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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Feb 29. 2024

아내가 엄마가 되는 순간

나가 아닌 누구의 엄마로 살아간다.

첫 아이를 낳은 순간 아내는 엄마가 되었다. 아니다. 아내는 뱃속에 아이를 가진 순간 엄마가 되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아내는 모든 순간순간을 아이와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눴다. "복아~우리는 지금 차를 타고 여행을 가고 있어. 엄마랑 아빠는 여행을 참 좋아해...(중략) 엄마는 여행을 가서 우리 복이에게 줄 맛있는 음식을 먹을 거야... 엄마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엄마는~"이라며 말을 시작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의 아빠와 엄마의 역할은 명확하게 구분된다. 아빠는 밖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며,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아빠가 되더라도 직장에 나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눕는 기존의 일상 변화는 크지 않다. 물론 집에 있을 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달라지기는 한다. 반면 엄마로서의 변화는 그 이전에 비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하루종일 남편이 올 때까지 스스로 이동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밥을 떠먹기도 불가능한 아이를 안고 먹이고, 안아 재우고, 씻기고 하며 나를 살피고 돌볼 여유 따위는 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더 명확한 구분이 있었던 것에 비해 요즘의 젊은 부부들은 우리 세대보다 훨씬 더 함께 육아를 하는 모습은 분명 달라진 현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첫 아이를 낳고, 둘째를 낳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내는 엄마로서의 변화를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당하게 마주했다. 엄마는 희생의 아이콘이라고 하던가. 아이들의 식사와 아이들의 옷은 커가는 시기마다 계절의 변화마다 철저하게 챙기고 또 챙겼다. 무엇보다 엄마로서 아이들의 마음과 정신이 올바르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들의 정서에 관해서는 그 무엇보다 세심하고 살뜰하게 관심을 두었다. 그 가운데에는 '책'이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걸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집안 거실 바닥은 온통 책으로 가득했다. 정리되지도 않았으며 그냥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저러다 밟기라도 하면 찢어지기라도 할까 걱정돼서 펼쳐져있는 책을 덮기라도 하면 아내는 말렸다. 

그냥 둬요. 책은 보라고 있는 거지 덮어놓고 있는 장식용은 아니잖아요. 하루종일 이리저리 책 넘기면서 손가락으로 이거 보라고 하는 거 좋아해요.


아내의 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정리정돈/깔끔한 모습을 좋아하는 나지만 그 말에 뭐라 대꾸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가 좋아한다는데... 그리고, 아내는 분명 아빠인 나보다 몇 수를 훨씬 뛰어넘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그 덕분인지 두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어휘력이 뛰어났다. 말을 빨리하고 늦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의 의사표현을 나름대로 명확하게 할 수 있고, 어른들의 말을 알아듣는 이해력과 소화력도 꾀나 풍부했다. 어려운 말을 쓰는 건 분명 아닌데 그 뜻의 전달이 명확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엄마와 아빠가 매일 저녁 책을 읽어주다 보니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대화도 많이 나누게 되고,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하는 교감의 시간이 많았다. 지금도 그 영향이 고스란히 이어져 온다. 물론 아이들이 청소년 시기를 보내는 중이라 어떤 변화가 올진 예측할 수는 없지만, 큰 아이가 올해 중학교 3학년임에도 아직까지 사춘기를 맞이한 외계인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TV를 좋아하긴 하나 아직까지도 거실에 널려져 있는 책을 주워 들고 읽고, 가끔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오기도 한다. 책을 읽고 재밌다 재미없다 표현도 한다. 스스로 답답하다고 느끼면 혼자 나가 안양천까지 달리기를 하고 오거나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제어할 줄도 안다.  둘째 역시 형과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해서 더 자주 읽고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레고 블록으로 장면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아이들의 사춘기 시절에 대한 걱정은 존재한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은지라 행여나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된다면 나와 아내는 그 시기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가득하다. 정말 딴 세상 사는 사람으로 간주해야 하는 걸까.... 아직까지는 그러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 다행스럽다. 


그에 대한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엄마다. 책 육아 덕분이고, 함께 책을 읽으며 교감을 나눌 수 있던 덕이다. TV를 보더라도 함께 보는 습관이 있다. 예능을 보고 영화를 함께 보며 서로 느낀 것들을 나누고, 유행어를 함께 따라 하며 함께 웃는다. 전적으로 아내의 희생과 노력 덕택이다. 아내가 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기꺼이 엄마로서의 변화를 맞아들이지 않았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저 옆에서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다. 


그랬던 아내에게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잘 나가는 직장인에서 아내로 변화했고, 두 아이의 엄마로 변화했다. 그랬던 아내가 자신의 모습을 가꿔가는 중이다. 아이들이 제법 성장하다 보니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아내는 엄마의 변화는 일상으로 맞아들이며 유지하되, 또 하나의 역할을 추가했다. 북 내레이터와 낭독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몇몇 출판사에서는 홍보용으로 쓸 수 있도록 책을 보내주며 일부 구간을 낭독하고 영상으로 제작해 보내달라는 요청을 보내온다. 부천에 있는 어느 도서관에서 자원봉사 하면서 오디오북 녹음을 하기도 했다. 수강생을 모아 책 낭독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나와 아이들에게는 아내의 그런 시간은 오롯이 아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시간으로 인정한다. 강의를 하는 시간에는 발걸음도 조용 조용, 말 크기도 주의한다. 아이들과 엄마와의 교감이 없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면 힘든 순간이기에 아이들에게도 아빠로서 감사함을 느낀다. 무엇보다 아내가 즐거워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걸 보는 자체만으로도 흐뭇하다.


어떤 사람이든 그동안 지내왔던 역할이 변화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건 쉽지 않다. 더욱이 엄마로서의 변화는 수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감내할 수 있어야 하는 자리라고 믿는다. 제아무리 아빠가 밖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고 버텨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존심 하나만큼은 지키고자 하는 욕심정도는 갖는다. 그러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자존심은 한낱 '그따위 것'이 된다. 그것을 버리고서라도 내 아이가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존중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건강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멀리 바라보며 어떻게 그런 사람으로 성장시킬지 남편들 보단 수 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래서 정말 최소한이라도 그런 엄마로서의 변화와 정성 만큼은 존중하고 박수를 보내야 함이 마땅하다 믿는다.


오늘도 새 생명이 이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태어난다. 그 과정까지 역할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내하고자 다짐하는 엄마들이 존재한다. 그런 엄마들의 마음에 진심을 담아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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