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더라.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딩크족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거웠다.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만의 생활을 즐기며 사는 부부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현상이라 본다. 내 주변에도 자의에 의한 선택 또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여럿 보았기에 낯설지는 않다.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 이면엔 분명 사회적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기 힘든 환경임은 누구라도 아는 바다. 그리고 실제 아이를 키우며 그 현실에 충분히 공감되고 납득이 되는 부분이 많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결국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가치가 있길래 사람은 아이를 낳는 것일까? 이 어려운 주제를 단순히 평준화시켜 제시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에 그렇다. 나의 경우는 사회적인 틀이 결혼하면 으레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명제를 따르기도 했고, 나와 아내가 아기를 낳아 가족으로 함께 살고픈 의지가 있었을 뿐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두 아들을 낳고 이제서야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두 아들이 나에게 주는 가치는 무한하다. 아이들을 맞이하며 느껴본 가치들은 대략 이러한 것들이다.
첫 번째는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이 말이 정확한 표현일지는 모르겠다.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삶을 살아오던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으로 맺어지는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기적임에 틀림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이유로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못 갖는 사람도 넘쳐나는데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한 기적의 체험이다.
두 번째는, 가족이라는 이름을 오래 지속하게 해주는 구심점이었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떠나 그저 따뜻한 곳이고 힘들 때면 그 안에서 안정감을 갖게 해주는 곳이라 믿는다. 사회 어느 집단보다 끈끈하고 질기다. 스파이더맨 거미줄이 튼튼하고 질기다 한들 가족의 그것만큼 강할까 싶다. 그 중심엔 부부가 있지만 부부 사이에는 아기가 있다. 아기 존재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대화가 이루어지고, 보고만 있어도 내가 이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이 감동으로 밀려온다. 아기는 내가 밖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건, 어떤 사고를 치고 마음을 상해하던 상관하지 않는다.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무한한 믿음과 사랑을 던져준다. 그러니 어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미워할 수 있을까.
큰 아들이 세 살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며칠 동안 아내와 나는 냉전 중이었다. 그날도 역시나 서로의 심기를 건드렸고 서로 큰 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내가 "이럴 거면 갈라서!!! 000아, 엄마가 아빠랑 살고 싶지 않데" 라며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이 말을 들은 큰아이는 표정이 굳어지며 발걸음을 옮기더니 가족사진을 들고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놀라 아차 싶어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큰아이는 사진에 있는 자기 엄마와 아빠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런 말을 했다.
나 계속계속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고 싶은데....
라며 울먹였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다 알아듣는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아이를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가뜩이나 큰 소리에 예민한 아이가 엄마 아빠 소리 지르며 싸우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지 못한다니 얼마나 괴롭고 상처를 입었을까....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빠가 잘못했어. 우리 가족 절대 헤어지지 않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거야. 아빠가 너무너무 미안해... 화를 못 참아서 아빠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어. 아빠 진짜 마음은 절대 그렇지 않아..." 하염없이 울었다. 아내는 뒤에서 나를 보며 몇 마디 쏟아내긴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 역시 함께 울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는 다투더라도 오래가지 않으며 소리 지르는 일은 없다. 아마 아이가 부부 사이에 없었더라면 어쩌면 정말 갈라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바램'과 '소망'이 생긴 것이다. 하는 일이 교육업이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도 관심이 간다. 아이들이 더 밝은 세상에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조금이라도 도움 될까 싶어 우연히 들어온 강의에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느끼는 바를 이야기했다. 반응은 좋았다. 진정성이 느껴졌고 준비를 많이 해오셔서 배운 게 참 많다며 고마워하셨다. 준비하는 과정에 나를 돌아보며 자료를 준비하고 나 역시 배운 게 많았다. 내 생각에 동의해주는 분들이 있다는걸 느끼며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는걸 느껴본 소중한 순간이었다. 이 일에 내 모든걸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망하게 됐다. 그리고 정말 심각하게 고민 중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 두 아들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긴 하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에 간섭하며 내 뜻대로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길 소망한다. 돈이 많다 하더라도 잔디깎이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두 아들에게 강조하는 건 어떤 것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또한 책임감 있는 사람,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것뿐이다. 이것이 세상의 수많은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한 가장 기본이자 상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 기본도 안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기본만 제대로 지킨다면 분명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내가 못했던걸 대신 이루어주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은 소망이다.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아내, 교수가 되고 싶었던 내가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그걸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인생이고 인격체로써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어떤 직업을 꿈으로 갖기보단 '세상에 무엇을 주는 사람'으로 꿈을 갖기를 바란다. 세상은 변하지만 1000년이 지나도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은 필요하다 믿기 때문이다.
'아기'라는 기적을 만나 15년을 살아왔다. 부부로서 17년 아빠로서 15년의 인생은 분명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자산이고 축복이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쌓여가겠지만 초보 아빠로 살아오며 아빠로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마음가짐과 인생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아기가 없었다면, 두 아들이 없었다면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일일 것이다.
아침에 일이 있어 두 아들이 학교 등교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문득 두 녀석이 나란히 공원을 산책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둘이 나눴던 대화 처럼 세월이 흘러도 서로를 의지하고 응원하며 씩씩하게 걸어가 주기를...그 무엇보다 두손 모아 바라고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