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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 비엣남 Jul 27. 2020

#04. 하노이 - by Um

나는 왜 하노이를 사랑하는가?

하노이에 산지 벌써 햇수로 6년이나 되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았고, 앞으로도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 도시를 떠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제 하노이는 내 삶의 완전한 두번째 고향으로 자리 잡았다. 특별히 하노이에 살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다. 베트남을 선택했고, 자연스럽게 나라의 수도(Capital)로 가는 비행기를 탔을 뿐이다. 그 때의 선택이 지금 와서는 바꿀 수 없는 삶의 배경이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전라북도의 전주全州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학창시절 대부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전주는 전라북도에서 가장 큰 도시지만 광역시도 아니고, 이렇다 할 산업군이 발달하지 못해 공단이나 대기업, 일자리를 찾기 힘든 곳이다. 한편으로는 무료한 도시지만 한자어 풀이인 ‘全’ (온전할 전), ‘州’ (고을 주) 답게, 전주는 자연재해나 사건사고가 좀처럼 잘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도시이다. 시골은 아니지만 너무 큰 도시도 아닌 평범한 전주, 그리고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사연이 좋았다. 


하노이는 베트남 북부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이지만 남부의 최대 도시인 호치민처럼 상업적으로는 번화하지 못했다. 미국의 워싱턴 D.C와 뉴욕,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처럼 베트남 역시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구분되어 있다. 도시 면적은 3,329 km²로 605km²에 불과한 서울의 6배를 넘고, 고작 206km²인 전주의 16배에 이르지만 실제로 도시화된 면적은 아마도 100 km² 미만으로 전주보다 좁고, 도시의 인프라 개발 수준은 아직 한국의 1990년대에 머물 것으로 생각한다.


하노이와 전주는 인구나 도시의 규모, 제반 산업이나 생활 측면에서 유사점을 찾거나 비교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전주 다음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도시 하노이에서 전주를 느꼈다.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하노이 사람들, 그 속에서 수년간 살면서 6년 전 떠나온 그리운 고향, 전주를 다시 만났다.


하노이는 연중 뿌연 미세먼지로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고, 90%에 이르는 높은 습도로 인해 겪는 불편함이 많지만, 여타 동남아 지역과는 다르게 추운 겨울이 있어서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두꺼운 외투 한번 꺼내어 입어보지 못하고 한 해가 간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하노이 사람들은 말 할 때 소리에 기교를 넣지 않는다. 언제나 명확하다. 어렵사리 배운 외국어인데 호치민이나 다낭 같은 곳에 가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다. 말이 통한다 라는 것은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밤은 휴식이고 낮은 일상이다. 밤 11시가 넘어서면 불 켜진 상가를 찾기 쉽지 않은 하노이는 휴식을 빼앗지 않고 일상에 집중하게 하는 도시다.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고요하지도 않은 이 곳이 좋다.


비슷한 시기에 하노이에서 출발해서, 이제는 베트남 최대의 상업도시인 호치민으로 간 벗이 참 많다. 아내도 가끔은 호치민 생활을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번잡하고 시끄러운 서울의 삶이 그립지 않은 나는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호치민 라이프를 꿈꾸지 않는다. 나는 왠지 모르게 ‘전주’스러운 하노이가 좋다.


하노이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이름 때문이다. 하노이는 귀여운 소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노이’ 이름 세 글자에는 소리를 답답하게 만드는 파열음이나 마찰음이 없다. 부드럽게 부를 수 있는 예쁜 이름이다. 태국의 ‘방콕’이나 캄보디아의 ‘프놈펜’ 같은 딱딱한 이름은 결코 소녀의 이름이 될 수 없을 테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는 우락부락한 근육질 아저씨를 떠오르게 한다.


‘하노이(Hà Nội)’를 한자로 바꿔 읽어보면 ‘하내河內’가 된다. 강의 안쪽이라는 뜻이다. 홍강(Red River)과 타이빈강(Thai Binh River)이 만나는 평원지대인 홍강 삼각주에 위치해 있고, 시내 곳곳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호수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노이가 강의 바깥쪽에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해질녘 풍경이 아름다운 서호(West Lake)를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도시 이름이 ‘하외河外’가 되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하외’는 다시 베트남어로 ‘하-응오-와이(Hà Ngoài)’가 된다.


2018년 4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치렀다. 남한과 북한, 미국 만 아니라 전세계가 평화를 기도하며 하노이에 주목했다. 하노이도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며 도시정비에 심혈을 기울였고, ‘Thành phố vì hòa bình (The City For Peace / 평화의 도시)’라는 구호의 가로등 현수막과 조형물을 도시 전역에 설치했다. 모두의 염원과는 다르게 그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차량이 오가던 하노이의 거리를 걸으며 다시 한 번 그리운 고향 전주를 생각했다.


‘평화의 도시 하노이(Thành phố vì hòa bình)’는 왠지 모르게 ‘온전한 도시 전주’와 많이 닮았다. 두 도시 모두 온도나 날씨로 비유한다면 따뜻함 또는 온화함이고, 색깔로 비유한다면 연두색이거나 연한 노란색이다. 냉철하기보다 다정다감하며, 세련미는 없지만 구식은 아니다. 부족하지는 않지만 극한까지 치닫지는 아니한다. 만약, 정 반대의 예를 들어보자면 서울이나 호치민 정도 되지 않을까?


나는 ‘전주’스러운 ‘하노이’가 참 좋다. 하노이에 오래도록 정을 붙이고 살다 보니, 살기 좋은 이유를 그리운 고향 ‘전주’에서 억지로 찾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잘 사는데 이유나 논리 따위가 얼마나 중요할까?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그리운 고향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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