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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효진 Aug 18. 2022

교육소설 ep19.

꼭두각시 피에타


*본 소설은 허구이며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학교, 학원 이름, 인물 등은 실제 사건과 관계없습니다.








아스팔트 바닥 위, 오빠의 얼굴은 너무나 깨끗하고 하얬다. 너무도 평온해서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은 서글픈 생각마저 들게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과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에서 보았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떠올랐다.


 마리아의 손에 안겨 있던 예수님의 얼굴은 인간들의 시선에서는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예수를 끌어안은 마리아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면 예수의 표정은 모든 짐을 내려놓은 편안한 모습이라며 가이드가 설명했다. 관광객이 볼 수 없는 각도의 모습이라며 가이드가 보여주었던 위에서 내려다 본 사진은 어린 연지의 뇌리에도 강하게 박혔다. 



 그보다 더 위에 계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어땠을까. 처연하고도 대견한 모습이었을까.



 피에타 상을 조각할 당시 미켈란젤로는 24살의 젊은 청년이었다. 인생 고작 이십몇 년 남짓하게 살았던 그 청년은 어떻게 그 졀묘한 표정 차이를 조각해 낼 수 있었을까. 스스로 해낸 조각의 모습이 자랑스러워서 야심한 밤 성당의 담을 넘어 마리아의 띠에 본인의 이름을 새겨 넣을 정도의 미성숙함을 가득 머금은 치기 어린 청년이었지만 그 슬픔을 표현하기에는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어린이들에게도 감정이란 있다. 다만 그걸 어른도 납득 가능할 만큼 완벽하게 표현해 낼 방법이 없을 뿐이다.









 평온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오빠의 사지는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각도로 무참히 꺾인 그 모습은 마치 교복을 입힌 꼭두각시 인형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어떻게 사람 몸이 저렇게 꺾이냐? 


어때? 비슷하냐? 넌 돼냐? 






 서커스를 보러 갔을 때 흉내를 내보이던 오빠의 모습이 생각났다. 






공부를 해야지. 


공부 안하고 몸으로 먹고 살면 


저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함께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공연을 보던 엄마, 아빠는 그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얼마나 혹독하게 연습했을까 짠하다며 혀를 찼다. 





 사람이 투신하면 머리부터 떨어져 피가 낭자한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언젠가 오빠가 빌려온 비디오 테잎에서 그런 장면이 나왔었다. 오빠 등 뒤에 숨어 보느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그 이후로 자꾸만 무서운 생각에 한동안 건물 옆을 지나갈 때면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무서워 멀찍이 거리를 두고 길 한 가운데로만 걸어 다녔다.






아빠 학원이 있던 건물에는 여러 학원이 몰려 있었다.


오빠는 바로 그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특목고 입시 발표가 난 직후였다.


아빠 학원을 가는 길이었던 연지는 건물 앞 바닥에서 오빠를 보았다.








 세 살 위의 오빠와는 그렇게 애틋한 사이는 아니었다.


요즘 유행하는 흔한 남매.


그냥 딱 그 정도였을 것이다.


늘 모범생이었던 오빠 덕분에 편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했다.




 젊은 시절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불의를 보면 타오르는 성격은 전교조 활동으로 이어졌다. 독재정권에서 전교조 활동은 쉽지 않았고 아빠가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결국 엄마는 사직했다.



 당시 다른 유학생 가정이 그렇듯 아빠는 공부했고 엄마는 마트 캐셔 일을 하면서 살인적인 유학 생활비를 감당했다. 


 결국 아빠는 낯선 미국땅에서의 공부가 힘에 부쳤는지 학위는 따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배운 것이 공부밖에 없던 아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네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원장인 아빠와 실장인 엄마 단 둘뿐이었다고 했다. 교실이라고 할 것도 없는 책상 두 개, 나 칠판 하나의 공간. 그마저도 월세 감당을 위해 과외도 나갔다. 


 당시 드물었던 유학파 원장과 전직 교사 출신인 실장의 조합은 곧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동네에서 제일 인기 많은 영어 학원으로 급부상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내 비록 학위는 못 하고 돌아왔지만 


이제 학군지라고 손꼽히는 이 동네에서 


나름 자리 잘잡은 원장이란 말이지.







 아빠는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







네 아빠가 좀 더 뚝심 있게 끝까지 해서 


학위만 땄어도 교수 사모님인데. 


내가 학교 선생도 그만두고 


학원 실장 하면서 


이렇게 고생하고 사는구나.







 그럴 때면 늘 엄마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말 끝을 늘이면서 아빠를 살짝 흘겼다.



 학원의 급성장에는 엄마의 물 샐 틈 없는 관리가 큰 몫을 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했다. 염치는 있는 아빠인지라 엄마의 그 말에 늘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다. 엄마가 짜주는 계획표를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고 동네 엄마들은 줄을 섰다. 





