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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효진 May 30. 2022

교육소설 ep12.

상류층의 관문, GATE


*본 소설은 허구이며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학교, 학원 이름, 인물 등은 실제 사건과 관계없습니다.










원장님., 저 채윤이 엄마에요.







예, 채윤이 어머님. 안녕하세요.






J 수학학원장과는 동네 5학년 아이를 키우는 선배 엄마가 연결해주었다.


학군지에는 어디를 가나 교육정보에 빠삭한 엄마들이 있다.


돼지엄마들은 새끼돼지들에게 젖을 주듯 


상대적으로 정보가 필요한 다른 엄마들에게 교육정보를 공급하며


학생들을 몇 명씩 모아 팀을 짜주기도 한다.




이 중 애 성적이 잘 나오는 경우는 모집력이 특히 뛰어나다.


알아주는 명문대에 진학하면 그 때는 학원에서 공식적인 ‘실장’으로 모셔간다.


학원의 영업사원인 셈이다. 


학원의 실질적인 상위권 학생 모집은 ‘실장’들을 통해 이뤄진다.


실장들 간의 경쟁은 상당히 치열하다.


‘의대 보낸 엄마’, ‘서울대 보낸 엄마’의 타이틀은 어느 순간에나 당당한 명함이 되어준다.


그 뒤로는 자식 명문대도 보내고 끊어진 경력도 부활시키고픈 실장워너비 후배 엄마들이 포진해있다. 






원장님, 채윤이 빼고 4명 이야기하셨죠?


지금 S 학원 프리미어 반 


다니는 남자애들 두 명이랑 


CNS 팁 반 다니는 애 한 명 컨택했고요. 


S 학원 프리미어 반 다니는 


민재라는 애는 아직 확답 준 건 아니긴 한데 


그 집 엄마는 워킹맘이라 제


가 하자는 대로 다 하는 편이라 


아마 보낼 거고요. 


CNS도 이번에 결제방식이랑 


수업 방식 이래저래 바뀌면서 


엄마들 불만이 많아서 


아마 곧 확보될 거 같아요.







채윤어머님, 감사합니다. 


3학년 반은 처음 만드는 만큼 


상위권 아이들 모아서 시작하는 게 


저희에게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4명 모아주시면 


제가 특별히 신경 써서 


잘 가르쳐 보겠습니다. 


전에 이야기 나눈 대로 


채윤이는 학원비 안 받겠습니다. 


나중에 3학년 반 추가로 더 만들게 되면 


그때까지도 신경 써주시고요.







네, 원장님. 감사해요. 또 연락드릴게요.










J 학원 원장과의 카톡을 마친 현주는 차키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 지포어에서 새로 나온 핑크 점프수트 골프웨어가 예뻐 실물로 보고 입어볼 요량이다.




'간 김에 룰루레몬도 오늘부터 세일한다니까 들려서 득템 좀 해야지.'




현주는 구형 포르쉐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민재 엄마, 좀 생각해봤어요?












민재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은 민재를 확실히 섭외해야 한다.






원장님이 채윤이 봐서 


특별히 반 구성해주는 거지. 


나중에 고학년 돼서 들어가려고 하면 


정말 들어가기 힘들어요. 


성적 된다고 해도 원장 반 들어가려면 


기본 대기 2년이에요.










 





 




 채윤이와 민재가 팀을 이룬 것은 처음이 아니다.


같은 영어유치원을 보내면서 알게 된 것을 계기로 CAGE 영재학술원도 함께 보냈었다. 


7세 겨울 무렵엔 함께 대치동으로 영어 특강을 다니기도 했다. 


전부 현주가 주선해서였다.






이 동네에서 난다긴다 해봐야 


대치동 가보면 또 여긴 댈 것도 아니에요. 


가서 레테 보면 우리 애들 전국에서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엄마들이 숨을 죽이고 경청했다.


개중에는 펜과 노트를 꺼내들고 메모하는 엄마도 있었다.






대치동에는 소위 빅3 라 묶이는 


3대 영어학원이 있어요. 


그런 데는 원래 레벨테스트조차 


아무나 안 보게 해줘요. 


학원 설명회 들은 사람들 대상으로 


레테 신청 자격이 주어지는데 


그 설명회를 들으려고 또 예약자를 받아요.












카페에 모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시켜 놓고 열심히 설명했다.


현주의 이야기에 구미가 잔뜩 당긴 민재 엄마, 하은 엄마와 함께 대치동 레오킴 영어 학원으로 레벨테스트를 보러 갔었다. 






저희 레오킴 학원에서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상류층의 사고방식을 가르칩니다. 


영어는 수단일 뿐이죠. 


전 세계 상위 0.01% 백인 상류층들은 


라틴어를 배웁니다. 


현재 쓰이지 않는 라틴어를 


왜 굳이 배울까요?


