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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카 Jun 22. 2024

거울아 거울아

주문을 외워보자


 요즘 거울 보는 횟수가 부쩍 잦아졌다. 혼자 있을 때면 자꾸만 거울을 본다. 갑자기 공주병에 걸렸거나 무슨 시술을 한 것은 아니고 얼굴에 난 상처가 신경 쓰여서이다.


지난달, 오랜만에 서핑하러 갔을 때였다. 이제 추위도 물러가고 올해야말로 서핑 실력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다짐하던 차, 혼자 타보겠다고 허우적거리다가 파도에 ‘통돌이’를 당했다. 말 그대로 세탁기 통에 들어가듯 데굴데굴 구른 것이다. 파도가 그렇게 큰 날도 아니었는데 멀리 날아갔던 내 보드는 관성의 법칙과 탄성 작용, 그리고 온 우주의 불운과 함께 날아갔던 속도에 살을 붙여 더 세게 내 이마로 날아왔다. 얼굴을 팔로 가린다고 가렸지만, 가린 팔 사이로 그렇게 불행은 내 미간으로 날아왔다. 너무 세게 맞아서 순간 뇌진탕이 온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별이 보이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다시 씩씩하게 바다를 향해 팔을 저어가려는 순간, 멀리서 다른 서퍼분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피나요!!”

 물에 반쯤 잠겨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멀리서 보일 정도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벗기도 힘들고 오래 걸리는 서핑 슈트를 낑낑거리며 벗어 집어던지고 모든 짐을 서핑 샵에 내동댕이친 상태로, 양양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뛰어갔다. 정형외과라는 게 조금 걸렸지만,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지혈도 안 되는데 대기 시간은 또 왜 이리 긴지…

바로 서울에 있는 성형외과를 갔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 어쨌든 솜씨 좋다는 원장님을 믿고 7 바늘을 꿰맨 뒤 그 이후로는 얼굴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성형외과에 다니고 있다.


흉터 치료는 레이저로 진행하는데 실비보험도 안되고 한번 갈 때마다 144,000원을 낸다. 속이 쓰리다. 더 속이 쓰린 것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흉터 자국은 빨갛게 내 속처럼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자국이 희미해지려면 보통 6개월에서 몇 년까지도 걸린다고 하니 신경을 끄고 있어야겠다만, 너무나 포청천 같은 위치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제발 흉터가 안남길 기도하고 있다.

흉터 관리는 생각보다 더 까다롭다. 좋아하는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없고, 매일 의식처럼 하던 반신욕도 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특수한 소재의 밴드를 늘 붙여줘야 하고 자외선 차단을 위해 모자를 머리에 이식한 듯 쓰고 다니게 되었다. 관리가 번거롭긴 하지만, 흉터가 안 남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보면서 새삼 마음의 상처는 어떤지 생각해 보았다. 보이는 상처를 지우기 위해서는 별의별 노력을 다하는데 보이지 않는 상처를 위해서는 어떤 치료를 했나. 치료는커녕 안 예쁜 흉터를 마주하기 싫어서 애써 덮어 두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얼마 전부터 심리상담을 다시 받게 되었다. 아동심리 전문인 곳으로 일부러 골라서 찾아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원망의 대상으로만 남은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흔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기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나이 먹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이다. 내 상처는 나 스스로 치료하고 어루만져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겨우 잠재워뒀던 진흙탕물을 다시 휘젓듯, 과거의 기억을 일깨우는 것은 생각보다도 동요가 있었다. 울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곤 했다. 상담 선생님은 마음을 무겁게 하는 무언가를 도마 위에 올려놓아 꺼내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좋아질 거라고 힘을 주셨다. 그렇게 조금씩, 세심하게 과거의 나와 조우하고 어린 시절의 나를 다독이고 있다. 보이는 얼굴을 신경 쓰듯 보이지 않는 마음도 신경 써서 돌봐주고 있다.


 오늘도 나는 혼자서 거울을 본다. 백설 공주에 나오는 왕비가 주문을 걸듯, 거울아 거울아 주문을 건다. 얼굴에 생긴 흉터에도 마음에 남은 흉터에도 새살이 솔솔 돋아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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