 오빠와 내가 학교 가는 시간에는 쉬고 우리가 돌아오면 출근해야 하는 학원의 스케줄 때문에 엄마, 아빠는 늘 시간에 쫓겼다.







종철이 너, 엄마 올 때까지 해놓을 거 


여기 적어 놨으니까 해놔. 


그리고 오늘 이따 수학이랑 국어 선생님 


오시는 날이니까 제대로 잘하고. 


선생님들 숙제는 다 해놨지?







 엄마는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스케치북만 한 플래너를 준비했다. 그곳에 매일 오빠와 나의 스케줄과 해야 할 숙제들을 잔뜩 적어 놓았다.


 엄마, 아빠의 빈 시간은 과외와 학원으로 가득 채웠고 그날그날의 숙제 수행 상황과 수업 태도를 선생님들은 플래너에 기록해야 했다. 플래너에 적힌 선생님들의 코멘트에 따라 밤늦게 퇴근한 엄마의 기분이 결정되었다.







너 이제 곧 대원외고 입학시험 


한달 밖에 안 남은 거 알지?


네 아빠가 박사 따서 정교수라도 했으면 


벌이는 지금보다 적었어도 


정년 보장에 연금까지 안정성은 있었을 텐데. 


학원이라는 건 인기를 순식간에 얻어도 


소문 한 번만 잘 못나도 


학생들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건 순식간이야.



너 이번에 만약에 


대원외고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냥 너만 떨어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학원 전체에 타격이 어마어마할 거야.


그니까 바짝 긴장하고 공부해.








 엄마는 늘 하던 그 말을 반복한 채 가슴 가득 프린트물을 감싸 안고 바삐 나갔다. 


 그 흔한 대출 한 번 받지 않은 엄마는 안정적인 걸 극도로 추구하는 성향이었다. 교사를 계속했으면 가장 잘 맞을 텐데 엄마 말대로 아빠를 만나는 바람에, 아빠를 버리지 못해서, 그런 아빠가 학위를 마치지 못해서 늘 불안했다.







나는 둘째에다 딸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오빠만큼 엄마, 아빠가 부담 주진 않잖아.


고생해라, 장남.







 오빠가 짠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입 밖으로는 놀리는 말이 나왔다. 확실히 연지에겐 오빠에 비해 부모님이 주는 부담이 덜했다. 오빠에겐 엄청나게 빡빡하고 엄격하게 굴고 체벌도 서슴치 않았다. 그에 비해 연지에겐 동네에서 구설에 오를 만큼 사고 안 치는 예쁜 딸 정도의 역할만을 원했다. 고입을 앞둔 오빠에 비해 아직 초등학생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학원의 평판을 책임지는 간판은 언제나 종철 오빠였다. 








이게에.







 얄밉게 구는 연지에게 오빠는 헤드락을 가볍게 걸었다. 







꺄학. 너 때리기만 해봐아.







 오빠가 꿀밤까지 먹이기 전에 옆구리를 한 번 꼬집어 팔 아귀에서 빠져나온 연지는 부엌으로 내달렸다.



 부엌에는 엄마가 한 솥 가득 끓여 놓은 김치찌개가 있었다. 그것이 아니면 새우젓을 푼 두부찌개나 카레로 늘 돌려막기였다. 엄마가 한 번 해놓으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오빠와 나는 그걸 먹었다. 








 오빠의 모습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 중에 한 아저씨가 나와서 재킷으로 오빠의 몸을 돞어주었다. 흉하게 틀어진 관절 부분이 가려졌지만 팔다리의 각도가 기형적으로 틀어져 있다는 것은 누구나 한눈에 가늠해볼 수 있었다. 자켓을 덮어준 아저씨는 부모님의 옆 학원 원장님이었다.



 구급차가 왔고 오빠의 시신을 수습해갔다.




 그날부터 연지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동네 학원가 상가에서 벌어진 일이라 소문이 파다했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가는지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3 일상을 치른 직후부터 학원을 정상 운영했다.



 그 독한 모습에 치가 떨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유일한 수입원이 학원이었기에 부모님도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산 사람은 먹고살아야 하기에 이 학물고 열었으리라.







우리 학원이 왜 잘되는 줄 알아?


성실한 거. 



학원 좀 잘된다고 늘어지는 거 없고 


항상 중간, 기말 내신까지 


치밀하게 관리해주는 거.


그리고 유학파 원장이네 


뭐네 해가며 턱없이 비싸게 안 받고 


상대적으로 약간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의 학원비.



그 두 개가 생명이야. 







 엄마가 늘 하던 말이었다.








