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채가게 식구들

사는 맛 레시피

by 달삣

작년 김장할 때 갓이 모자른것 같아서 이른 오전에 갓을 사러 동네 야채가게를 갔었다.


새 물건이 열 시 반쯤 오는데 어제 팔던 갓이 남아 있었다.

오전인데 장사하는 집에서 그냥 갈 수가 없어서 사려고

"갓 얼마예요?"

주인에게 물어보는데 처음본 어눌한 얼굴의 남자가 보였다.


얼굴이 큰아들 닮은 게 아마 그 집 둘째 아들 같았다.


아침에 큰형이 도매시장에 야채 떼러 가고 잠깐 가게에 나와 있는 것 같았다.

"그것 얼마 더라?" 하며 수첩을 뒤적거리다 모르겠는지 형에게 전화를 하려는 순간 야채가게 총대장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막 야채가게에 들어섰다.


" 둘째야 119 좀 불러라"

"왜요? 아버지 어디가 아파요"

" 으 응 몸이 안 좋아"

"예"

내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쳐다보니 아들이 아버지에게 갓 가격을 묻는다.

" 아버지 갓 가격이 얼마예요"


"으 사천 원"






난 미안해서 그냥 가려했는데 굳이 팔려고 물어보는 아들이나 대답하는 아버지가 왠지 난중일기의 이순신 부자 같이 느껴졌다.


자전거를 끌고 와서 119를 부르라고 하는 걸 보니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을 거야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는 정신이랄까. 참 웃픈 장면이었다. 얼른 빠져 주는 게 도와주는 것 같아서 갓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오후에 다시 들려서 할머니에게 할아버지 안부를 물어보니 심장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 아까 너무 놀랬어요 못 보던 아드님이 있던데요?"


" 아까 걔는 우리 둘째인데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반죽다 살아났다가 요즘 퇴원해서 거동해 걔 때문에 내 맘이 얼마나 x 같은 줄 알았는가 맘고생 많이 했네


그래도 요즘은 사람 구실 하려고 가게도 가끔 나오니 을메나 좋은 줄 몰라"


그 집은 야채장사를 오래 했는데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아펐다.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한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다시 가게 나오셨는데 요번에는 할아버지가 아프시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야채도 싱싱하고 손님들에게 늘 따뜻하게 대하고 동네 사랑방 구실도 해서 동네 할머니들이 꼭 몇 명씩 앉아서 장사를 거들어 주고는 한다.


주일만 문을 닫는데 며칠간 야채가게가 문이 닫혀있다. 남일 같지 않게 염려가 되었다.

'혹시 할아버지에게 뭔 일이라도...'


하지만 한 달 후에 할아버지가 퇴원하셔서 통원 치료하시며 양배추를 진열하고 있고 맏이가 물건 떼온 걸 둘째가 받아서 내린다.


늘 조마조마한 우리네 인생처럼 물건을 받아내리는 둘째의 손떨림이 보이니 맏이가

" 무거운 건 내가 옮길 테니 너는 받아 내리기만 해" 하며 동생을 챙긴다.


열심히 살아가는 야채가게 이웃을 보고서 인생이란 게 식구들이 돌아가며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고 돌보며 또 야채를 다듬고 고르고 어지럽혔다 치웠다를 반복하는 삶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대학교 다니는 손녀부터 중학교 다니는 손자까지 야채가게 나와서 돕는 걸 보며 드는 생각이 이순신 장군 못지않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유머 있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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