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교육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효진 Aug 28. 2022

교육소설 ep20.

인플루언서 슬라임


*본 소설은 허구이며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학교, 학원 이름, 인물 등은 실제 사건과 관계없습니다.








눈을 뜨자 깨질 듯한 두통이 몰려왔다.



어젯밤 마셨던 와인의 숙취였다.








아, 아. 하아.







 


 수면제와 와인을 함께 마시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한 게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지는 안방을 나와 부엌으로 가서 정수기 버튼을 눌러 컵에 물을 따랐다. 애드빌 두 알을 입에 넣고 물을 한 모금 머금어 삼켰다.







아..







 왼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엄지와 약지 끝에 힘을 주어 관자놀이를 눌렀다.






하아.






 강한 갈증에 남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거실로 걸어와 암체어에 털썩 몸을 던졌다.


커튼 사이로 햇빛 한줄기가 들어와 거실을 가로로 질렀다.







몇 시야.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12시 20분.



 한 시간 후면 벌써 아린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다.


어제는 수면제를 한 알 더 먹은 덕인지 그래도 잠을 좀 잤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밤사이 확인하지 못한 알림이 빨갛게 떴다.







좋아요 928개, 팔로워 1,500명.. 







하룻밤 사이 팔로워가 1,500명이 늘었다.







이제 1만 겨우 넘은건가 그러면.






 어제까지 8,900명대로 네 자릿수였던 팔로워 표시가 ‘1만’으로 깔끔해졌다.


아린, 세린이와 하는 일상을 올릴 때는 지지부진 하던 숫자가 엄마표영어와 교육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팔로워가 늘기 시작했다.



 밤사이 올라온 새 피드를 훑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이후로 암체어에 늘어져 다른 사람들의 피드를 훑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드디어 여러분을 만나러 갑니다.


그동안 호주에서 엄마표영어로 


한국에 계신 어머님들을 


인스타로만 만나 뵈어서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 여름에 한국에 가서 오프라인 강연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여러분 너무 만나고 싶었어요.



아무도 안 오시면 어쩌나 


벌써 걱정하고 있어요.



많이들 와주실 거죠..?







어머, 라이언마마님. 


한국 오시는군요. 


저 딱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너무 기대돼요. 


바로 신청했어요.


강연 때 뵈어요.







와, 백화점 강연하시는 거에요? 


너무 대단하세요.







 엄마표영어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라이언마마의 한국 강연 소식이 첫 피드에 떴다.







진짜 염병하네.







 연지는 가슴 쪽에서부터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얘 한국에서 방문학습지 선생님이었던 거 


다들 알고도 이렇게 열광하려나.










라이언마마를 처음 알게 된 건 아린이와 장을 볼 때였다.







어머, 어머니 너무 예쁘세요. 







 왼쪽 어깨에 커다란 검정 가방을 메고 말을 거는 영업사원의 신발은 무척이나 닳아 앞코가 다 까져있었다. 







어쩜 따님도 진짜 공주님 같아요.


엄마 닮았나봐요.







 영업사원은 유모차에 앉은 아린의 손을 덥썩 잡았다.


얼마나 많은 걸 만졌을 텐데 그 손으로 아린이의 손을 잡다니 불쾌했다.







우리 예쁜 아가는 이름이 뭐에요? 


뭐 해주는 거 없으세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로 본인도 아린이보다 약간 어린 딸이 있다며 조만간 집에 한 번 방문해서 영아들에게 좋은 책들을 안내해주겠다며 명함을 내밀었다. 둘둘 말린 교육용 포스터 또한 두어 개 유모차 밑 바구니에 꽂아두고 간 것이 라현엄마와의 첫 만남이었다.



 몇 번 인가의 통화와 방문 끝에 전집에 책장까지 들이고 라현엄마는 방문학습지 선생님으로 연지의 집을 정기적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아린 어머니는 진짜 공주님 같아요.


얼굴도 예쁘신데 집도 여유 있으시고


저같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무수리같이 느껴진달까요.







 가끔 수업 시간이 끝나고 나면 커피를 마시며 수업 시간 피드백에 이어 본인의 넋두리를 이어 하곤 했다.


 한국에서 전문대를 나와 회사에서 서무로 있다가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방문 학습지 영업사원이 되었다며 묻지도 않은 본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요리사인 남편이 호주에 취직해서 가게 되었다며 수업을 그만두기 전까지 2년여를 아린의 수업을 위해 들락거렸다.



 그랬던 라현엄마가 엄마표영어 인플루언서가 된 것은 호주에 간지 1년여가 지나서였다.







안녕하세요, 


호주에서 아이 키우는 


ryan mama 라이언마마에요.


