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JEONG Feb 07. 2024

감정은 나다

어떠한 감정이든 잘못되지 않았다.

아내가 갑작스레 온갖 불만들을 쏟아냈다.


"도대체, 강의 마케팅을 하는데 왜 강사더러 홍보 영상을 찍어서 올려야 한다는 거야?"


아내는 온라인에서 일반인들에게 낭독을 강의하는 강사다. 작년 늦가을쯤, 그동안 일을 해 오던 곳이 다른 A회사로 낭독 수업에 대한 사업권을 넘겼는데, A회사와 그 이전에 일하던 곳의 스타일과 사업의 목적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강의개설이 진행되어 충돌이 생긴 것이다.


사업 주체가 달라지면 으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하루빨리, 그냥 하던 방식으로 강의 오픈을 진행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강사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강의만 잘하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나에게 묻는다. 


"내가 이렇게 불편한 마음을 가져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강의 기회가 생기는 것만 해도 좋은 일이기는 한데 굉장히 불편하고, 끌려다니는 것 같아서 화가 나는 건지 서운한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짜증만 나. 나 이래도 되는 걸까? 강하게 거부한다고 이야기할까? 이러다 강의도 못하게 되는 거 아냐?"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양쪽의 입장이 다 이해가 갔다. 사업의 성공을 위한 측면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회사의 입장과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를 생각하는 강사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 된 입장에서 아내의 생각을 두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으나,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수입을 고려해야 할 때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맞는 걸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어쨌든, 어느 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뒤로하고, 아내의 마음을 먼저 다독이는 것이 중요할 듯싶었다.


감정은 판단과 평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내 존재의 상태에 대한 자연스러운 신호다. 좋은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내 감정은 항상 옳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중에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내에게 그런 감정이 생기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말해야 했다. 상대를 미워하는 감정, 한대라도 치고 싶은 감정이 드는 건 인간이기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감정이 외부로 표출되냐의 여부, 어떻게 표출되느냐의 여부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우리는 흔히 모른 척하기도 그렇고, 일종의 책임감이 발동돼 충고나 조언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잘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경우가 훨씬 많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안다. 더욱이 화가 잔뜩 나 있는 사람에게 충고를 하고 조언을 하게 되면 이 때문에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 순간에는 잠시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마음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지혜도 필요한 것 같다. 어른이건 갓난 아기건 거침없이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는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일단 상대방이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할 듯싶다. 


아내에게도 역시 그것이 필요했다.


일단 아내의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기만 했다. 그래야만 아내가 자기 맘속에 있는 감정을 살피고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그럼으로써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감정을 갖게 된 것이 잘못되지 않았으며 이를 확인하고 다음의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했다. 그 감정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날은 그렇게 폭풍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일단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줘서 고마웠어. 난 낭독을 통해서 내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 돈을 많이 벌면 좋지만 우선 내가 즐겁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이 들어. 자원봉사 활동이라도 좋으니 같이 찾아봐 줄 수 있어?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다행이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니 다행이고, 아내에게 남편으로써 신뢰를 주었으니 다행이었다. 


역시나 사람은 언제나 나이에 상관없이 '내 편'이 있다는 게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한 순간이다.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잘못된 길을 갈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회사와의 갈등을 조금이나마 방지할 수 있었다. 정서적인 '내 편'이 되어준 것 같아 기뻤다.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데 '너는 옳다'라고 지지해 주면 상대가 오판하지 않을까. 자만심에 빠져 결국 잘못되지 않을까. 쓴 약처럼 따끔한 말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게 어른다운 걱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니다. 그건 사람을 어리석고 표피적인 존재로만 상정하는 틀에 박힌 생각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오만한 시선이다. 

라고 정혜신 박사는 말한다. 


감정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감정을 갖게 된 순간의 내가 진정 '나'다.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먼저 받아들이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충고나 조언을 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안정을 찾았을 때 조언을 하는 기다림과 인내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사람이 신뢰를 쌓아가고 믿음이 생기는 건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기 때문이라 믿는다. 


아내를 위해 알고 있는 한 사회봉사 단체에 재능기부가 가능한지를 물었다. 곧 아내와 함께 가서 미팅을 하기로 했다. 물론 아내는 기뻐한다.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남편으로써 뿌듯함도 생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