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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Dec 25. 2018

S#4. “사건을 공론화시키자.”

내 억울함을 들어달라는 것도, 상대방을 망신 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8.

 작전은 총 5단계였다.


 첫째, 사건을 공론화시키자. 우선 이 사건을 널리 알리자는 마음이었다. 내 억울함을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을 망신 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 대기업의 직원들도 판례만 있었다면 그 판례를 근거로 결재 올려 손해배상비 지급하고 빨리 끝내고 싶었을 것이다. 나 역시 조직에 소속된 사람이라 그 마음을 몰랐던 것이 아니기에 좀 더 현행법의 한계에 주목했다.


 흔히 억울한 상황을 겪게 되었을 때,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에 보도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언론은 보도되는 시점까지의 사건 전개를 알릴 뿐이지, 내 편이 되어 끝까지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회사 업무로 인해 다른 예술가들 보다는 이러한 언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미 상대방인 대기업과 충분한 논쟁이 진행된 후 양측의 입장이 모두 정리된 상황에서 언론의 기능을 빌려보자 생각했다. 물론 그 대기업 입장에서 언론 보도가 반가울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했다. 하지만 나는 언론 보도가 필요했다.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의 조언을 들어야 했고, 매번 내가 그들을 찾아가 구구절절 사건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상황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간 내가 지칠 게 뻔했다.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내가 소송에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시간순으로 내 입장뿐만 아니라 상대방인 대기업의 입장, 그리고 현행법의 한계가 정리된 객관적인 글이 필요했다.


 신문 보도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홍보·마케팅 일을 해 온 덕분에 아는 기자도 많았지만, 이 사건에 적합한 매체와 기자가 필요했다. 한겨레신문 사회부 기자 중 서울시 서대문구 담당 기자를 찾아 사건을 제보했다.


2007년 5월 10일 한겨레신문 독자기자석, 이사오는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할 때 쓰는 이름으로 245mm 내 발사이즈를 의미한다.


 ‘한겨레신문’에 제보한 이유는 2007년 한 국제영화제에서 미디어아트 작품 제작 의뢰를 받았고 작품을 완성했으나, 개막식 당일 전시가 취소되었을 때 한겨레 ‘독자기자석’으로 작가로서 내 입장을 주장하며, 사과 요청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겨레는 그 국제영화제를 후원하는 언론사였는데, 내 입장을 알고 독자기자석이라는 신문 기고 방식을 안내해주었다. 작품이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영화제 측으로부터 사과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갓 대학을 졸업한 24살 젊은 작가인 나에게 위안이 되었고, 살면서 정정당당하게 내 권리를 주장하고 상대방과 합의점 찾는 데 있어 좋은 경험이 되어 주었다.


 ‘서울시 서대문구’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백화점이 위치한 사건 발생지였다. 만약 언론사에 제보해야 할 사건이 있다면 신문사에 전화해서 문의해도 되고, 사건이 발생한 지역이나 사건의 성격에 따라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 해당 분야 담당 기자의 기사를 검색해 이메일 보내도 된다. 신문, 방송, 잡지 등에서 기사 하단에 취재기자의 이름을 밝힌 줄을 ‘바이라인(by-line)’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언론사의 바이라인에는 취재기자 이름과 함께 이메일이 적혀 있다. 꼭 친분 있는 기자가 있어야만 언론사에 제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겨레신문 측에서도 흥미로운 사건이라며 취재하겠다는 대답을 주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나의 홍보담당자가 되어 지난 10년의 홍보 노하우를 모두 동원했다. 재판을 위한 법률 지식은 없었지만, 이건 자신 있었다. 한겨레신문은 다른 언론사에서 보도할까 보도 시점을 앞당기길 원했다. 나는 언론사 측 의견에 동의했고, 한겨레신문 자회사인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허프코리아 페이스북, 트위터 계정에도 기사가 게시될 수 있도록 요청했다. 나와 대기업의 사건은 SNS 홍보 목적으로 시작된 일이었기 때문에 SNS로 기사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이후 담당 기자의 취재에 응하며 기사에 쓸 수 있는 현장 사진과 대기업과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증명 등의 자료를 날짜별로 정리해 제공했다. 사건과 관련해 법률적 의견 줄 수 있는 전문가를 두 분 섭외했다. 한 분은 사건이 발생하고 지인 소개로 만나 딱 한 번 같이 식사한 변호사였고, 다른 한 분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예술가 대상으로 저작권법 강연할 때 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짧게 여쭤봤던 로스쿨 교수님이었다. 현행법의 한계는 있으나, 내 주장이 터무니없지 않음을 설명하는 데 힘 실어줄 분들이었다. 담당 기자는 제보자인 나의 입장을 살피되 객관성이 유지된 보도를 위해 과거 판례를 찾아보고, 대기업 홍보실에 전화해 그들의 공식적인 입장이 기사에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 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브런치에 게시하는 이유는 저와 같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본 게시물을 보시고, 임의의 매체 및 저작권법 관련 강연 등에 활용하실 경우 반드시 사전 협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판결문은 SNS 등을 통해 공개하였으나, 본 브런치에 소개되는 내용은 제 개인의 정보가 있어 보다 정확하게 소개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전 협의 없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문의 : dearmother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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