라이언은 엄마, 아빠는 


모두 한국인이고 


지금 호주에서 킨더 다니고 있어요.



저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영어를 지도해 왔었답니다.


그 경험과 더불어 영어권 국가에서 제 아이를 직접 키워보게 되면서


 느낀 점이 참 많아요.



흘려보내기 아까운 정보와 팁들을 


인스타에서나마 한국 학부모님들께 


전해 볼까 해요.







일상 사진만 간간히 올라오던 라현엄마의 계정이 어느 순간 엄마표영어 인플루언서 라이언마마로 탈바꿈했다.







이제 좀 적응했나 보지.


애 키우기도 힘들텐데 대단하네.








 생각 외로 영상이나 사진 찍는 감각이 꽤 뛰어나 보였다. 앞코가 다 까진 구두를 신던 구질한 영업사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라현엄마의 호주에서의 삶은 간결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이런 쪽으로 재주가 있었나.


피드만 보면 혹하겠네, 진짜.







 그 후로 라이언과 요리를 하거나 블럭놀이를 하면서 영어로 대화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햇살 가득한 호주의 새하얀 집에서 영어로 요리를 하는 모습은 엄마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해보였다. 그때 사용한 표현들을 카드뉴스로 정리해서 올리는 피드가 연이어 올라왔다.



 라이언마마의 팔로워는 순식간에 늘어났다. 








아우, 발음 뭐야.


베이비 토크 수준에 문법도 엉망인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좋아해?







 라이언마마에 대한 거부감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건 그녀가 책을 쓰겠다고 나서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아니, 지가 뭐라고 책을 써?


너무 선 넘는 거 아니야?







 아니꼬울수록 자세히 보게 되고 그럴수록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은 라이언마마의 소실을 연지에게 제일 상단 피드로 알려주었다.



 실력도 없는데 책을 어떻게 쓰려나 싶었지만, 꾸역꾸역 써냈을 라이언마마의 책이 세상에 나왔고 이제는 백화점 강연 소식까지 올라왔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 가슴 언저리께에서 꾸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 설마 라현엄마를 


질투라도 하고 있는 건가.







 정확히 규정하기 힘든 감정의 덩어리였다.


아린이와 종종 가는 슬라임 카페에서 주물거리던 슬라임 덩어리 마냥 고체 같다가도 액체 같은 감정이 규정할 수 없는 모양으로 끊임없이 일렁였다. 옷에 붙으면 절대 안떨어지는 진절머리나는 슬라임처럼 알 수 없는 감정이 여기저기 들러 붙었다.



 엄지손가락으로 피드를 올리자 이번에는 다른 엄마표영어 인플루언서의 피드가 눈에 들어왔다.







다들 영어 알려주지 못해 환장했나 봐.


지겹다, 지겨워.







 이 중에 제대로 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다. 



 암체어 옆 사이드 테이블에 어제 마시다 남은 와인병이 그대로 올려져 있었다.


병째 들어 남은 한 모금을 들이켰다.







아, 어제 열어놔서 그런가. 맛없어.







연지는 미간에 잔뜩 힘을 주었다.



따라라라라



벨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 속 학교 가방을 멘 아린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엄마, 나 부회장 됐다?







 전실에 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내려놓고 중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린이 연지를 향해 말했다.








어머, 진짜? 


오늘이 회장 선거였어?







응. 나 대단하지? 






 연지는 핸드폰 카메라를 열어 아린의 뿌듯한 표정을 어서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게, 우리 아린이 너무 대단하네. 


부끄러워서 그런 거 못 하겠다더니 


어떻게 용기를 다 냈대. 


게다가 당선까지 되고. 



너무 잘했어, 이리 와.







 연지는 암체어에 기대었던 몸을 앞으로 당기어 아린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아우, 냄새. 


엄마, 아침부터 또 술 마셨어?







 밝게 웃으며 다가오다가 미간을 잔뜩 찡그러트린 아린이 고개를 뒤로 쭉 빼었다.







아, 아니야. 


이거 어제 먹던 거 빈 병이야.







 연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병목을 잡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엄마, 여기다 두면 저번처럼 


또 세린이가 밟아서 다쳐.







괜찮아, 이따 아주머니가 오셔서 


치워주시겠지. 







 아린은 빈 와인병을 들고 익숙하단 듯 전실에 세워 놓았다.







아이구, 우리 아린이 다 컷네.


 누구 닮아서 저렇게 의젓할까.






 연지는 병을 놓고 중문을 지나 들어오는 아린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아린이, 세린이 때문에 산다 엄마가.







연지는 아린을 힘껏 안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교육소설 ep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