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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Feb 19. 2024

남편에게는 줄타기 기술이 필요하다

아내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남의 편 되기.

첫 아이를 낳은 지 15년이 된 지금.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저렇게 했으면 어땠을까를 떠올려 본다. 각자의 가정환경과 생각이 너무나 다양하기에 일반화시키기 어렵고, 이상적인 모습만 그려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다.


그러나 초보 아빠로 살아온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전통적인 관념은 좀 없어져야 할 것들도 있을 듯하고, 소통과 공감이 강조되는 시기인지라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좀 남겨볼까 한다.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한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얼굴의 주름도 펴지고 손가락도 꼬물꼬물 움직이며 생명으로서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보였다. 배고플 땐 울고 기저귀가 불편하면 울고 그렇게 자기의 의사표현을 했다. 2주간의 산후조리원 생활은 엄마가 된 아내에게는 그동안의 몸고생 마음고생을 털고 몸을 회복하면서 본격적인 엄마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들을 처음 안았다. 10년 전 조카를 안아보고 함께 지냈던 경험은 있었기에 별 걱정이 없었지만, 막상 이제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된 '내 아기'를 안아보니 행여나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빙하기에 몸이 얼어버린 매머드처럼 어깨부터 온몸이 굳어버렸다. 아내는 나를 보며 깔깔대며 웃는다.


첫 아이... 내 아가...


오른손 검지를 펴서 아이의 얼굴의 모양대로 쓰다듬었다. 손을 펴서 아이의 양손과 양 발을 살짝 쥐어본다. 두 손과 두 발이 내 손안에 고스란히 포개 들어온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옷주머니 속으로 넣고 다니고 싶어 진다. 잠든 아기가 불편할까 봐 얼른 침대에 눕히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것도 잠시 행여나 숨은 쉬고 있는 건지 코 앞에 손가락도 대보고 아이의 얼굴 가까이 귀를 대고 숨소리도 들어본다. 다행히 쌔액쌔액 숨은 잘 쉬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데리고 와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됐다. 그 후 어느 날의 일이다. 그날따라 회사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하루 온종일 회의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붙잡고 정말 지친 몸으로 퇴근해 집에 들어와 바로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나는 하루 종일 애 안고 얼래고 달래느라 진이 다 빠져 있어. 손목도 아프고 밤새 잠도 못 자서 정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 집에 왔으면 아기 안고 봐야 할 거 아냐! 너만 힘들어? 나 혼자 아기 보라고 결혼하고 애 낳았어?!!!


아내의 폭풍 같은 외침이 들렸다. 아내의 모습을 보니 연애할 때의 아름다움도, 임신하고 아기를 낳아 며칠 동안 웃으며 기뻐하던 아내의 모습은 없었다. 아수라 백작 마냥 분노의 눈을 하고 있지만, 아기에게 행여나 이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두 얼굴의 아내만 보였다. 손목에는 이미 테이핑을 하고, 손목 보호대를 찬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온갖 짜증이 났지만 여기서 내가 아내에게 내 짜증을 표해낸다 한들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는 걸 안다. 아내가 쥐어준 젖병을 입에 물리고 나서 보니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그러다가 TV에 시선이 옮겨갔는데 줄타기 공연하는 모습이 보였다. 높은 외줄에 올라가 휘청휘청 대며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감탄을 하는 패널들의 모습도 보인다.


"아...." 하며 한마디의 감탄사가 내 머릿속을 때린다.


줄타기는 줄광대가 줄 아래에 어릿광대와 삼현육각 악사를 대동하고 음악 반주에 맞추어 줄 위에서 다채로운 기예․재담․가요를 연행(演行)한다. 그 속에는 희로애락이 존재한다. 인생 속에 수많은 희로애락이 존재하는 것처럼 새로운 임무인 육아 역시 마찬가지다.


육아를 정의하는 말 중에 "고통 속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기를 낳아 키운다는 건 정말 힘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육아라는 것이 아내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다는 건 부부간의 일이며, 아기의 친가와 외가라는 집안의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남편들에게는 줄타기 기술이 필요해진다. 심신이 지친 아내를 보듬어 안고, 아기를 함께 돌보며, 시댁/친정 사이의 중간 역할을 잘 유지하면서, 회사 일도 해야 하는 외롭지만 혼신을 다하는 줄타기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첫 번째 줄타기 기술은 남편이 되는 기술. 즉, '남의 편'이 되는 기술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댁 식구, 친정 식구, 친구들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아기는 지금 뭐 하고 있어?"

"아기는 밥 잘 먹어? 아픈 곳은 없지?"

"아기 보고 싶은데 언제 볼 수 있어?


대부분은 아기가 주인공이 된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기가 잘 커"라며 위로의 말을 전하는 이도 있지만 어쨌든 아기가 우선이다. 아기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온갖 잔소리도 들려올 때 남편은 이때만큼은 '남의 편'이 되어 아내의 편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아기가 우선이 되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아내는 서운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내 이름은 잃어버리고 누구의 엄마로 역할이 바뀌는 처음 맞이하는 순간이며, 이에 순응한다 해도 '나'는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무리 부모님이 물심양면으로 육아를 도와준다 한들 아기에 관한 결정과 육아의 실행자는 부부이다. 이 시기만큼이라도 남편보다 더 직접 살을 맞대며 지내는 시간이 많은 아내의 의견과 결정에 대해 지지하고 따라주는 역할 수행이 절실하다. 이 과정을 잘 소화해 내지 못하면 고부간의 갈등부터 시작해 부부간의 갈등으로 번지는 일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이와 같은 지나친 간섭이 일어나는 상황이 있다면 아내의 정체성을 지키고, 조언이 아닌 간섭으로 울타리를 넘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어서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기에, 부부간에 상호 합의된 경계선을 마련해 두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래야만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부부가 바라는 대로 육아를 꾸려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기를 보고 싶어 하는 양가 부모님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매주/매일 찾아오거나 데리고 오라는 요청은 아내나 아기에게도 힘들 수 있기에 일정 부분 부모님의 남의 편이 되어 육아의 울타리를 지켜야 할 필요성도 있다. 아내가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도록 존중하고 응원 단장의 역할도 해야 한다.



