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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Jan 06. 2019

S#14. “공식적으로 자신의 정확한 입장을 밝히자.”

분쟁에서 소송만이 답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사회적 자본의 낭비다.

19.

 소송하기 전에 분쟁의 대상이 될 상대방과의 충분한 입장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나와 다른 견해를 보이는 대상과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누기란 쉽지 않겠지만, 소송만이 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즉, 소송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내 사건 첫 재판에서도 담당 판사님이 “원고와 피고가 합의하기 위한 노력은 없었는지?”를 물어보셨다. 이때 피고인 대기업의 변호인은 “합의하려고 했으나, 원고가 과도한 손해배상액을 요구했다.”라고 했고, 원고인 나는 “저작권 침해 인정을 하지 않으면서 돈을 받을 수 없다. 돈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했다. 자신들이 생각한 금액보다 큰 손해배상액을 제시한 것에 대해 피고 측 변호인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에 대해 흥분하기보다 ‘저작권 침해 인정이 중요하다.’는 내 입장으로 대응했다.


 재판부의 ‘저작권 인정 여부’를 얻기 위한 소송이었다. 재판부가 ‘저작물 인정 한다면’ 원고인 나에게 허락 구하지 않고 해당 저작물을 사용한 것이 ‘저작권 침해 인정’으로 될 수 있었다. 손해배상액 금액은 제출된 입증자료를 보고 재판부가 결정할 것이었다. 소장접수 전, 이미 원고인 나와 피고인 대기업은 서로 입장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용증명’을 통해 공식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전했기 때문이다.



내가 피고인 대기업에게 보낸 내용증명. 3부를 출력해서 우체국에 가지고 가면 된다.



 흔히 ‘내용증명’을 받았다고 하면 엄청난 큰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재판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은 ‘내용증명을 통해 상대방의 공식적인 입장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는 것이고, 나 역시 ‘내용증명’을 통해 ‘나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인지하고, 합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지 아닌지 파악하면 된다. 서로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다면 그다음에 소송을 준비해도 늦지 않다.



우체국 홈페이지에서 '내용증명'을 검색하면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내용증명’은 법원이 아니라 ‘우체국이 하는 일’이다. 우체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내용증명에 관해 설명되어 있고,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FAQ)에 대해서도 별도로 정리되어 있다. 참고로 나는 내용증명 3부를 출력하여 직장에서 가까운 광화문우체국에 방문해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우체국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도 접수할 수 있다.



내용증명과 관련하여 '자주하는 질문'이 정리되어 있어 작성하기 전 미리 살펴보기 좋다.


 나는 내용증명을 작성할 때 <지적재산권 침해 사과 및 사용료 지급 요청의 건>이라고 제목을 썼다. 내가 문제 삼는 내용과 해당 문제에 대해 요청하는 내용을 상대방이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내용증명 본문에는 ① 내 저작물이 창작되어 발표된 시기와 구체적인 내용, ② 내가 상대방이 저작권 침해를 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③ 상대방의 행위가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될 수 있는지 등을 시간순으로 육하원칙에 유의하여 썼다. 그리고 내용증명 작성 뒷면에 ④ 해당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이미지 자료를 별도로 첨부했다.


 내용증명 발송 사실만으로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내용증명 효과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을 이야기 하나, 그 무엇보다 내가 나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분명히 밝혔다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우체국 홈페이지에 '내용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안내, 인터넷 내용증명의 특징, 참고할 수 있는 문서양식이 제공되어 있다.



 내용증명은 본인이 직접 쓸 수도 있고 변호사나 법무사가 작성할 수도 있다. 다만, 타인이 작성하기 전에 본인이 직접 자신의 입장을 글로 써보길 권한다. 문서 작업이 익숙하지 않다면 자필로라도 쓰면서 시간순으로 육하원칙에 유의해 사건을 정리하면 된다. 변호사나 법무사가 작성하기 위해서도 결국 당사자가 자신의 입장을 상세하게 전달하는 것은 필요하다. 자신의 입장을 글로 써보면 내용증명을 작성하는 이의 편의를 도울 뿐만 아니라, 나중에 법률전문가가 작성한 내용증명을 보면서도 ‘당사자’로서 자신이 쓴 자기 뜻과의 차이를 질문으로 건네면서 ‘법의 사고’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참고로 나의 경우 ‘우체국을 통해 발송한 내용증명’과 ‘법원에 접수한 소장’이 두 가지 차이가 있었다.


 첫째, 내용증명에는 피고에게 ‘사과’와 함께 사용료를 요청했으나, 실제 소송에서는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저작권자로서 마음이 상해서 사과를 꼭 받고 싶었으나, 민사사건 재판은 결국 판결 이후의 책임이 ‘돈의 지급 여부’로 결정된다.


 둘째, 피고 측 변호인이 ‘원고가 과도한 금액을 요구했다’라고 했는데 당시 나는 ‘피고 측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근거로 경제지 5개 매체에 보도된 기사’의 홍보효과를 홍보대행사 2곳에서 의견 받아 평균가로 손해배상액 요청했다. 즉,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통상 홍보업계에서 업무 편의 위해 사용되는 견적을 이용했다. 다만, 소장에는 ‘저작권법에 근거하여’ 손해배상액을 요구했다.


 피고 측 대기업에 내용증명을 보낼 당시, 무척이나 긴장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니 그럴 필요 없었다. 결국 나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한 것, 상황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인지하려고 노력한 시작일 뿐이었다. 만약, 지금 소송을 고민하고 있다면, 재판을 결심하기 전에 ‘내용증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우선이지 싶다.


 ※ 본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브런치에 게시하는 이유는 저와 같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본 게시물을 보시고, 임의의 매체 및 저작권법 관련 강연 등에 활용하실 경우 반드시 사전 협의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판결문은 SNS 등을 통해 공개하였으나, 본 브런치에 소개되는 내용은 제 개인의 정보가 있어 보다 정확하게 소개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전 협의 없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문의 : dearmother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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