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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Dec 29. 2018

S#8. “변호사에게 도움받는 방법 2”

‘모의고사 문제 풀듯 여러 재판을 보자.’

12.

 2017년 8월 한겨레신문에 보도되고, 마음은 당장이라도 소장을 접수하고 싶었다. 개인 소송을 결심한 이상 직접 소장도 쓰고, 입증자료도 찾아야 하고, 변론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해야 할 것이 태산이었다. 나는 소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결국, 소장은 4개월 후인 2017년 12월에 접수했다. 참고로 내 사건의 소장은 추후 입증자료 목록과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막막한 시간을 보내며 배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당사자가 되어본 것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사람을 위로하고, 돕는 것과 직접 사건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달랐다. 당사자가 되어 도움 청하는 경험은 내가 그동안 해 보지 못한 성격의 일이었다. 살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적도 있고, 일이 내 마음처럼 풀리지 않던 때도 있었지만 당사자가 되어 나의 일로 계속해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도움을 잘 청하기 위해 내가 도움 구하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안중을 살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내 삶이 참 편했구나 싶었다. 사람들은 너무 바빴고, 변호사들은 더 바빴다. 내 사건에 관심 두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고마웠다. 그리고 나처럼 곤란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해도 해 보는 것이었다. 처음 앨범 낼 때도 그랬다. 이십 대 중반이면 사회에 진출해 조직 생활을 배워나가거나, 예술가라면 세상에 좀 더 자신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표해야 하는 시기였다. 집이 여유로웠던 것도 아니고, 나에게는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이 쌓여있었다. 그런데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싱어송라이터의 길이라니. 그저 피아노를 오래 배운 것과 음악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1년을 쉬며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지만, 남들은 날 ‘백수’로 봤다. 그때부터 무모한 도전하는 경험이 쌓여서인지, 혹은 그 시절 내가 직접 목격했던 ‘음악 하는 이들의 힘든 현실’을 알기 때문인지 재판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얻고 싶은 결과는 ‘승소’였지만, 이기지 않더라도 문제에 한 발 짝 다가가고 싶었다. 패소하더라도 최소한 저작권법에 대한 법원의 가장 최신 해석이 기록으로 남겠지 싶었다.


 재판 준비하는 나에게 어떤 이들은 ‘왜 사서 고생이냐’는 시선도 던졌지만, 나는 무모해도 소신껏 행동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날 도와줬던 변호사들도 진심으로 내가 싸우는 이유에 동의하며 응원해줬다. 그런데 변호사가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정보를 알려주더라도 내가 공부하고 조사하지 않으면 진도가 나갈 수 없었다. 소장을 작성하고 접수하는 것도 막막했지만, 내가 나 혼자 변호인석에 앉아 변론해야 하는 ‘재판’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직장 동료인 A 변호사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드라마 속에 나오는 재판 풍경과 현실에서의 재판 풍경이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었다. 핵심은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재판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래서 소장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드라마와 현실이 너무 달라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나름 비장한 각오로 준비했는데 말도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끝날 수 있다니 앞이 캄캄해졌다.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13.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변호사에게 도움받는 방법 2’는 ‘모의고사 풀 듯 여러 재판을 보자.’이다. 나는 평일 하루 시간 내서 종일 법원에서 재판을 방청했다. 소장 접수 전에 한 번, 재판 기일이 잡히고 두 번 총 3번 갔다. 막상 재판 준비하면서도 처음 법원에 가는 것은 낯설고 발걸음 무거운 일이었다.

     

 재판 방청을 가기 전에 유의해야 하는 사항이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이 있는데, 꼭 한 번 읽어보고 가길 권한다.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196523&efYd=20170804#0000     


 나는 민사사건으로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민사재판뿐만 아니라 형사사건 재판도 봤다. 손해배상액이 큰 사건도 봤고, 손해배상액이 적어서 1~2분에 끝나는 재판도 봤다. 보이스피싱, 카드 사기, 폭행 등 신문에서나 보던 사건의 재판을 연이어 보기도 했다. 건물을 옮겨 다니며 여러 사건을 본 이유는 판사, 검사, 변호사의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내 사건의 판결을 내리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어떻게 일하는지, 피고인 대기업의 변호를 맡게 될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재판을 기다리고 변론에 임하는지를 자세히 살폈다.


 수십 개의 재판을 보고 나니, 법정이 소우주같이 느껴졌다. 각각의 소우주를 담당하는 판사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원고와 피고의 운명은 달라졌다. 결국, 수십 개의 재판을 보고 난 후 든 생각은 ‘소신껏 준비하자.’였다. 내가 변호사가 아닌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내가 갑자기 카리스마 있게 변론하는 기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장과 입증자료는 사전에 제출되니, 재판에서는 담담하게 내 의견을 전달하자 생각했다.


 그리고 ‘재판부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지만, 판결을 내리는 재판부에는 1/n개 사건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저작권 인정’과 ‘피고의 저작권법 준수 의지’를 1, 2차로 구분해서 자료 제출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재판을 방청하며 든 생각이었다. 재판을 방청하며 재판장에 달린 프로젝터 화면으로 다른 사건의 소장과 입증자료를 다양하게 볼 수 있었는데, 어떤 형식이 가독성이 높고 재판부의 이해를 돕는데 수월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왜 진작 재판 방청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


 재판 방청 이후 변호사들에게 건네는 질문도 더욱 명료해졌다. 재판을 봤기 때문에 현실적인 질문을 할 수 있었고, 현실적인 답변을 구할 수 있었다. 변호사들도 내가 몸을 움직이며 준비하는 모습에 재미있어했다. 격려도 해 줬다. 나에게 변론 기회가 온다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연극 독백 연습하듯’ 이미지를 그려본다고 하니 웃기도 했다.


 추후 재판 과정을 이야기하며 쓰겠지만, 실제 재판에서 나는 별로 멋있지 않게 내 이야기를 덤덤하게 진술했다. 눈물이 날 때는 눈물을 닦기도 했고, 동의할 수 없는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재판에 임했다. 다만, 모의고사 보듯 여러 재판을 보았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소신껏 사건의 핵심을 전할 수 있었다.



 ※ 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브런치에 게시하는 이유는 저와 같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본 게시물을 보시고, 임의의 매체 및 저작권법 관련 강연 등에 활용하실 경우 반드시 사전 협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판결문은 SNS 등을 통해 공개하였으나, 본 브런치에 소개되는 내용은 제 개인의 정보가 있어 보다 정확하게 소개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전 협의 없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문의 : dearmother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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