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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수 Mar 24. 2021

가끔 생각나는 이름

장례식장 이야기

친척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엔 내가 아는 모든 친가 친척들이 모여있었다. 잘 모르는 그곳은 부산스러웠고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는 판이라 학생인 내가 끼어들 곳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낯을 가리는 나는 마치 할아버지 직장동료의 손자처럼 서있다가 절을 하고 나서는 그저 구석에 있었다. 상주가 누구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슬퍼 보였다는 인상은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는 할아버지의 이름은 낯설었지만 얼굴은 그래도 익숙했다. 암이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우리 외가인 장수동을 가는 길은 안 막히면 30분이면 되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가다가 장수동 쪽에서 빠져나와서 송내역 쪽으로 10분 정도 가면 작은 종합병원이 있다. 그곳이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이다. 병원은 내가 육군 훈련을 17사단에서 받을 때 구보할 때마다 바라봤던 곳이기도 하고, 우리 외할머니 빈소가 차려졌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학교 동기 친구의 장례식도 이 곳에서 이루어졌다. 근로복지공단병원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장소였다. 낡았지만 몇 년 전에 도배를 새로 한 한신아파트 같은 곳, 동네병원처럼 마늘주사와 백옥주사를 놔준다는 칠판을 나둘 것 같은 곳이었다. 여느 종합 병원이 그렇듯 장례식장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동기 친구는 외모가 아름답지는 않았다. 그는 외모보다는 스스로를 바꿔 나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1학년보다 2학년 때 더 공부를 잘했었고, 그 학기가 지나자 곧 이제 더 잘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스스로를 합리화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 몇 년에 한 번씩 볼 때마다 놀라울 만큼 발전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가 그랬을 것 같다. 많은 것을 이루지 않더라도 같은 시절을 보냈던 그가 사라지지 않고 머물러주기만 해도 좋았겠다.


임종 소식을 들은 것이 3학년이 되기 전이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기숙사에서 같이 탕수육 대자를 나눠먹던 사람이 죽긴 갑자기 왜 죽어. 그의 이른 죽음에 놀란 동기들은 구별 없이 그의 빈소를 찾았다. 나를 비롯한 몇몇은 도착할 때까지도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숨죽여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던 기억이 난다.


화재라고 했다. 술 취한 그의 아버지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집에 술을 뿌리고 불을 붙여서 부모님은 두 분 다 죽고 전신에 화상을 당한 여동생만이 살아남았다고 했다. 빈소엔 친가 사람은 없었다. 그는 화장되어 인천의 공동묘지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장례식 후에도 수년 동안 공동묘지를 찾았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같이 갔다. 외할머니의 납골함도 머무르게 된 이후로는 다니기에 좀 힘겨워졌다.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를 떠올릴 때면 사후세계가 있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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