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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Dec 28. 2018

S#7. “변호사에게 도움받는 방법 1”

 ‘방법을 물어보되 실행은 모두 직접 한다.’

11.

 셋째, 법과 조금이라도 친해지자. 저작권 소송 직접 진행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돈 내고 사건을 의뢰하는 것과 그 어떤 짧은 질문이든 돈 내지 않고 부탁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것이다. 예술가 혹은 창작자에게 재능기부 요청하는 것만큼이나 변호사들에게 법률상담은 자신의 노동이다.


 우선 현재 나는 관공서에서 근무하다 보니 주변에 변호사가 제법 많음을 먼저 밝힌다. 신기하게도 사건 발생 당시 종종 피맥을 함께하던 A도 변호사였고, 사무실 뒤로 쓰윽 지나가며 농담 나누는 B도 변호사였다. 우연히 지인 소개로 나간 자리에서 처음 만나 딱 한 번 함께 식사한 C와 D도 변호사 커플이었고, 맨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친한 친구 E도 변호사였다.


 주변에 이렇게 많은 변호사가 있음에도 저작권 전문 변호사가 없어서 정말 답답했다. 나의 상황을 안타깝게 본 대학 시절 교수님이 모교 이사진으로 계시는 저작권 전문 F 변호사님께 조언 구한 후 민사·형사를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알려주셨다. 참고로 뒤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저작권 사건은 민사사건과 형사사건 둘 다 가능하다. 나는 1심 재판 시작부터 ‘민사’로만 진행해야겠다 생각했는데, 1심 마지막 재판이 끝나고 피고인 대기업 측 변호사에게 “제가 왜 싸우는지 아시죠? 만약 항소하시면 2심은 변호사 선임해서 민사와 형사 모두 진행할 겁니다.”라고 밝혔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재판 이야기하며 쓰겠지만, 1심에서 내가 저작권 인정을 받은 상황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당시 F 변호사님은 ‘소액으로라도 민사에서 이기고, 형사로 진행하면 대기업은 대표이사가 나서야 하는 리스크가 발생하기 때문에 더욱 큰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조언을 준 분은 ‘내 친구의 엄마의 친구의 아들’인 G 변호사였다. G 변호사는 기업에서 저작권 전문 변호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매우 현실적으로 입증자료를 준비할 수 있도록 의견 주셨다. 이 분이 주신 조언은 뒤에서 좀 더 상세히 기술하겠다. 그 외에도 페이스북으로 사건을 접하고, 짧게라도 조언 주신 페이스북 친구 변호사들도 계셨다.


 즉, A~G로 이야기했지만, 내가 소송 진행하면서 짧은 자문이라도 구한 분까지 모두 합치면 대략 열 분 정도의 변호사가 도움을 주셨다. 이쯤 되면 ‘아는 변호사가 많아서 이겼나 보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맞는 말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사건은 판례가 없으나, 이 사건을 통해 시의성 있는 판례가 만들어지길 바란 젊은 변호사들의 선의가 모이고 모여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고’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좀 더 솔직하게는 ‘귀찮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변호사에게 도움받는 방법’의 핵심은 ‘방법을 물어보되 실행은 모두 직접 한다.’이다.


교보문고에 가서 저작권법과 관련된 책을 모두 찾았다. 그 중 <저작권법 강의> (오승종 저, 박영사)는 수시로 펼쳐서 공부하고 또 공부한 책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변호사들이 즐겨 찾는 사이트 중에 ‘로앤비’라는 유료 서비스가 있다. 개인회원 이용료는 1개월에 99,000원이다. 나는 로앤비의 전체적인 서비스를 모두 알지 못하고,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판례 검색을 이곳에서 했다. 판례란 ‘재판에 있어서의 선례’인데, 재판부는 앞서 있었던 어떤 사건과 유사한 유형의 사건이 발생하여 소송이 진행될 때 판례를 참고하여 판결을 내린다. 그래서 소송 진행에 있어 나에게 유리한 판례를 찾는 것은 승패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내 사건이 손해배상액도 크지 않고, 얼핏 보면 ‘뭐 저런 거로 싸우나?’ 싶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건이라고 이야기되었던 것은 ‘승소한 판례가 없기 때문’이었다.