바로 그들의 언어와 문화의 기원이 


라틴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를 할 줄 알아야 진짜 고급 상류층이고


 그들 사이에서 대화가 통하는 법이죠. 


또한 새로운 단어를 접해도 라틴어를 알면 


쉽게 그 뜻을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부원장의 설명 중에 귀에 꽂히는 단어가 있었다.




‘상.류.층의 사고방식’




 현주가 딸 채윤이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상류층의 생활 방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하는 것이다.


존재감 없던 학생이었던 현주에게 지금의 자리를 만들어준 건 의사 남편과 현주의 욕심 덕분이다. 하지만 의사에도 급이 있다. 대대로 의사 집안에 병원장 자제인 의사가 있는가 하면 현주의 남편처럼 저 시골 개천 용 의사도 있는 법이다. 


 회사에서 성추행과 왕따, 권고사직까지 쓰리콤보로 당한 뒤 무너져버린 자존감에 허덕였었다. 그 때 우연히 소개팅으로 만났던 남편은 수더분한 성격에 의사라는 직함까지, 게다가 현주를 좋아 해주니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얼른 결혼했다. 


 물론 의사로서 남편의 수입은 상당하다. 덕분에 집도 사고 남편이 구형 포르쉐도 중고차로 사줘서 끌고 다닌다. 하지만 현주는 성에 차지 않는다. 만약 남편을 처음 만났던 그때 더 재고 따졌다면 급이 다른 의사를 남편감으로 골랐을 것이다.




 채윤이만큼은 찐 부자에게 시집보낼 것이다. 꼭 의사일 필요는 없다. 적어도 강남에 건물 몇 채는 있는 집이어야 한다. 그들은 아무나 며느리로 받아주지 않는다. 그들의 문화를 알고 이해하는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그들의 서클에 자연스럽게 낄 수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 채윤에게 상류층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몸에 배게 만들어 그들 무리에 어울리게 만들고 싶다. 




현주의 팔목에는 에르메스 피코탄백이 걸려 있지만 설명회 앞자리에 앉은 다른 엄마들의 켈리백이, 버킨이 부럽다. 













 




 설명회가 마치고 아이들을 레벨테스트에 넣어 놓고 카페에 자리를 앉았다.






국내에서 의대 보내는 게 목표인데 


굳이 라틴어까지 할 줄 알아야 해요?










가장 먼저 민재 엄마가 볼멘소리를 내놨다. 


처음 와본 대치동 학원 설명회에 잔뜩 기가 눌린 모양이었다.






민재, 준비 많이 했어요?












항상 남이 무슨 얘길 하건 자기 말만 하는 하은 엄마가 민재 엄마에게 물었다.






브릭스 250 풀던 거 좀 풀다 왔는데 


너무 준비를 못 해서 어쩌죠?







레오킴은 7세에 주니어 토플 풀다 오는 애들도 있다는데. 레오킴 붙은 어떤 엄마는 과외 붙여가지고 브릭스 300까지 여섯 번인가 돌려가지고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민재 엄마의 대답에 현주가 받아쳤다.


 


 저래 놓고 대치동에 가면 너 같은 애들은 상위권 축에도 못 낀다며 레테 2주 전부터 쥐잡듯이 잡았을 것이 분명하다.


빨대를 문 민재 엄마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되었다. 민재 엄마의 의아한 표정에 뒤돌아보니 컨설팅 룸이 보였다.








아, 저기 애들 학습컨설팅 받는 곳이에요. 


학원과 학원 사이에 학습컨설팅 받아요. 


공부법도 점검해주고 학원 추천도 해주고 


모자란 부분 과외도 붙여주기도 하고요.









대치동은 정말 다르네요. 


샵인샵으로 네일샵 같은 게 들어가 


있는 건 봤어도 학습 컨설팅이라니.










민재 엄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을 기울여 얼음을 와그작 씹었다.


맨날 얼음을 저렇게 씹어 먹는데 어금니가 남아나긴 하는 걸까. 






저런 덴 몇 학년부터 받아 줘요?







우리 애들 정도는 아직 이르고 


초등 3학년 정도 되면 


슬슬 받기 시작하더라고요.










대답을 마친 현주는 피코탄 백에서 립밤을 꺼내 발랐다. 















대치동에서 특강을 듣던 7세 겨울방학. 

그 동네 사는 지인으로부터 영어유치원 아이들만 골라 받는다는 STEAM 원데이 클래스 정보를 들었다. 

레오킴 방학 특강이 끝나고 아이들과 클래스를 들으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검색했다. 

새하얀 공간에 레이스 커튼이 사이로 햇살이 잔뜩 쏟아진다.

앞치마를 두른 아이들이 원어민과 해맑게 웃으며 코딩을 하고 있다. 

핑크색 앞치마를 두른 여자아이는 레몬을 썰고 있고 파란색 앞치마를 두른 남자아이는 악어 집게를 연결하고 있다.



디엠을 보냈다.






22일에 예약되나요?







