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과 플랫슈즈

사는 맛 레시피(걷는 맛)

by 달삣

사월 이 참 좋아

걷기도 좋다.


봄볕은 머리 위에 따뜻하고

목덜미 바람 검지 손가락이

매만고 그위로 종달새들이 지저귄다.


사월에 아이가 태어나거나

아들의 결혼식이 있거나

나의 장례식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날에 생각나는 시가 있다.



무릎 끓다


뭔가 잃은 듯 허전한 계절입니다.

나무와 흙과 바람이 잘 말라 까슬합니다.


죽기 좋은 날이구나

옛 어른들처럼 찬탄하고 싶습니다.


방천에 넌 광목처럼

못다 한 욕망들도 잘 바라겠습니다.

고요한 곳으로 가

무릎 꿇고 싶습니다.


흘러온 철부지의 삶을 뉘우치고

마른 나뭇잎 곁에서

죄 되지 않는 무엇으로 있고 싶습니다.


저무는 일의 저 무욕

고개 숙이는 능선과 풀잎들 곁에서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김 사인-



사월이 되니 꽃이 피고 또 진다. 목련이 지 벚꽃은 피면서 지고 라일락향이 짙어진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날리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설도의 동심초 노래가 떠나가는 화양연화를 그리워한다.


사월이면 아파트 초입 축대 위로 개나리가 지천데 슬슬 노란 꽃잎을 떨구고 연둣빛 잎이 나온다.


회색빛 숲 사이로 연분홍 진달래가 피는 봄을 그리 기다려왔건만 오래 머물지 않고 진달래를 시작으로 개나리 목련 지는 것은 비 한번 오고 바람이 불면 아쉽게 사라진다.


사월은 잔인한 달라지 어린 시절에는 사월이 참 좋았다. 어릴 때 사월에 소풍을 많이 갔었기 때문이다.


사이다와 과자와 찐계란을 소풍가방에 넣고 비가 오지 않길 빌었는데 비가 오면 교실에서 김밥을 까먹었다. 그러면 애꿎은 소사 아저씨가 욕을 먹었다.


"용이되서 올라가는 걸 때려잡아 이무기가 돼서 억울해서 우는 게 비가 와서 그렇다는 전설은 빤히 아는 이야기다.


아직 겨울이 묻어있는 알싸한 날씨인데 은색 철 궤짝에서 치마를 꺼내서 타이즈를 입고 엄마가 사준 빨간 리본 달린 에나멜 구두를 신고 소풍을 가면 하늘을 나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종아리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도 알싸한 게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을 다시 느끼기 위해 올 사월은 치마 입고 플렛슈즈 신고 꽃길을 걸어 볼까 나하고 플렛 슈즈와 치마를 인터넷으로 샀다. 신발은 신어 보고 사야 하는데 역시 인터넷으로 사는 것은 잘 맞질 않는다.


그걸 신고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걸었는데 발이 너무 아팠다. 역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고 회상 속에만 가능한 것인가 싶다.


꽃길만 걷자는데 내가 꽃길로 접어들어야 걷는 게 아닐까 각해본다.


하지만 올해 벚꽃길 걷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시 멈추어야 한다. 위험한 바이러스가 쌩쌩 달리는 찻길 위 트럭처럼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질 때는 안전한 초록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벚꽃길은 폐쇄된 곳도 많고 떠나가는 이의 추모 꽃같이 눈물 꽃비만 내린다.


플렛슈즈 신고 걷고 싶지만 플렛슈즈 신을 만큼 발이 얄상하지도 않고 오래 써서 데데 해진 발과 상처투성이에 툭 삐져나온 엄지발가락 밑 뼈에게 미안했다.


그저 넘어지지 않고 미끄러지지 않는 기능성 운동화가 최고인 나이가 된 것이다.


계속 꽃길만 걷고 싶지만 꽃은 진다.


요즘은 그나마 신발과 함께 집콕해야 서 좀 참았다 걸어야 하지만 안전한 초록불이 들어오면 다시 걷자


초록잎이 나 초록길을 걷고


열매 맺면 열매 따먹고


단풍 들 즐겁게 감상하면 되고


잎사귀를 떨구는 겨울이 면 고즈넉하게 창밖을 내다보면 되지 않을까


그저 근하게 갈 수밖에

오월을 받쳐주는 모란을 즐겁게 감상할 일이 남아 는데 그때는 맘 놓고 걷길 기대해본다.





주인님 저도 당분간 집콕 할께요

신발도 집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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