 앞서 쓴 글에서도 ‘판례’라는 말을 계속 썼는데, ‘판례’의 의미와 기능, 그리고 어떻게 찾으면 되는지 사건 발생 전에는 전혀 몰랐다. 내가 원고인지, 피고인지는 물론 내 사건이 형사인지 민사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 이 브런치를 쓰는 이유도 사건 발생하고 막막했을 때, 창작자 혹은 저작권자 입장에서 쓴 이런 글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예고와 예대를 졸업했지만 조언을 줄 수 있는 선배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 게다가 실은 한겨레신문에 보도되고 어느 정도 화가 풀린 상황이라 소송까지 진행하기 귀찮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포기하기에는 주변에 선의를 발휘하는 변호사가 너무 많았고,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이 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귀인들이 건네는 정보가 하나씩 더해졌다. 결국, 그들이 건네는 선의를 모으고 모아가며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려고 애썼다.


소송을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이런 문장들을 읽게 되었다. 내 사건은 위기이기도 했지만, 판례를 만들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선의를 모은 방법은 무엇일까. ‘귀찮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내 친구 E에게 ‘판례를 찾아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판례 찾는 방법을 알려달라. 그러면 내가 판례를 찾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친구 E가 알려준 게 위에서 이야기한 ‘로앤비’라는 서비스였다. 이게 핵심이다. 변호사는 이미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사건으로 인해 ‘너무너무너무’ 바쁘고, 선의를 발휘하고 싶어도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 보니 종종 말을 아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 친구만 봐도 매일 늦은 밤까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데, 거기에 대고 ‘친구니까’ 무작정 도와달라고, 판례를 찾아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도움 요청하는 이가 좀 더 능동적으로 사건에 임할 때 선의를 가진 변호사는 ‘핵심이 될 수 있는 정보’를 건네곤 한다. 물론 이게 사건에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결과에 따른 책임은 변호사가 아니라, 당사자가 져야 한다.


 다만, 변호사를 선임했더라도 저작권자인 당사자가 판례를 직접 찾아보는 것은 꽤 유용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의 경우 내가 활용할 수 있는 판례가 적기도 했지만, 판례 찾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주장을 펼칠지도 구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법의 사고와 판단’을 살짝이나마 이해하는 기회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규칙인 법에 대해 이해할 기회라고 생각하며 차근차근 검색하고, 정리했다.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임해야 지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호사들에게 질문하고 ‘씹히더라도’ 마음 상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내가 돈을 주고 사건을 맡긴 것이 아니므로 재촉할 명분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왜 선의를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흔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때, 자신의 곤란한 입장만을 생각하다 사람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곤 하다. 재판에서 질 때 지더라도 사람을 잃고 싶진 않았다. 내가 바쁠 때 누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청한다면 얼마나 귀찮을까 자주 생각했다. 그들에게 질문하되 대답이 없을 수도 있음을 가정했고, 나는 나대로 자료를 찾고 재판을 준비했다. 특히 다양한 재판을 여러 번 방청했는데, 이건 변호사 없이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소송 준비하는 분이라면 직접 재판 방청해 보는 것도 소장 작성 및 변론 준비, 혹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시너지 내는 데 있어 도움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해 보도록 하겠다.



 ※ 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브런치에 게시하는 이유는 저와 같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본 게시물을 보시고, 임의의 매체 및 저작권법 관련 강연 등에 활용하실 경우 반드시 사전 협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판결문은 SNS 등을 통해 공개하였으나, 본 브런치에 소개되는 내용은 제 개인의 정보가 있어 보다 정확하게 소개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전 협의 없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문의 : dearmother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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