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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혼8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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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채 Mar 21. 2022

드립은 치는게 아니라 내리는 것

그녀를 위한 커피를 준비하는 마음

커피를 좋아한다. 좋은 커피를 내린다는 카페가 있으면 시간을 내어 찾아가보는 편이다. 그녀 또한 나의 취향을 따라 전국곳곳의 카페를 함께 따라가주었는데 사실 나보다 감각이 예민한 것은 그녀다. 커피를 음미할 때 느껴지는 첫 맛에서 끝 맛.. 과일향이 난다든지 바디감이 어떻다든지.. 나에게는 아직 감이 잘 안오는 이야기들인데 그녀는 늘 자세하게 맛을 설명하고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커피를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면 왜 굳이 좋은 커피를 마시는데 돈을 쓰냐고 할 수도 있는데, 왜 좋은지는 잘 몰라도 좋다는 것은 안다. 그게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을 쫓다보니 뭐가 좋은지 정도는 감각으로 느끼게 된 정도라고나 할까.


원주에 오게 되니 유일하게 아쉬운 것이 커피다. 서울이나 대도시에는 장인정신으로 커피를 내리는 곳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요즘은 정말 이런 곳에 카페가? 할 정도로 특이한 위치에도 카페가 생기는 형국이지만 아직 원주의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직접 원두를 들여오고 세심하게 로스팅하는 그런 곳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신혼집에서는 내가 커피를 내려야겠다, 도전해봐야겠다, 그런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옛날에 문래동에서 빛타래라는 공간을 운영했는데 그때 방문객들을 위해 커피를 내렸다. 하지만 드립커피는 아니고 커피 기계를 이용한 것이었다. 기계를 살만한 공간은 되지 못하니 드리퍼를 사서 커피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찾아보니 뭐가 너무 많았다. 많은 추천을 받으며 고심했지만 친절한 금자씨의 명언 “예뻐야 돼. 뭐든지 예쁜게 좋아”를 가슴 속에 새기고 살아온 사람으로써 결국은 외모에 반해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친구, 케맥스였다. 1-2인용 작은 크기도 있는데 굳이 4-6인용 사이즈로 구입한 것은 이 크기 이상에서나 캐맥스는 제 실력을 발휘한다는 헬카페 사장님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나, 기본적으로 내가 모르는 장르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말을 신뢰한다는 철칙에 따라, 그 말을 듣기로 했다. (핑계가 길었지만 그래서 더 비싼거 샀다는 이야기다.)


케맥스는 사실 드리퍼보다 전용 필터가 진짜다, 그 필터가 좋은 커피를 내리게 해준다라는 이야기에 구입한 필터는 브라운색의 사각 필터. 흰색 필터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대부분 예쁘니까 선택한다는 이야기에 나는 떨어진 사과를 보고 깨달음을 얻은 뉴튼처럼 손벽을 쳤다. 그래, 예쁘면 됐다. 그렇게 원두를 갈고 필터를 끼우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커피를 내렸다. 아무래도 전문가가 내리는만큼 맛있을 수는 없지만 프렌차이즈 카페의 기본 커피보다는 훨씬 마시기 좋다. 주전자 물을 부울 때 필요한 그 세심함. 어느 방향으로 물줄기를 돌리는지까지 따질만큼 깊은 세계가 있다고 하지만 거기까지 할 수는 없어 그냥 편하게 들이 붓기로 했다. 얼마전 읽은 교토의 전통있는 카페 로쿠요샤의 일대기를 다룬 책 <커피 일가>에 나오는 2대 장인 오사무에 따르면 커피는 원두의 선택과 로스팅에서 맛이 이미 80프로 결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구입하는 원두를 로스팅한 장인분들에게 80프로를 맡기기로 했다. 나머지는 그저 내 정성으로 내릴 뿐이다.


일단 내가 테스트를 좀 거친 후 그녀에게 커피를 내려주었는데 맛있다는 반응. 그녀가 해주면 다 맛있게 여기는 나와 달리 맛없으면 없다고 표정에서부터 드러나는 그녀라 그래도 합격점이라고 안심을 했다. 아마 내가 커피를 잘 내려서는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커피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빛타래라는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면서도 그런 경험이 있다. 당시 돈 받고 팔던 커피도 아닌데 커피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나에게는 어떤 커피에 관련한 기술도 없었다. 단지 손님이 10명이 와도 한 잔 한 잔 최선을 다해서 내렸다. 기왕 대접하는거 맛있는 커피를 주고 싶었다. 마실 것이나 먹을 것이나 나는 재료도 조리법도 모두 중요하지만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맛있게 마셔주길, 먹어주길 간절히 바라며 만드는 것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설프게 그녀를 위한 커피를 내린다. 하지만 사실 내가 내리고 있는 것은 커피가 아니다. 그녀에게 전하는 따뜻한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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