연지야, 너 유학 가라. 


넌 이 미친 동네에서 살지 말고


 그냥 미국 가서 편하게 살아. 


엄마, 아빠가 열심히 벌어서 


유학 비용은 다 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서 너 하고 싶은 공부해. 







 늘 빈틈없는 엄마인지라 유학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고


중학교에 올라가던 해 봄, 연지는 혼자 미국에 가게 되었다. 




 엄마, 아빠의 눈물겨운 노력 때문이었을까. 대놓고 입 밖에 내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다들 쉬쉬했던 걸까. 미국으로 가버린 연지는 자초지종을 알 수 없었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인건지 학원은 문을 닫기는 커녕 원장네 아들 투신 자살이라는 스캔들을 거친 후 더욱 성장했다.








 크룩 툭유의 알싸한 향이 코끝에 감돌았다.







처음엔 이것도 톡 쏘는 게 


좀 새롭고 좋았는데 


계속 마시다 보니까 이제 그냥 그렇네.







연지는 마시던 리델 샴페인 잔을 내려 보았다.







하긴 뭐 맛있어서 마시나. 







아린의 방에서 첼로 소리가 들려왔다.


연지는 첼로 방의 문을 황급히 열었다.







아린아, 그래 엄마는 이 소절이 제일 좋더라.


엄마가 좀 찍게 그 부분 다시 연주해봐 봐.







왜? 또 인스타에 올리게? 


나 너무 부끄러워서 싫단 말야.







아린이 얼굴을 붉혔다.







왜 아린아아. 


선생님이 너 잘한다고 


전공해도 될 거 같다고 하셨잖아.


엄마 꼭 올리고 싶으니까 


한 번만 다시 연주해봐 봐. 


얼굴 덜 나오게 찍을게.






 녹화한 영상을 인스타에 업로드했다.







첼로는 취미로만 했으면 좋겠는데


아린이가 하루종일 연습을 해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남는 방 하나에 방음공사를 했어요.


이웃에 폐 끼치면 안 되니까요.



평범하게 키우고 싶은데


지도해주시는 교수님도 


진지하게 전공을 고려해보라고 하니 


자꾸 고민이 많아지는 엄마입니다.



#첼로 #음악 #클래식전공







어머, 아린이 첼로 하는 줄은 알았지만, 전공 권유 받을 정도였군요. ㄷ ㄷ ㄷ







아린이는 아린맘을 닮아서인지 얼굴도 예쁘고 예술적인 감각도 뛰어난가봐요.







영어도 잘하고 첼로도 잘하고 대체 못하는 게 뭔가요, 아린이는.







요즘엔 엄마표영어 컨텐츠는 안올리시나요?







 



 첼로 연주 피드가 올라가자 무서운 속도로 좋아요와 댓글이 달렸다.








엄마표 영어 콘텐츠 안 올리냐고?


참나. 언제까지 엄마표 컨텐츠만 올리냐.


나한테 뭐 맡겨 놨어?



그냥 첼로 연주 피드에는 


그냥 첼로 소리만 들으면 안 돼?



암튼 프로불편러들.







연지는 거칠게 잔에 샴페인을 들이부었다.







뭐야, 벌써 다 마셨네.






 연지는 남은 병을 바닥에 내려 놓으며 아린을 불렀다.






아린아, 와인 냉장고 가서 


샤또 무통 하나 좀 꺼내줘.








 아린은 익숙한 듯 부엌으로 향했다.



연지는 이알리미로 온 3학년 반 배정 명단을 살폈다.







 김하진, 유이안, 박아린, 


김준서, 김민재, 양채윤






 크룩의 마지막 모금을 삼켜 넘기자 알싸하게 목구멍을 자극했다.






채윤..? 



아, 현주 딸.


올해 같은 반인가 보네.







 채윤 엄마 현주는 연지와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다.


 워낙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던 현주였기에 동네에서 마주쳤을 때 같은 동네 출신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엄마가 채윤 엄마도 이 동네에서 쭉 컸다고 말해줘서야 현주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 수 있었다.



 현주의 딸, 채윤은 학창 시절의 엄마와는 다르게 매우 튀는 패션에 야무진 인상을 하고 있다. 


예전과 다르게 왠지 눈빛에 야망이 이글거려 보이는 현주와 둘은 환상의 콤비 같은 느낌을 풍긴다.







아, 아린이도 좀 채윤이마냥 


나대면 차라리 좋으련만.


인스타 피드 올릴 거 뭐 하나만 


찍쟤도 맨날 빼고.







엄마, 여기.


그리고 이거 다 마시지마.







알았어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와인을 건네는 아린에게 연지는 한껏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쇼파 테이블 위에 항상 놓여 있는 와인 오프너를 잡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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