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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채 Mar 02. 2020

거리 사진을 연출한 사진가들

사진가, 사진을 말하다

귀국하는 비행기안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나온 데이빗 알란 하비의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한번 보게 되었다. 하비가 몇년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촬영 하는 것을 담은 다큐였는데, 나에게는 여러면에서 흥미로왔다. 가장 식겁했던 부분은 하비가 이파네마 해변에서 촬영하면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그야말로 코앞에 가져다 대는 것이었는데, 대부분 이 사람들은 그런 하비를 신경쓰지 않고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하비의 능력이 뛰어나서? 아니다. 이미 다 촬영을 한다고 그 사람들을 섭외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을 대동해서 같이 다니고, 통역도 있고, 나 이런 사진간데 이런걸 찍을거니까 너희들은 이런 행동들을 하고 있어라. 하고 다 지시를 내린 후에 촬영을 한다는 것이다. 세상 어느 나라를 가도 갑자기 사진가가 나타나 자기 코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움찔 하지도 않고 하던 일 그대로 하는 사람들은 없다. 하비의 많은 사진들은 이런 식으로 작업된 것이다. 거리 사진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사실 자연스러운 순간을 찾아낸게 아닌 것이다. (물론 그런 사진이 전혀 없을거라고는 못하겠지만.) 거리에 카메라를 들고 나간 많은 아마추어 사진들이 왜 난 저렇게 못찍을까 자책할수도 있는데 사실 이런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얼마전 스캔들을 탔던 스티브 맥커리가 그러했듯이.  

그런데 여러분은 알고는 계시는가. 로버트 프랭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메리칸스라는 걸출한 시리즈로 미국 사회의 모습을 담아냈던 로버트 프랭크. 그 또한 많은 사진을 연출했고 만들어 냈다. 대표적인 예 하나가 바로 이 엘레베이터의 여성 사진이다. 사진집에 수록된 작품을 보면 마치 엘리베이터 안내원인 여성이 몽상하는 표정을 손님 사이로 절묘하게 한장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컨택 시트가 보여주듯이, 여성에게 다 설명하고 섭외한 후 다양한 포즈를 취하게 하며 찍었던 사진중 골라낸 한장인 것이다. 그 또한 절묘하게 담아낸 사진이 없다고는 못하겠으나, 많은 사진들을 이런 식으로 연출하고 만들어낸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들이 유명해졌기에 지금은 다 용서되는 부분이겠지만. 살짝 배신감이 들 수 있는 진실이기도 하다. 거리 사진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이런 작가들은 꾸밈 없는 순간을 절묘한 시선으로 담아냈다고 믿고 있을테니까.


10년 넘게 거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지만 나에게도 무척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이들 작가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그런 식으로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혼자 찍으며 절대 연출하지 않는다. 물론 나 또한 그러면 참 좋겠다 싶은 순간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 한장의 사진을 얻지 못할지라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것이 사진가로서 내 자신과의 약속이다. 가짜 순간이라면 사진이 아무리 멋지게 담겼다해도 쓸모없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요즘처럼 사진이 홍수인 시대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그냥 '그림 좋은' 순간을 찍기 위해서라면 상업 사진가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빛과 모델과 장소를 모두 선택해서 찍을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내가 거리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 거리에서 카메라를 들기로 한 것. 그 모든 이유는 내가 생각치도 못했던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왔다. 오늘은 이걸 찍어야지 하고 거리로 나서는게 아니다. 거리가 나의 선생이요 교과서다. 나의 코란이자 성경이다. 삶의 움직임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 지구적인 안무. 그 흐드러짐 속에서 배우고 또 발견하는 것이다. 실패가 90%요 하루에 한장 좋은 사진을 얻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것이 내가 이 사진을 하는 이유다. 누구나 쉬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그넘등 요즘 잘나간다는 외국 '다큐' 작가들이 많이들 이런 식으로 사진을 찍는다. 몇년전 한 아시아 작가는 그룹으로 몰려다니며 자신들의 인원 규모를 이용해 상대를 압박해 촬영한다고 자랑처럼 얘기하기도 했다. 거리 사진가지만 모든 거리 사진가들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별것도 없는게 자만한다고 욕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나는 사실 존경하는 '거리 사진가'가 몇 없다. 특히 현대에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중엔 그렇다. 물론 얼마전 화제가 됐던, 뉴욕 거리에서 아무에게나 얼굴에 들이대고 플래시 터트리면서 찍어대서 맞기도 했다는 그 작가처럼 막무가내로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거리 사진을 제대로 하려면 진정 사람을 사랑해야만 한다. 내가 걸작을 찍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사진을 1순위로 놓치 않을때 좋은 사진이 눈 앞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캔버스 앞에 모든 물감을 준비해 내려놓는 화가처럼 촬영할 준비를 하라. 그리고 무엇을 그릴지 캔버스를 노려다보듯이. 나는 거리를 걷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2019년 1월4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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