두 번째 기술은 직장생활과 육아 사이에서의 줄타기 기술이다.


몇 년 전 회사 후배가 첫 아이를 낳았다. 어느 날 그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이사님은 첫 아이 낳았을 때 어떻게 하셨어요? 힘든 거가 뭐예요?"

"당분간... 네 인생에 퇴근이라는 말이 없을 거야..."


회사에 출근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나면 집으로 출근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집으로 출근하면 얼른 씻고 나서 하루 온종일 아기와 지냈던 아내를 잠시라도 벗어나게 해야 하는 업무의 수행이 필요하다. 물론 회사에서 하루종일 시달리며 일하다가 또 아기를 안고 달래며 지내야 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아내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첫 아이를 낳고서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둘째를 낳고서는 체력의 부침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의 부담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힘들지만 그 속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 자체로서의 행복을 알아갔다. 둘째를 가진 아빠가 되는 것 또한 초보이기에 오늘 하루도 감사함과 또 다른 걱정 사이에서 살아간다. 그럼에도 버텨나갈 수 있는 이유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가 함께 한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며 부모로 호칭해 주고 받아들여주는 아이가 있기에 기꺼이 아빠라는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많은 경우의 남편들은 그들의 역할이 돈을 잘 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잘 버는 거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먼저 알았으면 한다. 무조건 희생하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아내를 좀 더 이해하고, 아내의 육아 고통을 함께 견뎌내 주었으면 한다. 처음 아빠가 된 것처럼 아내 역시 처음으로 엄마가 된 초보 엄마다. 내 뱃속을 채우기 이전에 아기가 배고프지는 않을까를 먼저 걱정하고,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해 아기를 온몸으로 지켜내며 남편 없이 하루 종일 사력을 다해 아기를 돌보는데 어찌 힘들지 않을까. 왜 저걸 못 견뎌내는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아내는 남편들보다 상대적으로 체력도 약하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체력이 부족하면 정신적으로도 영향이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


정말 최소한이라도, 새벽에 한 번쯤은 아이에게 젖병 한번 물려보기도 하고, 주말에는 유모차를 밀고 아이와 함께 산책이라도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아내가 육아로 힘듦을 이야기할 때 판단하지 말고, 충고나 조언도 하지 말고 일단 말없이 그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 역시 사람이기에 무척이나 어려웠고 많이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라도 해야만 아내도 건강해지고 부부사이도 원만해진다는 걸 알았다.


세 번째 기술은 전통적인 아버지와 젊은 아빠 사이에서의 줄타기 기술이다.


아빠라는 역할은 많은 부분에서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를 보고 배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우리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자녀들과의 살가운 교감이 필요하다는 걸 배우지는 못했다. 배우지 못하다 보니 언제나 엄격하고 준엄한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그저 사회가 그랬을 뿐이다. 그런 우리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아왔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내가 아는 아빠의 역할은 무언가 중심을 잡고 끌어가야 하는 모습인데, 요즘은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이 선호되니 그 중간에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거나 아기를 낳아 길러본 사람이라면 아이와의 교감하는 시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를 안고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함과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란 것을 안다. 그러면서 아내를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도 더욱 생겨나며, 아기와의 교감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간다.


아기는 부모가 힘들게 일하고 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저 불편하면 울고, 배고프면 울 뿐이다. 그리고 즐겁게 해 주면 방긋 웃는 것으로 '나'를 표현한다. 엄마 젖을 물고 빠는 것으로 채워지는 충족감, 불편한 기저귀를 갈아주었을 때 느껴지는 쾌적함 등이 채워지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 까지도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엄마와의 그러한 교감도 중요하지만 아빠와의 교감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와 대화하기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은 데, 어쩌면 아기 시절부터 아빠와 교감이 적을 수밖에 없던 것에 원인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도 든다. 사실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육아를 전담하는 건 엄마의 역할이라고 사회적으로 정해졌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요즘의 부부사이에는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같이 키워야 하고 같이 돌봐야 한다. 아이와 함께 뛰어노는 아빠들의 모습이 좋고, 어느 식당에서 아빠와 아이 둘이서 식사하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지금의 남편은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다.


아내들, 엄마들에게도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남편들, 아빠들도 그 역할을 충분히 감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다만, 엄마보다는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 공동 육아를 함께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상대적으로 서툴다. 서툴러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고 그러기에 맘에 안 드는 행동도 많이 한다.


성별의 차이는 뒤로 하더라도 전통적인 관념도 여전히 존재하며 사회생활 속에서 쌓인 온갖 것들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는 것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웃으며 반겨주길 바라고 아기가 "아빠 ~" 하며 달려와 안겨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강하다.


어쩌면 아내, 엄마에게는 잠깐의 순간이라 하더라도 배우자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줄타기 기술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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