다니면서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녀보고 마음에 드는 점을 근속 이유로 삼는 식이니까. 나도 그렇다. 대행사를 8년 다니며 삼은 근속의 원동력은 '경험'이었다.
쉴 새 없이 고객사와 프로젝트가 밀려들어오니 떨어지는 일만 제대로 따라가도 끝이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험'은 곧 '일'이다. 일의 무게를 견뎌야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일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사람에 대한 맷집도 단련돼서 일의 무게를 견디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심상치 않았다. 일이 딱히 어려운 것도 사람이 그다지 두려운 것도 아닌데, 회사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어느새 가슴이 턱턱 막혔다.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아,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 삶이 너무 힘든 것도 절망스럽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러지 하다가 생각에 꼬리를 물기 전 일이 휘몰아쳐 금방 지나갔지만 그 빈도가 강도가 강해졌달까.
이러다 말 거라고, 내가 팀장으로서 잘 못해서 그런 거라고 한숨으로 지탱하던 나날이었기에 나의 8년을 묻는 후배의 질문에 그때와 다른 지금이 눈에 들어왔다.
경험이라 치부하기에는 경계도 의미도 없이 쏟아지는 일들. 주니어들로 구성할 수밖에 없는 인력부족의 악순환이 내가 들어있는 냄비를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인력부족과 많은 일은 항상 그래왔기에 그리고 그게 인력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미덕처럼 여겨진 대행사 구조였기에, 차마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타들어가면서도 원래 이런 거라며 견뎌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납작 엎드리는 꼴이라니, 달궈진 냄비 안 개구리와 다를 게 무언가.
그때 결심했다. 냄비에서 나가자. 내가 견딜 수 있는 온도라고, 이 정도는 그 연차에 다 이겨내는 시련이라는 가스라이팅에 더 이상 엎드리지 않으리라. 그렇게 입사 8년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