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이 자라 스스로 독립하는 날을 꿈꾸며
사람과 동물을 비교하고 동일선상에 놓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사람이건 동물이건 유독 아기 시절에는 '귀엽다'라는 말로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작고 작은 생명체가 꼬물꼬물 하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피곤해도 그 모습을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뭘 해도 이쁘고, 똥을 싸도 이쁘다.
아이들이 처음 고기를 입에 대는 순간이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처음 먹어보는 맛과 식감에 허겁지겁 먹고 빨리 또 먹여달라며 보채던 순간이 떠오른다. 뭘 해도 이쁜 내 아이가 내가 만든 음식을 그토록 맛있게 먹는다니 이와 같은 기쁨들이 또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랬던 두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지인들이 나를 보며 인사말로 "아이들 잘 크지?"라고 물어보면 "무섭도록 큽니다"라고 답한다.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시켜 먹을 때면 두 아이들은 다른 건 일절 먹지 않고 오로지 고기만 먹는다. 밥이건 냉면이건 쳐다보지도 않는다. 억지로 상추도 좀 먹고 반찬도 좀 먹으라고 하지 않는 한 말이다. 어렸을 적에는 돼지갈비도 먹고 이것저것 먹었는데 이젠 밖에서는 돼지갈비를 먹을 엄두도 안 난다. 많이 먹기도 하지만 돼지갈비가 먹기 좋게 익을 때까지 애처롭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서다. "아.. 왜 빨리 안 익어..." 그래서 우리 집은 차돌박이로 변경했다. 10초도 안돼 익으니 이 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다. 돼지갈비를 먹을 때면 아이들 먼저 다 먹이고 나서야 나와 아내는 밥 한 공기와 된장찌개를 곁들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자기 배를 다 채운 아이들은 또 엄마 아빠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도무지 균형이 맞지 않았는데 차돌박이는 금방 익고 이제는 알아서 굽고 먹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두 손과 두 발이 내 한 손안에 다 들어왔더랬다. 나는 언제 아빠처럼 크냐며 아빠를 우러러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큰 녀석은 키와 발사이즈가 나를 넘어섰다. 내 키가 181cm인데 중학교3학년이 이걸 넘어섰으니 요즘 아이들은 정말 뭔가 다르기는 한가 보다.
경찰이 되고 싶어 하고, 특수부대 군인이 되고 싶고, 야구선수가 되고 싶고, 도시공학자가 되고 싶고... 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시간이 갈수록 바뀐다. 그래도 꿈이라는 걸 꿀 수 있고,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게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저 '몰라~'라고 답하는 것 보다야 좋은 거 아닌가...
그래도 꼰대, 어른으로 욕심을 부리자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야구선수가 돼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좋고, 더 넓게는 야구를 통해서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은지 말이다. 야구선수가 아니면 어떠랴. 야구 구단의 구단주도 될 수 있고, 야구 평론가도 될 수 있고, 야구 기자도 될 수 있다. 야구라는 도구를 통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명확해지면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고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실패했더라도 회복탄력성은 높아진다. 그리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목표가 되면 생각하는 방식, 행동 방식도 바뀐다. 연이어서 스스로의 역량도 높아진다.
부모로서의 역할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돼서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겠지만, 그건 나를 위한 아이들일 뿐, 아이들의 인생은 없다. 아이들은 독립시키기 위해서 양육한다는 말이 맞는 표현이다.
지금도 가끔 아이들을 보며 '이대로 아이들이 멈춰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더 크고 자라 입시에 쪼들리고 사춘기로 방황할지도 모를 아이들이 그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 시기를 겪지 않으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살아가기 힘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 고통의 시간도 어쨌든 스스로 이겨내야만 한다. 직접 겪으며 나를 찾아가고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곁에서 생각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부모가 되면 좋겠다. 이것도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욕심은 아니기를.