네, 아이 정보 주세요.


(이름, 나이, 유치원)







양채윤, 7세입니다. 







유치원정보주세요







P 영유, 00점입니다.






아이들 쿠킹 클래스에 어느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건지 지나치게 자세한 개인 정보를 묻는 것이 언짢았다. 




 약간의 정적 후 답장이 왔다.






죄송하지만 그 날 


예약 자리가 없습니다.












불쾌함이 확 밀려 올라왔다.






네? 그럼 정보는 왜 물어봤죠?







정보 다 안 주시면 


상담 자체가 안되세요.








 대치동의 유명 영유 아이들이 방과 후에 많이 다니는 것으로 입소문이 나 전국적으로 성공한 P 잉글리쉬 멤버쉽 클럽이 떠올랐다. 


 영어로 책과 창의 활동을 접하게 한다는 그곳은 모두의 워너비라 불리는 KATE 영유 아이들이 하원 후에 들려서 숙제까지 다 마치고 온다는 곳으로 알려져 영유를 안 보내는 엄마들의 불안을 자극해 마케팅에 성공했다.


 일반 유치원에 다니느라 영어가 처지면 어쩌나 좌불안석인 엄마들이 영유 오후반을 등록하는 심리를 잘 이용했다.  




'이것들이 거기 벤치마킹을 하나.' 




현주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것도 그 날 


여석이 있을 때 얘기죠. 


여석이 없는데 그럼 


저는 우리 애 개인정보만 넘긴건가요?










날이 선 답장을 보냈다. 






저희는 정보를 받아서 


비슷한 친구들끼리 묶어줍니다.






'비슷한 친구들..?




지금 KATE 애들만 가려 받겠다는 거야? 다들 순혈주의야, 뭐야. 


원데이 클래스 주제에.


우리 채윤이는 급이 안맞는 다는 거야?!'








그럼 유치원에 따라 자리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건가여?







네. 










대치동이 아니어서, KATE가 아니어서 원데이 클래스도 들어갈 수 없다니.


불투명한 유리 조각이라도 삼킨 듯 불쾌하고 불편했다.


교육계는 장벽 뒤에는 또다른 장벽이, 그 안에서는 미세한 계급이 끊임없이 나뉘어 있다.


사소한 것도 사소한 것이 아니다.




민재 엄마나 하은맘에게는 STEAM 원데이 클래스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다.










민재 J 학원 보낼게요.










드디어 민재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골프 레슨을 마치고 나오던 현주는 카톡을 확인하고 바로 민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채윤 엄마.








 회사에 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전화를 빨리 받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민재 엄마에겐 직장 일보다 애 수학학원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잘 생각했어요, 민재 다니고 있는 


S 수학학원은 어쩌기로 했어요?







안 그래도 민재가 너무 좋아해서 


그만두기 싫다고 난리예요. 


자기가 거기에선 제일 잘하는 반이고 


하니까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이제 거기서 나와서 


또 잘하는 애들 만나서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이러다 4학년 때 H 수학학원도 


못 붙으면 어쩌나 걱정이에요.






민재 엄마는 늘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지금 다니는 S 학원은 사고력 위주고 


교과는 따로 안 챙겨주잖아요. 


우리 애들 보낼 J 학원은 교과 위주긴 한데 


또 사고력 놓긴 좀 그렇고요. 


전에 얘기한 수학꿈 학원도 


레테 한 번 보는 거 어때요?












수학꿈 학원은 아직 현주도 연결고리가 없어서 원장을 컨택해보지 못한 곳이다. 이 기회에 민재가 다니게 되면 기회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수학학원을 그럼 두 개나 보내요?










이 동네에서 애 키우면서 정말 사정 모르는 소리 하고 있다.






이 동네 애들 두 개는 기본이죠. 


인도 베다 수학으로 하는 연산까지 


세 개 보내는 엄마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저런데 S 학원 프리미어 반이라니.


민재 엄마는 본인 노력 대비 민재가 똘똘해서 상위권에 들어가 있는 거지 싶다.


민재한테 절하면서 다녀야 한다.








채윤이는 수학꿈 학원은 안보내실 거예요?






 






채윤이는 따로 과외 선생님 오세요. 


그리고 베다수학도 


이 동네는 원장이 좀 별로에요.














 베다수학을 하는 다해 수학학원 원장과는 이야기가 잘 안 풀렸었다. 팀 묶어 온다는데 학원비 면제 혜택도 안주는 곳에 굳이 보내고 싶지 않다. 


 베다 수학이라며 현란하게 가르쳐 봐야 교과 수학에서 가르치는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채윤이 처럼 수학 머리가 뛰어나지 않은 애들은 서로 다른 계산방식에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오히려 수포자를 만드는 독이 될 수 있다. 






민재도 한 팀에 넣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B 학원도 알아볼게요.














 전화를 끊은 지영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 CNS에서 한명만 더 확보하면 J 수학학원 팀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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